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제조업과 외식업으로 분류되는 식품산업은 연간 매출액이 지난 92년 34조원에서 2005년 100조원을 돌파할 정도(통계청 통계기준)로 고성장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 증가로 기능성식품·유기식품·편의식품 등 고부가가치 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식품산업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 한미, 한EU 등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FTA도 식품산업 발전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강수기 전북생물산업진흥원장은 “FTA란 무한경쟁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기회와 도전을 가져다준다”면서 “식품산업의 경우 세계시장 규모가 400조원, 국내시장은 100조원에 달하는 만큼 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품산업 육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정부는 식품산업 육성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해 입안예고 했고, 대규모 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을 공모를 통해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각 지자체들은 시장선점과 지역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경 쟁체제에 돌입했다. 이 가운데 타당성 검토와 부지선정 등의 용역작업을 마치고 식품클러스터 마스터 플렌을 완성한 전라북도가 농림부 공모에 선정될 것이 유력한 가운데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등이 막판뒤집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로 경북도와 전남도는 각각 군위와 나주 등에 식품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올 연말 공모과정에서 사업신청서를 내기위한 준비 작업을 착수했고, 또 강원도는 수산물클러스터 조성계획을 발표하는 등 식품클러스터와 유사한 사업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농림부가 내년도 예산안(15억)이 국회심의를 통과하는 오는 11월 말부터 각 자치단체로부터 사업신청을 받아 올 연말까지 최종 후보도시를 확정한다는 방침이어서 최종 결과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그러나 전북도 식품산업과의 한 관계자는 “광역식품클러스터는 사실상 전북도가 주도해온 것”이라며 “사업 선점면이나 농도특성 등을 감안할 때 전북지역에 들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전북도는 이미 각종 용역작업을 마친데 반해 다른 지자체는 이제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통의 農道 음식문화 고향 전북은 농도(農道)로서 전통음식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제조업 중 식품산업 비중이 39%로 전국 평균 19%의 2배에 달한다. 경제력은 전국 2% 정도에 머물고 있지만 식품산업의 토대가 되는 농림어업의 생산량은 전국의 13%를 점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순창의 장류를 비롯해 임실의 치즈, 부안 젓갈 등 발효식품이 많이 발전했다.
전북도는 이 같은 농도전북, 맛의 고장이란 지역특성을 살리기 위해 내년부터 오는 2014년까지 총 7227억 원을 들여 식품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단위사업은 기존부처 추진돼온 농업이나 식품산업의 생산기반구축사업과 R&D지원 등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된다. 예컨대 정읍이나 고창, 부안지역의 과실가공식품분야를 하나로 묶어 원료생산과 가공의 규모화, 브랜드관리 등을 지원한다.
또 푸드사이언스밸리와 식품안전인증기반구축 등 R&D 관련분야를 지원함으로써 고부가치를 창출하고, 농가들의 소득향상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구상이다.
식품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전북도는 우선 △전북 생물산업진흥원 △생명공학연구원 전북분원 △순창장류연구소 △고창 복분자 시험장 △진안 숙근약초시험장 등 5개의 연구기관의 R&D를 추진하며 오는 2012년까지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산하연구기관과 한국식품연구원의 이전을 진행하게 된다.
이와 함께 무주, 진안, 부안 등을 ‘과실가공 클러스터’로 묶고, 정읍, 순창, 남원을 ‘장류클러스터’로, 고창, 정읍, 임실이 ‘낙농클러스터’ 무주, 진안, 장수, 남원을 ‘인삼?약초 클러스터’로 개발할 계획이다.
전북도 내 한 관계자는 “전북도가 추진하는 식품산업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중과 차별, 강렬한 슬로건 등 3박자가 맞아야 한다”면서 “식품산업 종사자들의 마인드 교육과 ‘농장에서 식탁까지’ 연결되는 일관된 조직체계를 구축한다면 전북이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강조했다.
■ 국내외 클러스터 중요성 커져 전북의 식품클러스터 구축 계획은 이미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 대표적인 농업국가에서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각각 푸드밸리(Food Valley)와 외레순 클러스터(Oresund Cluster)라는 식품클러스터를 통해 식품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키워왔다.
