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子曰 人之生也 直 罔之生也 幸而免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그 이치는 정직이니, 곧지 아니한 자가 살아있는 것은 요행히도 죽음을 모면한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셨다.
程子曰 生理本直 罔不直也 而亦生者 幸而免耳 정자가 말하길, “살아가는 이치는 본래 정직한 것이다. 罔은 정직하지 아니한 것이지만, 그런데도 또한 살아있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龜山楊氏曰 人之生也直 是以君子無所往而不用直 直則心得其正矣 古人於幼子常示毋誑 所以養其直也 所謂直者 公天下之好惡而不爲私焉耳 구산양씨가 말하길,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바른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어디를 가더라도 정직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 정직하면 마음이 그 올바름을 얻을 것이다. 옛사람은 어린 자식에게 항상 속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그 정직함을 기르는 방법이었다. 이른바 정직이라는 것은 천하의 좋아하고 미워함를 공정하게 하여 여기에서 사사로움을 위하지 않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罔之生也之生 與上面生字 微有不同 此生字是生存之生 人之絶滅天理 便是合死之人 今而不死 皆幸免也 주자가 말하길, “罔之生也의 生자는 위의 生(살아간다)자와는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다. 여기서 生자는 생존한다는 의미의 生이다. 사람이 天理를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곧바로 죽어 마땅한 사람인데, 지금 죽지 않는 것은 모두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 2 | 天地生生之理 只是直 纔直便是有生生之理 不直則是枉天理宜自屈折也 而亦得生 是幸而免耳 천지가 살아있는 만물을 낳는 이치는 그저 정직함이니, 조금이라고 정직하다면 곧바로 살아있는 만물을 낳는 이치가 있는 것이고, 정직하지 않다면, 천리를 구부려 자신에게 합당하도록 굽히고 꺾는 것이니, 그러고도 또한 삶을 얻었다면 이것은 요행히도 죽음을 면했을 따름인 것이다.
罔只是脫空作僞 做人不誠實 以非爲是 以黑爲白 如不孝於父却與人說我孝 不弟於兄却與人說我弟 此便是罔 據此等人合當用死 却生於世 是幸而免耳 生理本直 如耳之聽 目之視 鼻之齅 口之言 心之思 是自然用如此 若纔去這裏 著些屈曲支離 便是不直矣 又云 其粗至於以鹿爲馬 也是不直 其細推至一念之不實 惡惡不如惡惡臭 好善不如好好色 也是不直 罔은 그저 근거 없는 빈껍데기(脫空)이자 거짓을 행하는 것으로서, 그 사람됨도 성실하지 않은 것이니, 그른 것으로써 옳은 것을 삼고, 검은 것을 하얗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컨대, 아비에게 효도하지 않는데도, 오히려 남과 더불어 나는 효도를 한다고 말하고, 형에게 공손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남과 더불어 말하면서 내가 공손하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罔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거하면, 마땅히 죽어야 함에도 도리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은 요행히도 죽음을 면한 것일 따름이다. 살아가는 이치는 본래 정직함이니, 예컨대 귀는 듣고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작용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여기에서 멀어져서 약간의 지엽적이고 어수선함이라도 드러낸다면, 곧바로 이는 정직하지 못함인 것이다. 또 이르길, 그 거친 것에 있어서 사슴을 말이라고 여기는 것도 역시 정직하지 못한 것이지만, 그 세밀한 것에 있어서 미루어가다 진실하지 않은 한 생각에 이르러서, 악을 미워하기가 악취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며, 선을 좋아하기가 예쁜 여색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면, 이 역시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如水有源便流 這只是流出來無阻滯處 如見孺子將入井便有箇惻隱之心 見一件可羞惡底事 便有箇羞惡之心 這都是本心自然發出來 若順這箇行 便是直 若是見入井後不惻隱 見可羞惡而不羞惡 這便是罔 예컨대 물에 수원지가 있으면 곧 흘러가는데, 이것은 그저 물이 흘러나옴에 있어 막힌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바로 측은지심이 생기고, 한 건의 부끄러워하고 미워할 만한 일을 보면, 곧바로 수오지심이 생겨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모두 본심이 자연히 발현되어 나온 것이다. 만약 이것을 따라서 행한다면, 이것이 곧 정직함이다. 만약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본 후에도 측은해하지 않거나, 羞惡할 만한 것을 보고도 羞惡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罔이다.
此章之說 程伯子之言 約而盡矣 兩生字雖若不同而義實相足 蓋曰 天生是人也 實理自然初無委曲 彼乃不能順是而猶能保其生焉 是其免特幸而已耳 이 장에 관한 학설 중에서, 정백자(정호, 명도선생)의 말씀이 제일 요약되었으면서도 다 망라한 것이다. 2개의 生자가 비록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뜻은 실제로 서로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대체로 말하길, 하늘이 이 사람을 낸 것은 실로 이치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니, 처음부터 자세한 곡절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도리어 이에 따르지 못하고도, 여전히 능히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그가 죽음을 면한 것이 그저 요행일 따름인 것이다.
如木方生被人折了 便不直 多應是死 到得不死 幸然如此耳 예컨대 나무가 바야흐로 생겨났을 때 사람에 의해 꺾이게 되면, 곧 곧지 못하게 되고, 대부분은 응당 죽을 것이지만, 죽지 않게 됨에 이르면, 요행스러움이 이와 같을 뿐이다.
南軒張氏曰 天理本直 在人則順其性而不違 所謂直也 直者生之道 順理而行 雖命之所遭 有不齊焉 而莫非生道也 罔則昧其性冥行而已 是與遊魂爲變者 相去幾何 其生特幸免耳 남헌장씨가 말하길, “天理는 본래 곧은데,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본성을 따라서 어긋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른바 直이라는 것이다. 直이라는 것은 삶의 道이니, 이치를 따라서 행한다면, 비록 命이 만나는 것에 가지런하지 못함이 있을지라도, 삶의 道가 아님이 없는 것이다. 罔은 곧 그 본성에 어두워서 깜깜하게 행할 따름이니, 이것은 ‘흩어져 떠도는 혼이 변하는 것’과 더불어 서로 거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가 살아있는 것은 그저 요행히 면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罔無也 謂滅盡此直道 쌍봉요씨가 말하길, “罔이란 없다는 것이다. 이 정직한 道가 전부 다 소멸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