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공장에서 예술품을 '대량 생산'한 앤디 워홀
앤디 워홀, 황금빛 메릴린 먼로, 1962년,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211.4×144.7㎝,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
'수퍼스타'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미국의 미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1928~1987)이다. 팝아트의 거장이자 영화 및 음반 제작자로서 '팝의 교황(Pope of Pop)'이라고 불리며 늘 유명인들에 둘러싸여 연예인 같은 삶을 살았던 워홀이 진짜 동경했던 '수퍼스타'가 바로 메릴린 먼로였다. 사실 워홀뿐이랴. 메릴린 먼로라는 이름을 모를지는 몰라도, 지하철 통풍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스커트를 휘날리며 천진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워홀이 먼로를 작품에 담기 시작한 건 1962년, 그녀가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직후부터다. 그는 '수퍼스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경, 황금색을 골라 커다란 화면에 바르고 그 중앙에 먼로의 얼굴 사진을 넣어 빛나는 노랑과 하늘색을 덧칠했다. 금빛 배경의 초상화는 기독교의 성상, 이콘을 닮았지만, 먼로는 '성상(聖像)'이라기보다는 '우상(偶像)'에 가깝다.
이는 워홀의 대표작이지만, 사실 워홀이 직접 한 일은 별로 없다. 그는 영화사에서 홍보용으로 배포한 먼로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실크스크린으로 복사하듯 캔버스에 찍어냈을 뿐이다. 그는 이러한 제작 방식을 '조립 라인'이라고 불렀고, 자신의 스튜디오 또한 '팩토리'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는 조수들을 고용하여 공장에서 찍어내듯 쉽고 빠르게 '미술품'을 제작했다.
천재적인 미술가의 위대한 손이 만들어낸, 이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는 고귀한 미술품을 기대했다면 워홀의 '조립 라인'이 불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워홀은 오늘날 우리가 동경하는 수퍼스타들도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량으로 소비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Andrew Lloyd Webber, Pie Jesu from 'Requiem'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레퀴엠' 중 '자비로운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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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