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참으로 요상한 현상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이른바 저출산과 노령화입니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세계 상당수의 나라들에서 저출산과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 강도가 아주 강력합니다. 저출산의 경우 이미 전세계에 소문이 났습니다. 출산률 0.7이라는 숫자가 저출산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세계의 저명한 인구학자들이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통계라면서 정말 연구대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노령화의 속도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노령화의 상징인 일본을 추월할 그런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며칠전 발표된 한국 여성의 평균수명이 90살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 남성들의 평균수명도 86.7살이라니 정말 고령화가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70대 이상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20대 인구를 넘어섰다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피라미드형 인구구조에서 한국은 역 피라미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오래 산다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축하하고 흐뭇해야할 사안이지만 지금 그런 통계를 받아든 국민들 대부분의 심정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부모들이 오래 산다고 하는데 자식들의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현대들어 효자 효녀가 다 사라진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는 않겠죠. 물론 유교적인 사고 방식에 젖어 있던 시절에 비해 초핵가족 시대에 부모자식간의 애정의 온도차가 나는 것은 당연할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다가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세대갈등의 문제입니다. 세대갈등은 현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예전 그리스 로마시절에서도 세대갈등은 존재했습니다. 호모사피언스가 등장하고 나서 이 세대갈등은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지금 60~70대 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학창시절 팝송에 심취되어 트랜시스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자식들에게 부모들은 종자가 다른 인간들이 태어났다거나 망할 징조라고 하지 않았나요. 민요와 창에 익숙했던 부모님들이 요란한 굉음소리같은 팝송에 락엔롤에 헤비메탈 뮤직에 망칙한 느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지금 젊은층에서 듣는 힙합도 기성세대들의 귀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음악처럼 여겨지니까요. 세대갈등은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지금 세대갈등은 전의 세대갈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저출산과 고령화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 보수 진보적 사고방식의 차이도 한몫을 하지만요. 저출산이 한국에 유독 심한 것은 엄청난 경쟁사회와 유래가 없는 압축성장의 후유증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초극한 경쟁사회에서 나고 자라다보니 이제 경쟁이 지긋지긋한 것입니다. 그런 지긋지긋한 경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다는 젊은층의 생각이 저출산의 한 요인이 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런 젊은층의 생각에 부모들은 불편합니다. 언제는 쉬웠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요즘 젊은층들은 너무 현실적이 되었다고 부모층에서는 생각합니다. 결혼도 하기 싫다 아이도 낳기 싫다는 그들의 태도에 불편을 넘어 분노가 인다는 부모들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빨라지는 고령화 상황이 세대갈등을 더욱 부채질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부모들이 환갑을 지나면 서서히 자식들에게 재산을 넘겨주고 뒷전으로 앉곤 했지요. 자식들은 부모들이 물려준 재산을 종잣돈으로 그들의 부를 키워갔습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그런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고령화로 인해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으니 자식들에게 쉽게 재산을 넘겨 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궁핍한 상태에서 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젊은 자식들의 불만이 증가하게 되겠죠. 자신들의 부모들은 그들의 부모로 부터 일찌기 재산을 물려 받아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 자신들의 수중으로 부모들의 재산이 넘어올 날이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떤 자식이 부모 수명이 늘어나는 것을 반기겠습니까.
노인들은 젊은 층이 낸 세금으로 의료비와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 받습니다. 다시 말해 젊은층이 노인층을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인층은 급증하는데 젊은층이 급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금을 낼 젊은층이 축소되면 나라 재정은 쪼그라들 것이고 그러면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보조금은 점차 사라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지하철 공짜로 타는 연령을 대폭 상향하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젊은층 사이에 많습니다. 대표적인 세대갈등의 요인입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과 일반석 사이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공짜로 지하철을 탔으면 조용히 앉았다가 내리면 될텐데 노인층들은 젊은층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해댑니다. 젊은층들은 안 그래도 피곤한데 모르는 노인네들이 이래라 저래라 훈수두면 짜증은 급증합니다. 지하철에서 노인층과 젊은층의 다툼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세대갈등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의 대갈등이 세계에서 가장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령층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층이 많고 젊은층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그러니 충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집안에서도 특히 선거때만 되면 부모 자식간의 목소리가 높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그래도 세대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저출산에 노령화의 심화와 보혁 갈등까지 섞이니 어찌 세대갈등이 심화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세대갈등의 골을 메우고 국민들에게 앞으로의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야할 세력은 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데 한 몫을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앞으로 특단의 국민적 대합의가 이뤄지지 않는한 저출산과 고령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이에 따라 세대갈등도 더욱 심화될 것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1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