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생명의 무늬, 존재의 본질을 묻다
― 산림문학 여름호 수필을 읽고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대 객좌교수
나무를 보는 것은 곧 시간을 보는 것이고, 시간을 보는 것은 곧 인간을 보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Ⅰ.
수필은 삶을 기록하는 문학이지만, 단순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일상의 체험을 통하여 인간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소한 사물 속에서 삶의 진실을 길어 올릴 때 비로소 문학이 된다. 좋은 수필은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경험을 성찰로 바꾸고, 기억을 상징으로 승화시키며, 개별적 체험을 보편적 인간 이해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번 여름호 산림문학 수필들은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삶의 상처와 기억, 존재의 가치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수필은 일상의 기록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
평론은 그 낯섦이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강인철 신인철 옥형길 조철형 허정열의 작품들은 거창한 관념이나 인위적 수사를 앞세우지 않는다. 동물농장의 우화, 아버지와 함께 심은 은행나무, 도시의 나무들, 금강송, 그리고 늦가을의 시저리꽃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대상들이다. 그러나 작가들은 그것들을 단순한 사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인간 삶의 거울로 전환한다. 사물과 자연, 역사와 기억을 통해 삶의 본질을 비추어낸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은 수필의 본령과 산림문학의 지향성에 부합하는 성과를 보여준다.
Ⅱ.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쓴다. 그러나 독자는 그 경험을 직접 겪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는 감동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작가가 독자의 동감능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대상 작품은 소재와 형식은 서로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모두가 사물과 자연, 기억과 역사를 단순한 관찰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인간 존재를 비추는 상징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자아낸다. 강인철은 『동물농장』이라는 고전을 통해 권력과 인간 본성을 성찰하고, 신인철은 은행나무에 아버지의 생애를 투영한다. 옥형길은 도시의 나무에서 상처를 견디는 삶의 지혜를 발견하며, 조철형은 소나무를 통해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생명력을 환기한다. 허정열은 시저리꽃에 자신의 성장 서사를 포개어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결국 이 작품들은 개별적 체험을 넘어 보편적 인간 이해로 나아가며, 사물의 형상 속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수필문학의 미학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라는 당연한 조항마저도 야금야금 내용을 변질시켜 정당한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는다. 나중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라며 교묘하게 유도해 버린다.
- 강인철의 「동물농장」
「동물농장」은 독서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통찰을 끌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단순한 독후감의 차원을 넘어 권력의 본질을 성찰하는 텍스트로 읽어낸다.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주의 혁명과 권력의 변질이라는 역사적 현실까지 연결하는 구성은 독서 수필의 모범적 사례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을 현재적 의미로 다시 환기시키는 능력이 돋보인다. 마지막에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이라는 가정법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문학을 현실 인식의 거울로 확장하는 점 또한 이 작품의 강점이다.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는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흰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 빈 자리 사이로 두피가 드러났다. 아버지는 줄기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등의 핏줄이 얇게 불거져 있었다. 손바닥이 거친 껍질 위에서 잠시 멈췄다.
- 신인철의 「아버지의 은행나무」
이 작품은 가족수필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아버지는 줄기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등의 핏줄이 얇게 불거져 있었다.’라는 위 인용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절제에 있다. 작가는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은행나무와 아버지의 모습을 병치하여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심었던 묘목이 거목으로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늙어갔고, 그 변화는 설명보다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마지막에 “말라죽은 한 그루가 문득 떠올랐다”는 문장은 죽음에 대한 예감과 노부모에 대한 안타까움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은행나무가 곧 아버지의 생애를 상징하는 구조는 뛰어난 형상화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오늘도 온갖 시련을 안으로 삭이며 굳건히 버티고 사는 도시의 나무들을 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에게 맑은 산소를 무한이 뿜어주는 도시에서 사는 나무들의 희생에 고마움을 느낀다. 상처를 몸통 속의 아름다운 무늬로 삭이는 나무의 교훈을 새긴다.
