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일하며 좋은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사는 여러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당사자의 생각과 생활을 꽤 많이 알게 된다.
일반인뿐 아니라 유명 인사나 재력가들도 여럿 만나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돈이나 지위는 행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엄청난 성공을 한 사람이 작은 일에 지속적인 고통을 겪는가 하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행복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다.
행복을 느끼는 건 일종의 자질이나 능력 아닐까?
궁금하던 차에 이 문제를 다룬 책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탐구 보고서'를 읽었다.
하버드 대학교 연구팀이 1938년부터 재학생 268명과 보스턴 빈곤층 소년 456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일생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86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주기적인 설문 조사와 건강 기록 검토, 혈액과 DNA 검사까지 다각도로 진행된다.
대상자의 자녀들도 참여 중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실증적으로 추적하기 때문에 삶의 보편적인 흐름과 결정적인 요소가 잘 드러나 있다.
연구 결과는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뒤엎는다.
'행복의 열쇠'는 성공, 재산, 건강 등 외적 요인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 따뜻한 관계를 맺는 생활이 사람을 행복으로 이끈다.
세계 각국의 여러 사회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결론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구채적인 증거를 몇 가지 살펴보자.
*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 노화를 막는 엔돌핀,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호르몬은 고독할 때보다 친밀감을 느낄 때
훨씬 많이 분비된다.
가까운 사람이 환자의 손을 잡아주면 뇌의 고통 중추 작동이 멈추고 고통이 줄어든다.
* 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4주간 행동 지침을 주고 관찰한 결과,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라'라고
한 그룹이 '자신을 보살피라.'라고 한 그룹에 비해 염증 지표가 낮았다.
감기 바이러스를 주입했을 떄도 전자가 후자에 비해 회복이 빨랐다.
* 말기 신장 질환자가 가족, 간호사, 동료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분석한 결과 , 친절한 태도를 보인
환자들이 1년 후 생존율이 냉담한 사람들보다 높았다.
*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입자인 텔로미어에 관한 연구도 놀랍다.
텔레미어는 나이 들수록 길이가 짧아진다.
다른사람을 아끼는 훈련을 한 그룹과 자신에게 집중하는 명상을 한 그룹을 나누고 6주 뒤에 그 길이를 측정해 보니
전자가 후자에 비해 텔로미어의 마모 속도가 훨씬 느렸다.
이런 증거가 다수 존재해 친밀감이 건강과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는 과학적 이견이 없다.
따라서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에 신경 쓰는것보다 타인을 위하고 봉사하는 것이 건강에 훨씬 좋다.
반대로 외로움은 흡연이나 비만보다 건강에 해롭다.
의사 앤서니 마자렐리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을 때 얻을 수 있다'라면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과 연민을 갖는게 '놀라운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은 오히려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잃고 사는 셈이다.
다른 이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버드 대학교 연구팀은 그 출발점이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는 거라며 말한다.
누구나 훈련하고 노력하면 따듯한 관계를 만드는 공감과 연민을 키울 수 있다.
처음 보는 음식점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보자.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내 삶을 결정한다.
변화는 남을 돕고 위할 때 가장 빨리 일어난다.
관대한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면 누구나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
마자렐리는 그의 책 '삶이 고통일 땐 타인을 사랑하는 게 좋다'에서 매일 16분만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 갖고
타인을 도우면 행복해진다고 단언한다.
16분은 100시간을 365일로 나눈 수치다.
그는 실제로 그의 병원에서 심장병으로 죽어가는던 50세 환자가 봉사 활동을 하며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환자들에게도 이 방법을 권했다.
현대 과학은 행복이 돈이나 지위, 성공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나의 진짜 보물이 나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다.
먼저 손을 내밀어 흙을 파낸다면 상대와 함께 보물을 캐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벗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가까이 있는 이에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비밀이다. 윤재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