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촌놈이다. 유년 시절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장구경 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던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촌놈이다. 그래서인지 지천명이 코앞인 나이인데도 장날이 되면 차를 운전하여 근처에 세워 놓고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할인마트에 가면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라도 일부러 기다렸다가 장날에 구입하기도 한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장소가 할머님들껜 최고의 자리인가 보다. 그런 자리에는 할머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물건을 팔고 있다. 하루 종일 팔아야 1-2만원어치 팔지만 장날이 되면 텃밭의 푸성귀라도 뜯어서 나오시는 할머님들의 모습은 고향의 장날을 그대로 재현해 주고 계신다. 그래서 참 좋다.
어제는 남양장날, 오늘은 사강장날이다. 병원에 들러서 치료를 받고 동근삼촌 약도 처방받아왔다. 무척 추울 것이라 했는데 낮엔 춥지 않았다. 가족들과 장구경을 가고 싶었다. 점심을 먹으며 “원장님하고 장구경 갈사람~~”했더니 제일 먼저 재구삼촌이 손을 든다. 이어서 선재씨가 손을 들고, 석봉 삼촌도 가겠다고 한다. 보행이 어려운 동근 삼촌은 안 가신다 하고, 주봉 집사는 혈액투석을 받으러 갔으니 장구경을 갈 수 없다. 인선씨에게 장구경 가자고 하니 그냥 집에 있을 거란다. 함께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오면 좋으련만 점점 행동반경이 좁아져가는 인선씨가 걱정된다.
남자 넷이서 차에 탔다. 사강시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모두 내리게 한다. 목발 짚은 원장, 지팡이 짚고 가는 석봉 삼촌, 소아마비 재구 삼촌, 천방지축 선재씨. 이렇게 걸어가는 모습이 이상한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당당하게 장구경을 한다. 여수에서 올라 오셨다는 건어물 장사 아저씨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오늘은 건어물을 구입할 계획이 없다. 천방지축 선재씨가 도망가지 않고 얌전하게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저게 뭐지?”라고 물으면 대답을 잘한다. 이럴 땐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다.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석봉 삼촌과 재구 삼촌에게 따뜻하고 편한 털신을 사주기 위함이다. 두 켤레를 내 준다. 두 분 다 신어보고 좋아 하신다.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석봉 삼촌 신발을 벗으라 하니 안 벗으려고 한다. 두 분이 똑같은 신발을 사면 누구 신발인줄 몰라 발생할 일이 훤하게 눈에 보이는 듯 하여 각각 다른 신발을 사주기 위함인데 안 벗는다. 내가 벗으라니 얼굴 표정이 굳었다. 먼저 다른 신발을 달래서 바꿔 신으라 하니 이제야 신발을 벗는다. 선재씨는 멋진 운동화를 신고 있기에 털신을 살 필요가 없다. 두 분은 룰루랄라 신났다.
어묵집 앞을 지나다 어묵 한 꼬치씩 들고 먹는다. 시장에서 파는 어묵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식탐 많은 선재씨랑 석봉 삼촌은 언제 먹었는지 모르게 다 먹고 한 꼬치씩 더 잡고 있다. 재구삼촌까지 한 개씩 더 드시라 했다. 다시 구경을 하며 걷는다. 차에서 양말을 팔고 있다. 우리 가족들 모두 신을 수 있게 양말도 샀다. 국화빵을 구워 파는 리어카 앞을 지나가다 모두 걸음을 멈췄다. 먹자! 점심 먹은 지 1시간도 안됐는데 다들 잘 먹는다. 시장에 오면 이런 맛이 있기에 재미가 있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국화빵을 싸 달라고 했다. 요금을 지불하고 이동을 하는데 모두가 행복한 모습들이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주차한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석봉 삼촌이 나를 잡는다. “원장님~ 나 빤쮸 사줘요.” “집에 일곱 개 있잖아요. 다음에 사줄게요.” “다음에? 와~~ 원장님~” 하며 내 팔을 잡는 석봉 삼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이들의 행복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마땅히 행복하게 살아야할 내 가족들이니까.
첫댓글 행복은 내 마음의 만족도에 따라서 온다고 누가 그랬지요? 어는 부자집에는 다 갖추고 재능도 갖췄지만 부족한 하나 때문에 그 하나만을 구하고 있더라구요. 99개 가진 것 중 하나가 없는 하나만을 갖기 위해 혈안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도 그렇지 않는가? 가진 99개는 땅속에 묻어 두고 없는 한 개에만 목을 빼며 기다리지 않는가? 님의 가족들은 부자들입니다. 행복지수가 더 큰 ...
감사합니다,. 항상 평안하세요.
그 행복 지켜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멘~ 고맙습니다. 평안하소서.
*^^* 소박한 행복을 가질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요...
ㅎㅎㅎ 울 동네도 장날 있답니다...38장이지요..
촌놈이라 더 그런거 같아요. 제 고향은 전남 완도군 청산도라는 섬이거든요.
쥔공들모습은 안 보이지만..
오늘 여기 경기도 양평 장날모습 그대로네요
어느 장날이든지 비슷하겠지요. 평안하세요.
책으로 출판된 좋은 수필 한 편을 읽은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들이 정말 친근하게 그려지네요.
어묵꼬치와 국화빵이라... 아흑... 둘 다 이 겨울의 별미이죠!!
고맙습니다. 언제나 강건하십시오.
따뜻한 글이 정겹습니다. 나도 촌넌이기에~~~어린시절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시골 장날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모든 가족분들과 따듯한 겨울 되셨으면 합니다.
종종 장구경도 나가시고~~~
네 알겠습니다. 항상 평안하세요.
저도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언제 근처에 가면 밥 한 그릇 대접 해 주실 거지요^^
지오나눔님의 왈:
"아이고 내 8자야! 온통 사 달라는 늠 뿐이넹~내가 아무리 나누는걸 즐기며 사는 사람이라지만
어디사는 뉘신지 통성명은 해야지 않쏘!....10자님?....." ㅋㅋ
저도 범띠랍니다. 언제든지 오세요. 반갑게 마중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