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가 다 수입이구나…세종 때부터 숙원 사업 국산화 성공
조선비즈 = 이코노미조선=윤희훈 조선비즈 기자
충북 음성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 영양번식작물조사실에서 이정훈 농업연구사가 국산 감초와 수입산 감초를 비교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사가 오른손에 든 감초가 국산, 왼손에 든 게 수입산이다. 사진 윤희훈 기자© 제공: 조선일보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있다. 한약을 지을 때 감초가 반드시 들어가는 것처럼, 꼭 필요한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은 아니지만, 극의 진행을 원활히 돕는 조연 배우에게 곧잘 ‘감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약재로서 감초의 핵심 기능은 ‘조화제약(調和諸藥)’이다. 각각의 약재가 갖고 있는 약성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해독 기능도 있어, 약재의 독성을 완화하는 기능도 한다. 항알레르기, 항균 작용도 한다. 이 때문에 한약뿐만 아니라 화장품, 치약, 식품에도 감초가 사용된다. 심지어 담배에도 감초가 들어간다.
이처럼 다방면에 쓰이는 감초이지만, 국내에서 재배하는 양은 극히 적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감초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감초 재배가 적은 것은 기후 탓이다.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감초는 고온다습한 국내 기후와 잘 맞지 않는다. 주요 산지는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 등 유라시아 내륙 사막 지역이다.
감초 국산화는 우리 민족의 숙원 중 하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대왕이 감초의 국내 재배를 지시했지만, 관원이 실패해 처벌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 이후로도 문종, 세조, 성종 등이 감초 재배를 명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600년 넘게 이어져 온 감초 국산화의 꿈은 약 10년 전인 2014년 현실이 됐다. 당시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은 ‘만주 감초’와 유럽 감초로 불리는 ‘광과 감초’를 이종 교배해 ‘원감(元甘)’ 품종을 개발했다.
하지만 농진청이 개발한 원감은 그동안 농가에서 재배되지 못했다. 약으로 쓰도록 허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원감에 대해 ‘이종교배로 개발한 종’이라며 약전 등재를 허가하지 않았다. 약전에 등재되지 못한 품목을 약재로 사용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농진청의 오랜 연구와 품종 추적 끝에 약전 등재의 길이 열렸다. 원감이 ‘유럽 감초(G. glabra)’와 ‘만주 감초(G. uralensis)’의 자연교잡 신종인 ‘G.korshinskyi’와 내부 조직이 형태학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농진청은 ‘국산 감초 산업화’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2월엔 감초를 중심으로 한 약용 산업 발전 협력을 주제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충북도농업기술원, 제천시가 업무 협약을 맺기도 했다. 협약에 따라 제천시는 원감 생산 단지를 구축하고 지역특화작목으로 감초를 육성할 방침이다. 감초 국산화 연구를 주도해 온 농진청의 이정훈 농업연구사를 최근 인터뷰했다.
충북 음성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의 연구재배지에서 감초가 자라고 있다. 같은 시기에 파종하였지만 맨 왼쪽에 있는 원감은 잘 자라는 반면, 우측 비교군 감초는 생장이 원활하지 않다. 사진 윤희훈 기자© 제공: 조선일보
ㅡ우리나라가 1년에 수입하는 감초의 양이 얼마나 되나.
“정확한 통계가 없어 알기 어렵다. 관세청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t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는 감초를 약재 상태로 수입하는 양이다. 감초 추출물 수입량은 이를 훨씬 상회한다. 업계에선 연간 1만t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수입 실태와 국내 거래 동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추후 연구 용역을 낼 계획이다.”
ㅡ국산화는 전혀 안 됐던 것인가.
“그렇다. 감초 국산화는 세종대왕 때부터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고온다습한 한반도 기후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감초는 주로 고온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자란다. 세계적인 산지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나 중국, 내몽골 지역의 내륙 사막 지역이다.”