전북도가 밴치마킹 한 푸드밸리의 경우 식품산업을 통한 매출액이 연간 470억유로(약 58조원) 규모이며 이중 절반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푸드밸리는 이 지역의 고용상태가 개선되지 않아 시작됐다. 다양한 R&D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고, 연구기관도 많고, 거기에 각종 시설의 인프라 또한 잘 형성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 년 동안 고용창출이 안되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고 국가차원에서 검토하게 됐다.
푸드밸리의 성공 노하우는 다양한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품종개발이나 유제품분야, 육가공뿐만 아니라 △영양학 △기능성식품 △가축사료 △식품안전 △폐수처리 △온실기술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 정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한 외레순 클러스터는 정부 기관 중 하나인 클러스터 사무국을 중심으로 룬트대학, 덴마크기술대학 등 14개 대학과 기능성식품 과학센터를 비롯한 각 기업 연구개발센터, 식품?유통?마 케팅 관련 업체들이 2만900㎢에 모여있는 세계 최대 식품클러스터 중 하나다.
덴마크와 스웨덴 경계지역에 설립된 외레순 클러스터는 매출규모가 우리 돈으로 45조 원으로, 양국 국민총생산의 11%에 해당한다.
이 클러스터는 유럽연합의 출범으로 농업시장이 전면 개방되자 덴마크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영세업체들과 연구기관을 묶는 ‘네트워킹’ 작업을 해결책으로 내 놓으면서 시작됐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덴마크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정부는 “이러다 모두가 죽는다”는 위기론을 역설하고, 국민들 사이에 ‘잘 살아보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1992년 당시 돈으로 약 250억 원을 쏟아 붇는 등 아낌없는 투자를 감행했다는 후문이다.
■ 전북도 최적의 입지조건 자국 음식을 세계화하려는 노력들도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클러스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태국은 ‘태국음식 세계화프로젝트(Kitchen To the World)’를 통해 해외 태국식당을 오는 2013년까지 2만개로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도 ‘일식인구 배증계획’의 기치 아래 ‘TRY Japan's Good Food 사업’ 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 역시 해외 이탈리아 음식점 정부인증제, 자국 음식 외국 요리사 교육 등을 통해 자국 음식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정부 역시 ‘한식 세계화 지원방안’을 올해 마련했고, 7월 유엔본부에서는 한국의 전통음식을 주요국 대사와 유엔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행사도 개최했다.
때문에 식품산업클러스터 조성계획은 농업이나 식품분야 전문가들로부터 농·식품분야를 살려나가는 첨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리적이나 역사적으로 농·식품 관련자원이 풍부한 전북도가 적지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펼쳐지고 있어 클러스터 유치에 대한 전북도민의 기대감이 고취돼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전문가들이 전북도를 대거 방문, 전북의 식품클러스터 조성계획에 “바람직하다”며 힘을 실었다.
FAO한국협회가 주최한 ‘식문화 발전방안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은 “전북의 식품클러스터 조성계획을 살펴봤는데 상당히 잘 짜여진 플렌”이라며 “한국음식의 세계화와 식품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FAO아태지역사무소 빕랍 난디 박사는 “영양학과 관련된 협회와 지역 내 대학들과 연계하는 방안도 모색해 봐야 한다”면서 “식품의 세계화나 산업의 육성은 영양학적인 요소가 기본바탕이 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상무 FAO한국협회장 역시 “균형잡힌 영양과 친환경적인 식품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시점에 전북이 남도 고유의 음식문화를 연구 개발해 세계화할 수 있는 식품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외에도 지난 8월 한국농업경제학회 주최로 전주에서 열린 ‘2007 하계학술대회’에서는 농업과 식품산업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은 식품산업 클러스터에서 가능하고, 새만금 등 배후지역과 농·식품자원이 풍부한 전북지역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전북의 식품클러스터 조성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만은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클러스터의 핵심이 되는 기업유치가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벅차다는 것. 전북도 내 한 관계자는 “인프라 구축과 동시에 타깃 기업을 대상으로 지역의 비교우위 여건을 적극 알려야 할 것”이라며 “도내 정치권과 긴밀한 협조로 중앙부처 및 기업들을 상대로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설득을 펼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