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도움(8-10)
하나님께서 먹여주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더 이상 사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역자가 돈에 밝은 사람이 되면, 돈을 버는 것이 사역에 목적이 되면 더 이상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사명에 집중하고 따라 살아가는 삶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8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8-10)
선지자의 제자 아내 이야기 다음으로 수넴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수넴 지역은 이스르엘 마을 북쪽에 위치하며, 모레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잇사갈 지파 땅입니다.
엘리사가 갈릴리 남쪽 지역을 여행할 때 수넴 지역을 지나는데, 어느 날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 그곳에서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한 여성이 엘리사에게 자신의 집에서 식사하라고 강하게 권유하였습니다. 덕분에 엘리사는 수넴을 지날 때마다 이 여성의 집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에게 음식을 제공한 이유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9)라고 설명합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 즉 참 선지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란 말에는 엘리사를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 생각한다는 것과 이런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음식 대접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남편에게 엘리사를 위한 방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합니다.
본문에서 방에 침상, 책상, 의자, 촛대를 둔다는 것은 언제든지 와서 불편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배려가 넘치는 행동입니다. 이 집은 가끔 오는 손님을 위해 방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부유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나온 선지자의 아내와 대조적입니다.
여기서 남편의 대답이 나오지 않고 바로 방에 누운 엘리사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이야기의 중심은 수넴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남편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수넴 여인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 엘리사(11-13)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은 타인을 위한 배례와 중보기도가 끊기지 않습니다. 두 번째 나온 수넴 여인은 영적인 안목과 자신의 넉넉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섬길 만큼 열정적인 헌신이 있었습니다.
11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12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11-13)
수넴 여인의 넘치는 호의로 수넴에 올 때마다 편한 생활을 하던 엘리사는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사환 게하시에게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수넴 여인과 엘리사가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고 게하시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신분이 높은 여성의 경우 남편이 아닌 남성을 대면하여 말하는 것이 당시 예절에 어긋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자신을 위해 매우 신경 써서 세심하게 준비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한 후 자신이 이에 대해 어떤 보답을 해주면 좋을지를 묻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사는 혹시 왕에게 넣을 청이 있다거나 그 지역의 군사령관에게 넣을 청이 있는지 묻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아무리 어려운 요청이라도 들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당시 엘리사가 왕이나 군대 장관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수넴 여인은 자신이 자신의 백성 중에 거한다고 말하면서 엘리사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라는 것은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면 가까이에 사는 친척들에게서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왕이나 군사령관처럼 권력 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 여성은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있으며 만족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여성의 삶에 결핍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는 심각한 결핍이 있었고 그것은 당시 여성에겐 수치스런 일이었음에도 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욕심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걸 보면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덕을 보기 위해서 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도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수넴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줌(14-17)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돈으로 자신의 만족을 채우지는 못합니다. 만족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물질 자체에 있거나 물질을 모으는 행위에 있지 않음을 기억합시다. 진정으로 삶을 충만하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14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14-17)
이런 수넴 여인의 마음을 알게 된 엘리사는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하지 알고 꼭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자신의 시종인 게하시에게 묻습니다.
게하시는 그녀에게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어서 아들을 가질 수 없는 상태임을 알려줍니다. 고대 가부장 사회에서 아들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이름을 이어갈 상속자가 없는 매우 불행한 상황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다시 불러 내년 이맘때 품에 아들을 안을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여기서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17절에서 실제로 아들을 낳은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장에서의 엘리사의 이적 사역에는 여호와가 직접 말씀하시거나 행하신다는 언급 없이 오직 엘리사가 행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것은 엘리사가 큰 권능을 행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 여호와의 도움 없이 엘리사가 자신의 권능만으로 행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엘리사의 예언을 수넴 여인은 믿지 않았고 속이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수넴 여인은 자신이 먼저 엘리사에게 아들을 요청했을지도 모릅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은 잘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말처럼 이 여인은 1년 뒤 아들을 품에 안음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주신 것이 아니라 믿음 그 이상으로 주심으로서 그 은혜에 어울리는 믿음으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믿음에 어울릴 믿음으로 반응하시길 바랍니다. 어디에 있든지, 누구와 함께 하든지, 무슨 하든지 엘리사의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한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주의 일에 충성합니다. 마땅한 충성이고 섬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가 당신에게 행한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이 넉넉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결코 거래하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