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문제(창세기 45:1-5)24.06.30.주일낮설교.
옛날 어느 마을에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가 나타나 농부네 닭장에서 닭을 물어갔습니다.
'여우가 오죽 배가 고팠으면 닭을 물어갔을까!'
하지만, 이튿날에도 여우가 나타나서는 닭을 물어갔는데 이번에도 농부는
한 번 더 참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닭을 물어가자 더 이상은 참지 못한 농부는 덫을 놓았고 마침내 여우를 잡았습니다.
농부는 그냥 죽이는 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아서 여우 꼬리에 짚을 묶은 후 불을 붙여 고통을 주려고 했습니다.
화들짝 놀란 여우가 뛰어간 곳은 농부가 1년 내내 땀 흘려 농사를 지은 밀밭이었습니다. 여우가 지나갈 때마다 불길이 계속 번졌고 밀밭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분노는 결국 자신 스스로를 망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맺힌 것을 풀며 사는 사람이 있고, 풀지 못하고 맺힌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모든 것을 풀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풀지를 못하고 살았습니다.
요셉이 열 일곱 살이었을 때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여러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 그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 꿈을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같은 내용의 꿈을 꾸고서, 그 때마다 형들에게 그가 꾼 꿈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 때문에 형들은 요셉을 몹시도 미워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은 미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아! 너의 형들이 세겜으로 양 떼를 이끌고 갔는데, 왠지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 되는구나. 그러니 네가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좀 알아보고 오너라.”
요셉은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형들을 찾아서 세겜으로 갔습니다.
요셉이 세겜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이미 그의 형들은 도단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서, 요셉은 또다시 그의 형들을 찾아서 도단까지 갔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서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저기에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우리가 그를 죽여서 구덩이에 던지자.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그가 악한 짐승에게 잡혀먹었다고 말하자.
그래도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지, 어디 한번 우리가 두고 보자.”
참으로 한심하고도 불쌍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시기와 미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맏형 르우벤의 만류로, 그들은 요셉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동생 요셉을 은 이십에 종으로 팔아 넘겼습니다.
요셉에게 억눌린 문제는 자기 형들과의 문제입니다. 요셉이 열 일 곱살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청소년 시절에 미움당하고 왕따 당하고, 고립당하고 결국 저놈을 없애버리자, 죽여 버리자 소리도 들리고, 구덩이에 집어던져버리자 소리도 듣고, 결국 돈 받고 외국에 팔아버립니다.
가족 중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집단으로 미워한다.
이것은 요셉의 어린 시절에 억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자기를 죽이려했던 형들을 만났을 때, 자기 억눌린 아픈 일들을 어떻게 풀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총리가 되고 기근이 심하게 들어 형들이 곡식을 사러 이집트에 왔을 때 요셉이 형들 앞에 자기를 밝히는 장면입니다. 요셉에게 이 시간은 자기의 인생을 완전히 억눌렀던 바로 그 문제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셉을 보면 이 억눌린 문제를 말끔히 풀어버립니다.
첫째, 요셉은 억눌린 문제를 감성적으로 풀었습니다.
감성지수는 감정을 통제·조절하고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불안이나 분노 등에 대한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궁지에 몰렸을 때에도 자기 자신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낙관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남을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니엘 골만이라는 사람이 “EQ 감성 지능”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IQ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EQ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똑똑하고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인생을 풍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 인생을 풍부하게 성공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삼상 18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옵니다. 모든 백성들이 다윗을 칭찬하여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라''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 입니다. 사위도 자식입니다.
그럼에도 그때에 다윗은 마음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이 사울의 마음에 상처를 입게 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비교하여 칭찬하는 것, 조심하여야 합니다.
딸이 둘이 있는데 언니를 칭찬하면 동생인 딸은 대단히 상처를 받습니다.
자녀들이 상처를 입게 되는데 누구를 통하여 받는가 조사하였는데 아버지에게서 40.7% 어머니에게서 32,1% 라고 하였습니다.
그 내용인 즉 함부로 하는 말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은근히 무시하는 말을 할 때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억눌린 문제를 어린 시절에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니까 대부분, 자기 속에 깊이 묻어둡니다. 꽁꽁 숨겨둡니다.
깊이 저장되어있어서 평소에는 자기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많이 억눌러놓은 문제들은 결국에 이상한 형태로, 예상치 못한 시간에, 엉뚱하게 튀어나오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억눌린 문제는 어른 되어 결혼한 다음 대부분 부부싸움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로부터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감성적으로 해결했습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은 형들 앞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감정을 컨트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에게 그 사건은 22년 전입니다.