ㅡ국산화 품종은 어떻게 개발했나.
“이종 간 교배를 통해 품종을 개발했다. 국내에서 많이 쓰이는 ‘만주 감초’와 ‘광과 감초’를 교배해 2014년 원감을 개발했다.”
ㅡ이종교배라면, 서로 다른 종이라는 것인가.
“둘 다 감초지만, 종은 다르다. 다른 종끼리 암수를 교배하는 방법으로 개발했다.”
ㅡ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생장이 잘되는 것 외에도 장점이 있나.
“원감은 기존 만주 감초보다 생산성이 두 배가량 좋다. 10a(아르·1a=100㎡)당 평균 생산량이 359㎏이다. 감초의 핵심 성분인 ‘글리시리진’ 함량도 3.96%로 1%대인 만주 감초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감초가 잘 걸리는 ‘점무늬병’에 대한 저항성도 있다. 독성 실험에서도 위험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약리(藥理) 활성도 기준치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ㅡ2014년에 개발했다고 하지 않았나. 우수한 품종인데 왜 그동안 보급이 안 됐던 것인가.
“이종교배로 개발한 종이라는 이유로 약전 등재 승인이 되지 않았다. 교잡종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다 2017년 자연 상태에서도 교잡종이 발생한다는 논문을 보게 됐다. 논문의 연구 결과가 맞는다면, 자연 상태에서도 교잡종으로 원감 같은 품종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사막에서 감초 찾기에 나섰다. 오랜 탐사 끝에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 감초 교배종의 대규모 자연 군락을 발견했다. 자연 상태에서도 교잡종으로 발생하는 품종이라는 것을 입증해 약전 등재 및 국산화 길을 열었다.”
ㅡ감초의 유전자 정보(DNA)를 분석해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도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를 찾았나.
“앞으로 해야 할 연구다. 만약 해당 DNA를 파악한다면 엄청난 성과다. 묘목 상태에서도 이 작목이 국내에서 잘 자랄지, 못 자랄지 바로 판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ㅡ품종 보급 계획은.
“우선 올해는 3㏊(3만㎡) 면적에 국산 감초 품종을 재배할 수 있도록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다. 2년 뒤인 2025년엔 90㏊(90만㎡), 2027년엔 270㏊(270만㎡)까지 재배 면적을 늘릴 계획이다. 2027년 목표 생산량은 약 1200t이다. 이는 2027년 예상되는 국내 감초 수요량(3600t)의 33%에 달한다.”
ㅡ감초는 가격이 저렴한 약재이지 않나. 수입하는 것보다 국산화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나.
“약재 특성상 품질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 현재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산 감초는 품질이 낮으면 100g에 1000~2000원대에 거래되지만, 품질이 좋으면 1만5000원대까지 가격이 오른다. 평균 가격을 1만원으로 잡으면 1㎏에 10만원, 10a에서 3590만원의 기대 수입이 나온다. 감초는 2년생이기 때문에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1800만원이다. 10a에서 쌀로 거둘 수 있는 기대 수입은 83만원이다. 농가 소득 측면에서 2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연간 500억원에 달하는 수입 대체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동시에 2조원 규모의 세계 감초 추출물 산업에 진입할 기회도 생겼다.”
ㅡ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보나.
“원감은 생산성과 유효 성분 함량도 강점이지만, 최대 강점은 균질성이다. 제약 회사 입장에선 약재를 이만큼 넣으면, 유효 성분이 이만큼 나온다는 계산이 서야 해당 약재를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 원감은 이러한 제약 회사들의 요구를 만족하는 제품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감초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ㅡ해외 감초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나.
“앞서 말했듯이 감초는 사막에서 잘 자란다. 현재 중앙아시아 사막 국가의 과제는 사막화를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작물을 심었는데, 가장 효과적인 게 감초였다. 이 때문에 주요 감초 수출국에서 남벌을 막는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감소하면 감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향후 수입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국산화는 꼭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