- 옥형길의 「도시에서 사는 나무들」
옥형길은 좋은 수필을 써온 작가다. 이 수필은 생태적 감수성과 인간적 성찰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 작품은 숲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를 향한다. 특히 나무의 옹이를 삶의 상처에 대응시키는 비유는 매우 효과적이다. 상처를 삭이지 못하면 몸통이 썩고, 삭여내면 아름다운 나이테와 무늬가 된다는 통찰은 단순하면서도 깊다. 자연 관찰을 삶의 철학으로 연결하는 수필 본연의 미덕이 잘 드러난다. 설명적 문장이 다소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와 인간을 동일선상에 놓는 상징적 사유 덕분에 작품의 울림이 오래 지속된다.
추석에는 솔잎을 깔고 찐 떡이 송편이며, 술밥에다 누룩과 솔잎을 섞어 담근 술이 농주다. 죽은 나무뿌리에는 복령이, 산 나무뿌리는 송근봉이 자란 다. 소나무가 자랐던 주위에는 송이가 났으니, 소나무는 항상 우리 곁에 함께 살았다.
- 조철형의 「소나무여, 소나무여」
조철형도 마찬가지다. 저력의 수필가답게 소나무에 대한 문화사적 생태학적 탐구가 돋보인다. ‘소나무는 항상 우리 곁에 함께 살았다’라는 문장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소나무를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역사를 함께한 존재로 인식한다. 애국가의 소나무, 송편의 솔잎, 황장목, 금강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기억들이 풍성하게 제시된다. 특히 소나무를 민족 문화의 상징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독자로 하여금 잊고 지냈던 전통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다소 백과사전적 정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나무에 대한 애정과 체험이 진정성 있게 녹아 있어 설득력을 확보한다.
저 시저리꽃은 며칠 후면 곧 사라질 것이다. 열흘이면 어떻고 잠시면 어떤가. 늦었지만 자기 몫을 해냈다. 삶보다 더 강한 삶, 어떤 힘도 쳐부술 수 없는 삶을 보여주었다.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꽃이 되고 싶었다고. 존재가 되고 싶었다고. 콧잔등이 시큰했다.
- 허정열의 「시저리꽃」
「시저리꽃」은 이번 작품들 가운데 가장 강한 자기 고백성을 지닌 수필이다. ‘꽃이 되고 싶었다고. 존재가 되고 싶었다고’하는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응축한 결정적 표현이다. 늦가을에 피어난 시저리꽃은 곧 작가 자신의 삶이다. 여섯 남매의 맏딸로 살아오며 겪었던 억압과 열등감, 그리고 자기 극복의 과정이 꽃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특히 시저리꽃이라는 소재가 단순한 관찰의 대상을 넘어 자기 존재의 은유로 기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상담학 공부와 강연 활동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과정 역시 자전적 서사에 머물지 않고 독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된다. 시저리꽃은 결국 늦게 피었지만 끝내 피어낸 인간 존재의 승리인 셈이다.
Ⅲ.
좋은 수필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감각적 존재 경험을 독자 안에서 생성했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이번에 살펴본 다섯 편의 수필은 서로 다른 소재와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사물을 통해 인간을 바라본다는 특징을 갖는다. 돼지와 권력, 은행나무와 아버지, 도시의 나무와 삶의 상처, 소나무와 민족 문화, 시저리꽃과 자기 극복은 각각 하나의 상징 체계를 형성하며 인간 존재의 진실을 드러낸다. 수필이 단순한 경험담을 넘어 문학이 되는 순간은 바로 이러한 형상화의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들은 일상과 자연, 역사와 기억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색하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특히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미덕은 삶의 주변부에 놓인 사물과 풍경을 존재 탐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데 있다. 동물농장의 우화는 권력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고, 은행나무는 아버지의 생애를 증언하며, 도시의 나무들은 상처를 견디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또한 소나무는 우리 문화의 뿌리를 일깨우고, 시저리꽃은 끝내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는 존재의 의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들 작품은 상처를 생명의 무늬로 바꾸고, 기억을 성찰로 승화시키며, 개별적 체험을 보편적 인간 이해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야말로 수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예술이 되는 이유이며, 오늘의 독자들이 이 작품들 속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까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