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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참나무 숲을 떠나 흑꼬리도요로 날아오른 박재홍 시인
박재홍 시인. ⓒ박재홍
박재홍은 1968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생후 8개월 때 소아마비로 중증의 장애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엄한 분이었고, 어머니는 한이 많은 분이었다. 박 시인은 어머니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에게 있어 어머니는 일자무식에 가난에 찌들어 허기진 삶을 잇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은 비논리적이나 때로는 구구절절 논리적이면서 애틋한 마음이 전하는 당부 같았습니다. 세상으로부터 편견과 왜곡 속에 장애를 가진 아들의 슬픔을 껴안고 나를 타이르 시며 사셨지요.”
위로 형과 누나가 있었다. 그는 14세까지 네 발로 기어다니면서도 그것이 불행이라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보던 아름다운 소라게가 슬퍼 보였습니다.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갖게 된 장애에 대한 정체성이었다.
박재홍 시인 ⓒ박재홍
목발에 의지해 간신히 걸음마를 떼고 학교라는 사회에 나갔을 때 넓은 벌판에 혼자 서 있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허수아비 같았지만 그것 역시 그가 감당할 몫이었다.
그에게 가장 큰 위로는 시였다. 독학사로 국어국문학 공부를 하면서 박재홍은 2010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 「낮달의 춤」을 비롯해 시집 20여 권을 발간할 정도로 열심히 창작했다.
2015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문학 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고 2022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장애인문학운동
박재홍 시인. ⓒ박재홍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2010년 국내 최초의 대한민국장애인창작집필실 전문예술단체인 ‘장애인인식개선 오늘’을 운영하면서 대한민국장애인창작집 발간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127명의 장애인작가 발굴과 74종 78,000권의 선정작가 작품집을 발행하였다.
또, 반년간지 순수종합문예지 『문학마당』의 발행인 겸 주간으로 장애인 특집과 고정란으로 비장애문인과 장애문인 컬래버레이션 또는 평론, 즉평, 시, 소설, 수필, 평론 등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확보하여 2012년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전 성인장애인배움터 ‘풀꽃야학’이라는 성인장애인평생교육원에서 인문학 강좌로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제작, 문해교육, 장애인 연극 등도 교육하고 있다.
시집으로 사회적 메시지 생산
박재홍 시인 저서. ⓒ박재홍
올 1월 박재홍 시인이 시집 「금강에 백석의 흰 당나귀가 지나갔다」를 펴냈다.
박재홍 시인은 ‘차별과 왜곡 그리고 억압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시의 삼림에 묻혀 묘옥을 짓고 사는 나는 매일 혁명가를 꿈꾸지만 지친 몸이 삶의 직벽에 이마를 부딪쳐 깨진 육신의 고단함을 비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2021년에는 시집 「갈참나무 숲에 깃든 열네 살」을 발표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하는 ‘2021년 1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의 보급 대상 도서(시 부문)로 뽑혔다. 이 시집에는 선시(禪詩) 같은 여운을 남기는 시 60편이 실려 있다.
박 시인은 ‘장애가 불편했기 때문에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근력이 생겼다.’고 하면서 그는 발문에 ‘가장 낮은 곳의 민중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급변하는 시대적 정세에 오염되지 않고자 했다.’고 선언하였다.
같은 해 나온 시집 「흑꼬리도요」는 나그네새인 흑꼬리도요를 테마로 한 연작시 60편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의 회귀성인 소고(小考)를 담았다.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나누고 찾으며 연대해 시(詩)가 다시 돈오견성(頓悟見性)의 선풍(旋風)을 일으키는 시대가 복원됐으면 하는 발원으로 놓은 작은 강돌 같은 시집이라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오늘도 즐겁다
시가 깃든 클래식 음악여행에서(사진 위), 정신장애인 직업능력개발 포럼에서(아래). ⓒ박재홍
문학운동을 하다가 자연히 장애인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를 전공하였다. 그러다 다시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한 현재 2년차를 보내고 있다. 큰아들은 아빠와 같은 전공인 국어국문과에 다니고 둘째 아들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라 가족 모두 현재는 학생이다.
살아온 날 수만큼 해갈되지 않은 갈증에 지천명(知天命)을 지나치며 나의 삶의 정리가 필요했다. 결핍과 절박함이 가져오는 다음 순서가 재미였다. 그러나 2023년 현재에도 이동권의 불모지는 학교다. 돈이 없는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였고 현재도 그렇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동년배 교수들의 강의를 되새기다 보면 혼자 공부하다 지나 치는 것들이 가을 이삭줍기처럼 만나는 기꺼움이 있다.
예전 같으면 움직이지도 않을 교수님들이 학생을 찾아 방을 찾아온다. 학교가 장애인 편의시설이 되어 있지 않으니 교수님 연구실에서 편하게 하지를 못하고 접근할 수 있는 강의실을 지정해 장애인이 나혼자뿐임에도 학생들과 교수님이 배려를 해 주는 기이한 현상을 만난다. 학교는 바뀔 생각이 없다는 말이겠지 하고 짐작만 한다.
