그리하여 공개적으로 나의 모든 권속과 신도 그리고 종단의 스님들과 모든 불자에게 모두 알리어 어법하게 소신공양 할것이니 협조하여 주길 바라노라.
그리하여 이 나라 분단된 국토가 하나로 통일 되고 사회가 안녕하며 헐벗고 괴로운 이 없어지며 불국정토 앞당겨 이루어 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요지의 말과 날짜 장소까지 언급한 일이 있었다.
그 글을 본 상좌 지성이 불법이 그런것이요,
회향을 그리한다면 중노릇도 그만 하겠다며 완강히 거부를 하지만 그래도 나는 뜻을 굽히지 않고 남모르게 참나무를 사서 산에 쌓아놓고 그 뜻을 실행코자 정진하고있다.
누가 나의 이 뜻을 거역 할것인가.
나는 현행법에 의하면 짐짓 나의 행동이 가당치 않은 줄도 잘안다.
그러나 여래 부처님을 향한 마음변함이 없다.
저희들이 훼방한다면 나는 아까 말한 염려를 다 버릴것이다.
내가 뜻을 성취하면 너희들은 이 사바고해에서 다 벗어날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부처님의 뜻이 거룩하신가, 만약 한구절 아미타불 생각하면 능멸 팔십억겁 생사중죄 팔십억겁에 지은 생사의 무거운 업장을 소멸하고 능히 팔십억겁 동안에 수승한 공덕을 지을수 있다 하였으며
옛스님 영명연수선사께서는 참선은 백이 하여 하나 성공하기 어려우나 염불은 만인이 하면 만인 모두 서방극락 왕생정토 하여 아미타불을 친히 뵙고 정수리에 수기받아 다같이 부처를 이룰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소홀할수 있으리요.
나는 원한다.
나보다 우리모두가 유연무연 모든 중생이 다같이 부처님의 깊은 뜻 고구정녕하신 원을 따라 가장 쉽고 틀림없는 길 염불을 권하다. 인생을 비롯한 모든 중생은 유한한 생명을 살고있다.
생자는 필멸이요, 회자정리라 이세상에 나온자 모두 반듯이 죽을 것이요 만난이는 누구든 헤어질 것이라 당연한 말이다.
승복하기싫다. 영원히 멸하지않고 괴롭지 않고 즐거우며 거짓투성이로부터 참나의 실체를 알며 온갖 더러움으로 부터 청정한 본래의 참성품인 부처님을 증득할수 있는 길이 과연 무엇일까?
염불.간경.참선.주력의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나 나는 모든 이에게 염불을 권하고 권하는 바이다.
염불하고 참선하면 호랑이에게 뿔을 달아준 이상이라 하였으나 뿔없이
극락왕생 정토하여 여래의 열가지 원력이 성취되길 바란다.
우리나라 불교는 본래 한집안 한부처님 법 아래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함께 하고 또 함께 뜻을 하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염불문은 염화미소 격외선전의 뜻도 거역하지 않는 것이요, 불입문자 교외별전의 상근기에도 별탈없음을 짐작하겠다.
내가 나를 살라 온갖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나 그것도 내맘을대로 못하는 세상 나는 쉬운길,바른길,빚갚는길,성공하는길을 널리 이세상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싶다.
이제 얼마 안있어 한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다.
나는 구한말 나라를 빼앗긴지 삼년이 지난 계축년 경기도 가평땅 솟틀이란 산골에서 엄격한 유가 집안에 태어났다.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고생하다가 열일곱 소년시절 긴머리 칭칭 따고 짚세기 신고 걷고 걸어 먼저 스님이 되신 형님따라 한양에 올라와 삼각산 승가사에서 중이 되었다.
아태조께서 도읍을 정하신 삼각산을 비롯한 경산의 모든 산산곡곡을 아
니 다닌 곳 없으며 한강을 비롯한 산야를 밟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강 상류로부터 마포나루를 지나 임진강에 이르기까지 행각 정진을 하였다.
젊은시절 믿지 못할것이나 청룡,황룡이 승천함을 분명히 본 일이 있었으며 산중에서 기도를 할때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 하늘을 나는듯 했으며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았다는 산신과의 만남은 수없이 많았고
여래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의 자비원력을 수없이 다정스레 받아오고 원력이 장엄하고 자비가 광대하신 당래교주 미륵존불과도 늘상 만날수 있었다.
그래서 젊은시절 고국을 떠나 중원땅 만주벌판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조국광복을 기원하고 촘촘히 박혀 눈부시게 빛나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부처님 광명이 날로 더하고 법의 바퀴 항상 구르게 하여 만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하였다.
해방이된 을유년 8월 15일 나는 아리랑 고개를 넘으며 백중맞이를 마치고 왕십리로 오는길에 형사에게 붙들렸다가 대한독립 해방을 맞이 하였다.
다같은 하늘 아래 모두가 다같은 땅을 밟고 살며 거기서 난것을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감격스런 해방을 맞이한 기쁨을 만끽하였고 동족상잔의 6.25사변 때에는 산더미같은 시체 속에도 나는 지금의 서울대학병원에서 염불 독경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국방군에 소집되어 막노동과 전투속에서도 간절히 염불하였고 휴전이 되자 평화통일의 염원과 만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도량 호명산 감로암에 토굴을 마련하였다.
믿기질 않을줄 모르겠으나 그때만해도 이땅엔 호랑이가 산신을 대신하여 간혹 나타났다.
나는 분명히 보고 또 보았다.
우이동 삼각산 백운대 인수봉에 호랑이가 나타난것을 나는 분명히 수없이 보고 또 보아왔다.
아마 그때 우리 도반을 빼고는 산사람을 말할수 없을 것이다.
눈부시게 불을켠 호랑이는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는 옹호신장 바로 그것이었다.
호명산 감로암을 창건할때 그들은 나를 지켜주었고 용왕은 약수를 나에게 철철 넘게 뚫어주었다. 내가 움막을 짓고 가람을 창건할때 그들은 다정스레 꼬리를 흔들며 내곁에 함께 하였고 용신은 시원한 감로의 청정수를 뚫고 나와 지금도 시원스레 언제나 감로의 물줄기를 뿌리고 있다.
이게 무슨소린가? 사실이다.
[4.19], [5.18]모두 겪었다.
[10.26]이후 군사정권하에서 그들은 왜정때 일본놈보다 더하게 나있는곳까지 와서 조사를 하였다.
총칼을 장전하고 한밤중 나의 암자까지 수색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그보다 아픈것은 불교분규이다. 어찌그럴수가 있는가?
우리는 동족상잔의 사변을 겪고 다시 또 불교분규를 맛보았다.
그러나 인과응보라 지금은 반성한다. 그저 더큰 불행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위정자들의 정쟁속에 휩싸여 타의에 의하여 흔들린 불교분규이다.
출가비구나 출가보살승 모두 한 부처님 제자가 아닌가?
16개종단으로 갈라지더니 이제 오십이 넘는 종파가 우후죽순으로 널리어 어찌 승풍을 진작시키고 삼보를 호지하고 정재와 교원을 수호하겠는가? 하루속히 태고 보우 원증국사의 단일 문손으로 제종통합 원융회통의 정신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끝으로 이 경전을 펴내는데 물심양면의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승가사 사부대중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공덕으로 뜻하는바 모든 소원을 이루시고 구경성불하기를 바란다.
가평 호명산 감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