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이 뉴욕 원각사에 계실 때 어떤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18세에 결혼해서 6,25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온갖 고생을 다 해가며 홀로 아들 둘을 키웠는데
다행히 자식들은 잘 자라고 성공하여 미국에서 의사와 교수로 기반을 잡고 어머니를 오시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큰 기대로 미국으로 갔지만 그곳 생활은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말도 안 통하고 풍속도 달라 하나같이 눈에 거슬리고 도무지 답답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할머니는 당연히 두 아들만 쳐다볼 수 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은 점점 어머니가 불편해졌고 마침내 모자간의 갈등도 생기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오가며 곤혹스런 생활을 해야 했다.
평생을 고생고생 해가며 키웠는데 이제 자식들은 어미 마음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한국으로 갈 테니 집 살 돈과 장사밑천을 대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아들은 펄쩍 뛰면서 만류했고 견디다 못한 할머니는 절에 와서 하루종일 기도로 마음을 추스렸지만
아들에 대한 원망과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는데.. 그래서 스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보살님, 내 말을 섭섭하게 듣지 말고 한번 대답해 보세요.
금강경을 오래 독경하셨으니 무주상보시가 무슨 뜻인지 아시죠?"
"줘 놓고 줬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거 아닙니까."
"보살님, 금강경을 만 독 하면 뭐 하겠소, 무주상보시도 잘 모르면서..
보살님 같은 분이 불교신자라고 다니니 불교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 겁니다."
"나는 비록 기대하지 않고 키웠다 하더라도 자식은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저것들이 자기 도리를 안 하고 있으니까 내가 이러는 거 아닙니까?"
"보살님, 앞으로는 절에 다니지 마세요. 예전에 부처님을 부를 때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 우리 아들만 잘 되게 해달라고 빌더니 요새는 거꾸로
아들 벌 주라고 기도를 하시니, 왜 쓸데없이 부처님께 이랬다 저랬다 하십니까?
내일부터 불자라 하지도 말고 부처님도 부르지 마십시오."
스님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길 가는 낯선 사람을 보고 원망하고 미워합니까?" "내가 뭣 때문에 낯선 사람을 미워해요?"
"바로 그겁니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원망하는 것은 결국 계산적으로 키운 거지 사랑은 아닙니다.
그러니 사랑을 하려면 제대로 하고, 싫으면 차라리 '저 놈의 자식, 남이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게 보살님이 선택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매일 절에 오던 할머니가 그 날 이후로 오지 않았다.
스님은 혹시 너무 모질게 대해서 충격을 받아 그런가 걱정을 했는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할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띄고 나타났다.
"아니, 보살님 어찌 된 겁니까? 그동안 부처님 못 봐서 어찌 사셨습니까?"
"참 법사님도, 뭐 부처님이 법당에만 계시는가요?"
할머니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스님과 얘기하고 돌아간 날 저녁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했다.
'당신은 불교신자도 아니니 경전도 보지 말라'는 말까지 들은 터라 스님이 야속하고
한편으로 자신이 잘못했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아들에 대한 분함과
스님에 대한 야속함으로 번뇌는 갈수록 쌓여 절에 갈 마음까지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할머니는 솟구치는 분노를 주체할 길이 없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저놈의 자식, 남이다'를 염불처럼 중얼거리게 되었다.
스님과 애기할 때는 건성으로 들었는데 극한 상황에 처하니까 관세음보살 대신 '남이다'가 염불이 되었다.
그렇게 분노가 치밀 때마다 '남이다, 남이다'를 되뇌이다가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문득 생전 처음보는 낯선 사람이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가슴 속에 얼어붙은 얼음덩이가 눈 녹듯 녹아내리며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내 아들'이라며 그토록 집착하던 자식이 완전히 '남'으로 보이자 원망과 미움이 사라지고
먹여주고 입혀주며 용돈까지 주는 자식에게 고마움이 밀려왔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나에게 이토록 고맙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자식이 완전히 남으로 다가온 순간, 집착이 사라지면서 빈 그 자리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마음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마치 남의 집에 사는 사람처럼 설거지에 청소까지 도맡아 하고
자식들이 얘기라도 나누면 방해가 안 되도록 자리를 피해주었으며
절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하루종일 부엌에서 공양일을 도맡아 하였다.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나니 밉기만 하던 자식이 가장 고마운 존재가 되었고
잊어버리고 있던 일도 다시 하게 되면서 할머니는 누가 봐도 정말 보살같은 분이 되었다.
이후 할머니는 아들네가 서로 모셔가려 하고, 절에서도 매일 오셔달라고 대환영이었다.
상대에게 도움을 주면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비록 한국에 간 것도 아니고 자식들 태도가 바뀐 것도 아니지만
할머니의 깨달음으로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까지 변화시켰으니
이것이 바로 무주상보시의 공덕인 것이다.
보살의 사랑은 자신의 욕심을 기준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함으로써, 베품으로써 보살은 이미 충분한 기쁨을 누리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보살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보살의 사랑이 어렵다면 차라리 남이라고 생각해 보라.
매일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저 놈의 자식, 남이다'를 화두삼아
마음을 다짐해보는 쪽이 자신의 마음을 편히 다스리는 길이 될 것이다.
※ 어느 보살님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분도 미국에 아들내외가 있어서 가 보니
며느리가 외출하면서 "어머니, 씨리얼 드세요." 하는데 씨리얼이 뭔지..??
오후에 아들이 퇴근해서 프라이팬에 볶음밥을 해 먹는데 며느리는 들어오더니 본체만체 안방으로..
그래도 아들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잠시 후 안방에서 지들끼리 또 히히덕..
며느리는 하얀 허벅지 다 보이는 핫팬츠를 입고 다니고..
온통 눈꼴사나운 것만 보여서 얼른 돌아와 버렸다고 한다 ㅎㅎ
☞ 남편증후군과 총각귀신
첫댓글 네 고맙습니다 ...
고맙고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방편을 주시고 또 깨닫게 해주십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