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맛이다, 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견디기 어렵다는 뜻의 관용어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나 상태를 죽음이라는 극단으로 밀고 가서 그것을 맛에 비유한 것입니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 삶의 극단에 매달려있는, 쓴 열매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죽을 맛’과 반대되는 말이 있는데, ‘살맛’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를 느낄 때 ‘살맛난다’고 합니다. 살맛나는 세상의 이야기를 요리를 통해 아름답고 풍성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에릭 베스나드 감독의 <딜리셔스 :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입니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대저택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망스롱은 어느 날 해고됩니다. 사치와 허세에 찌든 귀족들의 맛에 대한 편견이 최고의 요리 실력을 가진 망스롱을 조롱하고 내쫓은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시골의 고향집에 돌아가 역참(주막)을 열고 오가는 이들에게 음식을 팝니다.
망스롱을 내쫓은 샹포르 공작은 망스롱의 요리를 그리워하지만 귀족의 오만함으로 그에게 모욕을 줍니다. 망스롱은 공작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데, 멋진 요리를 만들어 그를 초대한 자리에 마을 사람들을 다 초대합니다. 공작은 자기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마을사람들과 한 자리에 초대되어 같은 음식을 먹게 된 사실을 알고 수치심을 느낍니다. 영화는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영화의 클로징 멘트에 “그 후 며칠이 지나고 바스티유가 함락되었다”고 나옵니다. 프랑스혁명을 알리는 멘트입니다.
영화 <딜리셔스>는 맛있는 요리를 맘껏 즐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귀족을 한 요리사가 조롱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귀족이 향유하던 요리를 많은 이들에게 먹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프랑스영화의 아름답고 멋스러운 영상을 보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상에는 많은 빛이 미장센으로 쓰입니다. 숲 그늘의 어두운 초록, 단풍 사이로 쏟아지는 맑은 햇살, 침실을 부드럽게 감싸는 솜이불 같은 측광, 식탁을 품은 따뜻한 불빛, 요리사의 미소에 방금 구운 빵처럼 풍만하고 너그러운 빛 등,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세 가지 색이 자연과 인공 조명을 통해 조합되어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다닙니다.
이 영화는 요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요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이상사회라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사회가 시작된 것이 프랑스혁명입니다. 근대의 시민혁명은 계급적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사회 체제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살맛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은 정결예식으로 사람을 묶어버린 유대교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대한 종교혁명의 결과였습니다. 그 혁명을 거부한 자들이 예수를 향해 “먹보요 술주정뱅이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조롱했습니다.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 그것이 사는 맛입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맛을 느끼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소통하는 즐거움, 공감하는 즐거움,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 들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고급 요리를 먹는 것만큼이나 살맛나는 일입니다.
요즘은 목사들이 죽을 맛입니다.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교인들한테도 욕먹고 심지어 같은 목사들한테도 욕먹습니다. 목사가 욕이란 욕은 다 먹는 게 요즘 시대입니다. 어디 가서 목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시대입니다. 중대형교회 목사들은 욕을 먹어도 살맛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진실하게 살기 위해 밑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목사들은 살맛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살맛나는 모임 하나 하려고 합니다. 목사님 10명 내외로 모여서 공부하지 않겠습니다. 공부한다고 하면 다들 부담스러워합니다. 예전에 목회자들 대상으로 인문학 독서모임을 가졌는데 다들 바쁘다 보니 책 읽는 것도 소홀해지고 참석도 차츰 들쭉날쭉하여 재미없고 느슨한 사교집단이 되어 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대놓고 사교집단 하나 만들어 목사들끼리 살맛나는 일을 만들고자 합니다. 서로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 넣었으면 합니다. 공부하자, 책 읽자 하는 등의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부담 없이 만나서 맛있는 음식 먹고 서로의 가슴에 맺힌 얘기 들어주며 인격적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모임이었으면 합니다. 필요하고 원하면 가끔은 책도 읽고 토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건 개나 줘 버리고 일단 살맛부터 서로 챙겨주면 좋겠습니다. 소명의식, 거룩한 사명감, 이딴 것 말고 사람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은 어떤 맛인가, 목사도 그 맛은 좀 알고 살아야지요.
첫댓글 그러게요^^
삶은 어떤 맛일까요...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 그것이 사는 맛입니다.'에 공감 한 표!
그런 면에서 언약교회의 2주에 한 번 있는 1가정 1반찬 나눔은 너무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살맛나는 모임이 꽤 많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