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구황작물이 건강식품으로~
보릿고개, 초근목피 모두 다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의 배고픔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식량 자급자족이 어려워,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어야 했던 보릿고개 끼니 해결을 위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밥 대신 먹었던 초근목피는 민족의 배고픈 과거이다.
쌀이 절대적으로 적어 대체식량으로 보리 밀 옥수수 그리고 고구마 감자와 배추나 무시래기가 보릿고개를 채워줬던 구황작물(救荒作物)이었다. 쌀밥 소고깃국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고 그 시절 보릿고개가 닥치면 부황(浮黃)이 난 사람들이 동네의 절반이 넘었다.
가축 사료로 먹였던 무 배추 시래기를 엮어서 추녀 끝에 매달아 바스락거리게 건조한 후 가마솥에 삶아서 떫은 맛을 우려내어 어머니는 소여물처럼 숭겅숭겅 썰어서 쌀 한 줌 넣어 지은 시래기 밥이나 죽을 며칠에 한 번쯤은 먹어야 했다.
밥을 먹고 나면 꼭 시래기 줄기가 이빨 사이에 끼어 께름칙했다. 숭늉은 거무튀튀하여 시래기 작은 잎사귀 찌꺼기들이 둥둥 떠 있어 색깔도 냄새도 모두 다 마시기 싫은 시래기 숭늉이었다. 자식들의 배고픈 끼니를 조금이라도 모면해 보려는 어머니들의 궁여지책이었고 자식들도 아무 불평 없이 그것도 황송 감사한 마음으로 따랐던 춘궁기의 우리네 농촌의 모습이었다.
1960년대 가난하던 시절,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시행되면서 시골 초등학교에는 분유(粉乳)와 옥수수죽 단체 급식이 지원되었던 때가 있었다.
옥수수 죽을 받아먹기 위하여 학생들은 양재기와 수저를 지참하여 학교급식 옥수수죽 먹기가 풋내 나고 지겹던 시래기죽보다는 맛도 향도 그렇게도 좋았다. 어떤 친구는 2번 타 먹기 위하여 입가의 옥수수죽 흔적을 대충 지우고 줄을 섰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친구, 또 다른 친구는 자기는 배가 고프지만, 집에 있는 어린 동생을 갖다 준다면서 집으로 가지고 가는 착한 친구도 있었다. 그 죽은 얼마 후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으로 대체되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초등학교 옥수수죽 이야기가 바로 우리네의 과거였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 하며 인간의 노력보다는 자연에 의존하고 탓했던 위정자(爲政者)들이 밉다. 그 시절 인구는 현재보다도 적고 인구 대비 1인당 국토면적은 훨씬 더 넓었으며 여느 나라 못지않게 토지는 기름지고 농사짓기에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종자 개량과 과학적 영농방식의 추구로 식량문제 해결보다는 물끄러미 턱만 괴고 하늘에서 쌀만 떨어지기를 바라거나 외국에서 병아리 눈물만큼 주는 원조에 의존했으니 말이다.
시래기 줄기보다 더 질긴 삶의 고통을 견디고 과학적 품종개량과 영농방식으로 오늘의 경제 중흥 국가를 이뤄 식량의 자급자족이 넉넉해지고 외국의 패스트푸드가 상륙하여 우리의 식단문화도 급격히 변화하더니 옛날에는 못 먹어서 병이 나고 요사이는 너무 먹어 병을 얻는 음식문화로 바뀌었다.
그런데 세상이 상전벽해가 되어 천덕꾸러기 구황작물이 건강식품으로 급상승하여 가난과 굶주림의 상징인 보릿고개 음식들이 이제는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식품으로 인증되어 다투어 찾고 있으니 간사한 인간들이고 죽기가 싫어서 먹던 음식이 이제는 오래오래 더 살자고 먹는 음식이 아닌 보약의 자리로 바뀌었으니 시래기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어려서부터 하얀 쌀밥 소고깃국 그리고 피자에 맛 들여진 젊은 세대들에게 어느 날 어머니가 식량이 떨어져 시래기 밥을 내놓았을 때 선뜻 먹겠다는 젊은이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요사이는 시래기를 개발한 퓨전 음식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식품 대기업들도 다투어 새로운 시래기 식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웰빙 식품의 붐이 불어서인지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시래기 음식점에 문전성시를 보니 가축 사료까지 탐내어 먹는 인간들이 얄밉고 이제는 가축들에게 인간이 만든 가축 사료 패스트푸드를 먹이고 있으니 어떤 천벌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렵다.
오늘따라 어렸을 때 쌀을 대신한 구황작물 보리 밀 옥수수 고구마 감자 배추와 무시래기가 떠오른다. 그런데 현재는 모두 다 웰빙 식품 재료로 언론이 소개하고 있다. 가정 식단(食單)도 건강 음식 재료 선택과 조리로 식사문화를 통하여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영양가보다는 건강식품으로 뼈가 만들어지고 살이 굳어져서인지 별 탈 없이 지금까지 살고 있음이 시래기 덕분에 고맙기도 하지만, 가축들한테는 미안하기도 하다. 자연의 이치는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요사스러운 인간들이 또 어떤 질서를 헝클지 염려가 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