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등단한 후배 작가님들에게(형상화에 대하여~)
수필가 정임표
많은 수필 작가님들이 "형상화"라는 말씀을 하면서도 정작 형상화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문학적 형상화에 대한 좀 더 확실한 감을 전달하고자 다시 추서 합니다. 필자가 쓴 " <강물을 만지다>를 소개하며 " 라는 이 글도 문학적 형상화(Imagery and Concrete Portrayal)에 성공한 글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장치들 덕분입니다.
< 형상화를 성공시킨 문학적 장치>
1. 추상적인 '선생님의 성품과 삶'을 시각적 사물로 치환
선생님의 고운 심성과 따뜻한 성품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마당에 핀 연산홍, 작약, 참꽃, 그리고 특별히 강조된 노란 양지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책 표지의 양지꽃과 정원의 양지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작가 정혜옥의 정체성을 시각인 이미지로 각인시킵니다.
2. 입체적인 인물 묘사와 생생한 현장감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긴장감, 마당 저쪽에서 걸어 나오는 미소, 등허리가 선득해지는 해거름의 시간, 도톰한 외투를 걸치고 다과를 들고 나오는 배려 등 시간의 흐름과 공간(정원)의 변화를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하여 독자가 마치 그 정원에 함께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3. 여운을 남기는 감각적 결말 (상징성)
선생님께 저고리를 직접 어깨에 걸어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아파트에 옮겨다 심은 양지꽃 위로 따스한 햇살이 떨어지고 있다"는 마지막 장면에 겹쳐냄으로써, 수필문학의 거장을 향한 존경과 여운을 시각적이고 따스한 온기로 완벽하게 형상화해 냈습니다.
이처럼 이 글은 개념이나 교훈을 늘어놓는 대신, 구체적인 공간과 사물, 행동과 오감(시각·촉각)을 통해 글 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만들었기에 형상화에 성공한 작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추상적인 감정이나 깨달음을 독자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처럼 그려지도록 구체적인 감각과 형상으로 바꾸어 놓은 글이라는 필자의 해설입니다. 문장에서 형상화가 무슨 의미인지 한걸음이라도 이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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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학적 형상의 힘으로 완성된 <강물을 만지다>를 소개하는 글인 < 양지꽃 햇살>은 독자들에게 삶의 깊은 유익을 선물합니다. 정혜옥 선생님의 작품집을 소개하는 이 글이 품은 형상화의 성취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결실로 다가갈 것입니다.(독자들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지 고민하면서 글을 쓰라는 뜻입니다)
<형상화가 이뤄낸 따뜻한 울림과 유익>
1. 일상의 바쁨 속에서 건져 올린 삶의 통찰
정갈한 정원의 꽃들과 해거름의 시간 속에서, 글은 일생을 함께한 부부의 연과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어떻게 아름다운 문학으로 피어나는지 눈앞에 펼쳐 보입니다. 독자들은 바쁜 일상에 묻혀 잊고 지냈던 삶의 소중한 가치와 진정한 정서적 여유를 자연스럽게 되찾게 됩니다.
2. 순수한 동심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노년의 시선
마당에서 피어나는 꽃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작은 들꽃에도 소녀처럼 감탄하는 정혜옥 수필가의 모습은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로 독자의 마음에 각인됩니다. 이를 통해 세월이 흘러도 순수한 마음과 고운 성품을 간직한 삶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깊이 체감하게 됩니다.
3. 한 권의 책과 만나는 입체적이고 깊은 울림
사천 앞바다의 붉은 노을이나 표지를 장식한 노란 양지꽃처럼, 글은 작품의 배경과 정서를 감각적인 사물로 치환해 보여줍니다. 단순한 감상문을 넘어 수필집 <강물을 만지다>가 품은 결을 입체적으로 전함으로써, 독자들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지혜가 담긴 좋은 책과 깊이 있게 교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4. 메마른 현실을 녹이는 사제 간의 따스한 온기
초인종 소리와 함께 마주한 반가운 미소, 서늘해진 등허리에 건네진 도톰한 외투와 다과 한 상은 메마른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줄 수 있는 온전한 온기를 전달합니다. 스승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과 제자를 향한 다정한 배려가 손에 잡힐 듯 형상화되어, 독자들의 가슴에도 뭉클한 감동의 온기가 스며들게 됩니다. 우리 수필의 생명은 이런 문학적인 장치에 의해서 다시 아름답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문학적 장치가 부족한 글은 그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저 잘 쓴 글일 뿐 문학작품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필자가 소개한 정혜옥 작가님의 수필 <무명베 한필>은 고도로 형상화 된 명작입니다. 그게 눈에 띄면 문학을 이해한 것이니 부지런히 문장을 형상화 시키는 습작(연습)을 하시면 어느날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문학과 예술>이 왜 늘 따라 다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문장으로의 묘사가 예술의 반열에 올라야 문학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해가 잘 안되는 분들은 옛 사람들이 왜? 낫과 기역자를 같이 배열해 놓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문장을 만들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세요. 이 역시 형상화입니다.
사람의 뇌는 모든 경험을 이미지로 변환시켜서 저장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독자들에게 오래 저장시키고 아름답게 저장시키기 위해서 형상화 기법을 쓰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세상을 이해할 때 언어적 기호(글자)보다 시각적·공간적 이미지로 입력받을 때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처리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릴 때, 뇌는 사진첩에서 사진을 꺼내듯 원본을 그대로 영사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겪었던 시각적 풍경, 촉각적 느낌, 감정 등의 핵심 조각(이미지와 파편)들을 뇌의 여러 영역에서 다시 불러와 조합(재구성)해서 회상 합니다. 이 과정에서 뇌는 구체적인 감각 이미지 형태의 단서들을 훨씬 더 잘 기억하고 인출합니다.
그 때문에 형상화를 시킨 문학이 오래 오래 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예찬을 받는 것입니다. 문학의 형상화는 뇌 과학의 산물입니다. "알렌스키" 처럼 나쁜 곳에 써먹지 마세요.
필자가 오래 전에 이런 무서운 비밀을 아무에게나 함부로 가르쳐 줄 수가 없다고 한 것도 '사울 알렌스키' 같은 성정을 지닌 인간들 때문입니다. 수필은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분들이 나누는,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입니다.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예면 예하고 아니면 아니오" 하는 안과 밖에 일치하는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