하루를 소멸하며 견디는 삶 속에 반추하여 앞으로 한 발짝 걷던 목발을 배울 때처럼 시간 시간을 쪼개서 산다. 그러다 보면 남은 3년이 지나가겠지 싶어서 오늘도 즐겁다.
2016년 어머니께서 눈을 감으시기 전 형이 세상을 떠났다. 2년 후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가셨다. 누나네는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그때 그는 이혼으로 혼자가 된 상태였다. 그를 붙잡아준 것은 또다시 문학이었다. 그는 그때 미친듯이 시를 썼다. 그때 썼던 시들이 시집으로 솔솔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곧 시집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사는 긴수염고래」가 발간된다. 긴수염고래가 세상밖으로 나가서 외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박재홍 대표작
갈참나무 숲에 깃든 열네 살
비 오는 숲속 소로에는 갈참나무 무리 지어 섰었지 덮고 누운 낙엽 아래, 방공호에 숨어 마려운 똥을 내려놓았는데 굴참나무 무리가 어깨를 흔들어 숨겨 주었지
그 후로 40년이 흘러 거름이 된 시심은 모자 쓴 상수리와 도토리처럼 깊은 그늘 속으로 숨었지 반추한 기억 속 손에 신발을 끼고 기어다니는
친구도 없는 열네 살 장애인 박재홍
탁발
나는 어머니가 쥐고 있는 발우 같았습니다
길지도 적지도 않은 탁발과 보살심은 벗겨진 옻칠처럼 가뭇한 기억 가신 이후로 아귀처럼 부풀어 오르는 허기가 바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는 오는데 비 오는 전동리 대숲에서 그늘 속에 죽순처럼 자라는데 갈 길이 먼 우리네 인생길도 저무는데 나는 그 어디서 기다려야 하는가
탁발을 멈추고 녹슨 황혼이 벗겨진 바루 속으로 숨어 가는구나
백일홍 일수
꿈결에 더듬던 엄니 얼굴은 보성 덤벙이 달항아리에 비 떨어져 틔운 물꽃 같다 미나리를 다듬다 엉겨 붙은 거머리 같은 생을 떼어 내고 저 중천을 넘어 긴 길을 걸어 머문 곳이 천국이라는데
마을을 떠난 나는 행려의 길을 걷는 홀씨처럼 공중에 몸을 부리며 흐르다 멎을 송광사 마당에 거하는 백일홍 앞에 서면 어떨까?
도래지
아들아 더욱더 강한 허리케인일수록 눈에서 멀리 나는 철새의 모험을 배워라 역전층과 비행고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다 보면 새들은 태풍의 변화를 읽을 가능성이 있다 나의 유년이 그랬고, 너의 유년이 나로 말미암아 저녁 어스름처럼 슬펐으니 나의 시구는 지구의 궤적을 훑고 지나가는 철새였구나 여느 뭇별처럼 지는 곳에서 푹푹 빠지는 눈발을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나의 살아온 날수의 발자국을 지울 수 있기를 바랐으나 그것은 내 심장의 온기가 데우는 눈에 머문 실족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너와 나도 업장의 그늘에 숨어 바리데기 설화 속에 주인임을 알겠구나 어느 도래지에서 만나지는 그날까지
금강에 백석의 흰 당나귀가 지나갔다
아난다(慶喜)여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앉았던 둘이었다가 혼자 돌아가던 자리도 가을비에 색이 바래간다 물드는 것이 어디 몸뿐이랴 어느 산모롱이에 매달린 낙엽 하나가 마지막 손을 놓을 즈음을 기해 한 움큼 울혈처럼 뱉어지는 노을 강물 위에 흘려 놓고 공중에는 백석 그가 타던 흰 당나귀의 울음소리만 남겨 놓았다
박재홍 시인. ⓒ박재홍
박재홍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재학 중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문학 부문 심사위원, 한남대학교 사회적경제멘토 당진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심사, 한남대학교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운영위원, 대전광역시 일자리경제통상진흥원 평가위원, 당진문예의전당 당진문예연감발간 사업운영위원, 천안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심사·심사위원장 등 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대전문인협회 회원, 충남시인협회 이사, 한국미술협회 회원, 대전미술협회 초대작가(서예),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
시집 「낮달의 춤」(1993), 「사인행」(2006) 시화집 「섬진 이야기」(2008), 「사인행」(2008), 「물그림자」(2012) 2인시집 「동박새」 (2013), 「도마시장」(2014), 「신금강별곡」(2016), 「모성의 만다라」(2017) 「꽃길」(2018), 「기억 속 벌교의 문양」(2020), 「노동의 꽃」(2020), 「갈참나무 숲에 깃든 열네 살」(2021) 시선집 「사라쌍수 열두 그루」(2021), 「흑꼬리도요」(2021), 「금강에 백석의 흰당나귀가 지나갔다」(2022),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사는 긴수염고래」(2023)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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