상처난 감정, 억눌린 감정은 풀지 않으면 22년 지나도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발산합니다.
요셉이 형들 앞에서 대성통곡하고 울어버립니다.
그가 이제까지 22년 동안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푼 것입니다.
그는 모든 시종들과 이집트 사람들 신하들을 물리칩니다.
다 물러나라!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총리집무실 안에 자기 형제들과 자기 친동생 베냐민만 남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셉은 드디어! 자기가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형님들! 갑자기 총리가 형님들! 부르는데 모두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는 그냥 울어버립니다.
2절을 보면 한참동안 울었다고 했습니다.
큰 소리로 방성대곡했습니다.
이것은 걷잡을 수 없이 서럽게 울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소리로 울었는지 얼마나 한참동안 울었는지 총리 공관 울음소리가 바로 왕 궁전까지 들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뭡니까?
그 속에 억눌렸던 것들이 정서적으로 치유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자기 억눌린 감정을 푸는 방법입니다.
요셉은 펑펑 울어버립니다.
이집트의 총리의 위상이고 체면이고 다 내려놓고 울어버립니다.
그래서 요셉의 억눌린 상처가 치유가 되었습니다.
억눌린 상처가 있습니까?
요셉은 자기감정을 조절하고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분노를 조절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형들을 배려하고 용서했습니다.
요셉은 억눌린 문제를 감성적으로 풀었습니다.
첫째, 요셉은 억눌린 문제를 감성적으로 풀었습니다.
둘째, 요셉은 억눌린 문제를 신앙적으로 풀었습니다.
쉐인 코넬리우스라는 예방의학자는 암의 발생원인이 음식, 유전적 체질, 그리고 정신적 쇼크가 암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요인 중에 유전적인 체질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음식이나 정신적 쇼크는 예방할 수가 있습니다.
꼭 암이 아닐지라도 일상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음식을 잘 가려먹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문제가 건강에 더 해롭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적 쇼크를 받으면 마음에 응어리가 지게 됩니다. 즉, 마음에 분함, 두려움, 미움, 시기 같은 것이 있으면, 마음에 응어리가 지고 상처가 나서 아프게 되는 것입니다.
병을 이기는 방법은 음식을 잘 먹는 것과,
사랑하며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요셉에 애굽으로 팔려가 종살이를 하게 되고,
또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습니다.
요셉은 지금... 용서하기 힘든... 상황!!...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용서했습니다.
5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참으로 대단한 신앙입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본 받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욕하고, 침 뱉고, 옷을 벗기고, 손과 발에 못 박는 그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의 하는 일을 알지못함이니이다.” 라며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정신은 보복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내가 나를 야단치고, 내가 나를 때리고, 내가 나를 호통치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죽는 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십자가 밖의 정신은 너를 때리고 너를 야단치고,
너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보복할 수가 없습니다.
요셉의 위대한 삶은 “하나님이 나를 애굽에 보내셨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의학연구 보고에 의하면 신체적인 문제로 의사를 찾는 환자들 가운데 50-70%는 신체적인 문제와 함께 영적인 이상증세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들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보다는 목사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절망의식, 패배의식으로 인하여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의사의 처방이나 약이 아니라 마음에 평안과 낙관적인 생각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낙관적인 생각으로 마음껏 웃으라고 말합니다. 막장대소하고 웃으면 엔도르핀이나 카테콜라민이 평상시보다70-80%가 더 나온다고 합니다. 어떤 병균도 접근하지 못한답니다.
이상한 것은 웃어야 할 말을 들어도 웃지 아니하는 사람은 병들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웬만하면 웃으면서 살아가려고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억눌린 아픔을 신앙으로 요셉처럼 이겨내야 합니다.
사람의 건강조사를 하는데 입안에 있는 침 검사도 한답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침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웃고, 기쁨 중에 은혜 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침은 살균력이 있어 어떤 세균도 침입하지 못하더랍니다.
그러나 절망과 좌절감에 빠져 불안하고 초조하며 걱정 속에 있는 사람들의 침에는 세균을 넣으면 2시간도 안돼서 30배 40배로 증식하더랍니다.
절망과 좌절, 미움과 시기대신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야 건강 합니다.
억눌린 아픔을 신앙으로 요셉처럼 이겨내야 합니다.
요셉은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41장 38절을 보겠습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여러분도 항상 기도하고, 성경 읽어 성령의 사람이 되 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요셉처럼 황당하고 억울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요셉처럼 펑펑 울며 용서하며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보복하지 말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신앙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