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계열의 영화는 참 많다.
소시적, 리비도의 무의식적 발현의 결과로 관람하게 된 잘만 킹 감독의 ‘레드 슈 다이어리’부터 최근에 부쩍 유행을 타기 시작하여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에스 다이어리’ ‘프린세스 다이어리’ ‘올드미스 다이어리’ 그리고 영화는 아니지만 중고등학생의 필독서로 유명한 ‘ 안네의 일기(다이어리)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요즘 같은 연말에는 각종 가게마다 넘쳐나는 양지사의 각종 2007년도 다이어리까지 참으로 일기는 가장 내밀한 인간 개인의 기록이면서도 누군지 모를 익명의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쟝르이며 타인에게는 끈질긴 관음의 욕망을 도발하는 매혹적인 텍스트 임에는 분명하다.
위의 여러 다이어리 영화 중 잘만 킹 감독의 ‘레드 슈 다이어리’는 끈적 끈적한 그림의 포스터와 자극적인 카피 문구에 혹해서 상당히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보게 되었는데 영화가 의외로 야하지 않아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와일드 오키드’ ‘나인 하프 위크’ ‘투문 정션’등 일련의 잘만 킹 감독의 영화들을 모두 불순하기만 한 의도로 관람하면서(놀랍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았다!) 나름대로 탐미적이고 사색적인 에로티시즘 영화를 고집하던 감독에게 큰 결례를 범한 것이다.
그 외 모든 다이어리 계열의 영화들은 진지하거나, 웃기거나, 기가 막히거나, 유치한 것으로 제 나름의 미덕은 다 있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노처녀 수난 영화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파니핑크’와 파니핑크가 헐리우드의 상업 로맨틱 코미디물로 탈바꿈한 공전의 히트작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한국식 버전이다.
여성영화 최고의 명대사라 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서른이 넘은 여자가 사랑에 빠질 확률보다는 원자폭탄을 맞을 확률이 더 높다’는 파니핑크의 첫 나래이션.
여성영화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성장에 관한 진지한 성찰의 영화이면서도 갖가지의 영화적 표현과 재미로 무장한 파니핑크라는 유럽영화를 나온 지 한참 뒤인 2000년도 쯤 비디오로 보면서 나는 한없이 열광하였다.
이유도 모른 채 이별을 통보받고 뜨겁게 하룻밤을 보낸 남자로부터 다음날 냉담하게 무시당하는 핑크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흑인 게이와 함께 삶의 진실, 혹은 주체적 자아의 근저에 도달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그것이 이 영화의 여정이다.
주체적 여성성의 죽음, 혹은 여성성의 소멸로 상징되던 관을 아파트의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그 관이 ‘냉담하던 하룻밤 남자’의 차 위로 떨어져 내리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사랑을 찾기 보다는 차라리 이라크에 가서 스커드 미사일의 융단폭격을 맞는 게 더 쉬운 일 이란 말인가’ 라고 절망하던 서른 즈음의 나는 비로소 소리 내어 웃기 시작하였다.
‘파니핑크’의 이 기가 막힌 나래이션에 대한 오마쥬라고 할 만큼 비슷한 내용의 나래이션이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첫 장면에도 등장한다.
곧 이어 등장하는 파니, 혹은 브리짓의 또 다른 이름인 우리의 미자.
좋은 직장도 돈도 애인도 없이 무기력하게 침대위에 늘어져 있기만 하는 봉두난발의 미자.
그녀는 바로 모든 사회적 여성성의 의미로부터 소외된 가난하고 배경없고 매력없는 이 세상 노처녀의 전형이다.
세상으로 한 발만 나서면 온통 그녀들에게 무례하고 예의 없는 것들의 갖가지 만행으로 분노는 자글자글 끓어도 그런 사소한 모욕쯤이야 참아낼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녀들의 숙명이다.
예쁘지 않고, 젊지 않고, 똑똑하지 않고, 돈도 없는 여자들에게 세상은 결코 호의적일 리가 없으며 혹시나 하는 기대로 이 남자, 저 남자 들쑤셔 봤자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과 조롱 밖에 없다.
“우리 쿨 하게 하룻밤만 같이 자자. 요즘은 쿨 한 게 대세야”라고 노골적으로 집적대는 남자들의 폭력 앞에서 결코 쿨 하지 못한 미자, 파니, 브리짓 들은 끝없이 상처받고 절망한다.
하여 확성기를 입에 갖다 댄 미자는 절규한다.
"왜, 왜 다들 나한데 함부로 대하냐"고.
"사랑하지도 않을 거라면 만나주지도 말고 술도 같이 마시지 말고 넘어져도 받쳐주지도 말고 다음에 만나자는 전화 따위는 하지도 마라"고.
그러니 남성들이여.
진짜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재발 껄떡대지 마라.
그게 여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라고 미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영화일 수 밖에 없어서 전반부의 미자가 당하는 여성적인 수난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결론은 역시 전형적인 해피엔딩과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강박을 벗어나지 못한다.
서른 두 살(요즘 이 정도는 노처녀 축에도 못 든다)의 단역 성우, 돈 없고 예쁘지 않고(결정적으로 예지원은 너무 예뻐서 영화적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가난한 푼수인 미자가 일류대학을 나온 젊고 돈 많은 연하 피디와의 사랑에 골인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 혹시 이 영화를 보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희망에 부푼 여성분이 계시다면 차라리 로또복권을 사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그래도 이 영화, 이만하면 참 건강하다.
미자의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에피소드와 함께 지지리도 궁상맞은 일가족들의 일상과 사랑에 대한 얘기가 별 무리 없이 서로 어울려 평이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가난하면서도 독신으로 살아가기, 가난한 독신이면서도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모욕을 견뎌내어야 하는 것일까를 성찰하게 하는 불편함만 빼면 영화는 아주 재미있고 즐겁다.
첫댓글 보고 왔습니다. ^^ 영화 전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지만 나름 무게를 가진 대사가 두 군데 있더군요. 앞에 건 잊어버렸고.. ㅡㅡ;; 뒤에 것이 바로 위에 적으신 것 - 진짜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제발 껄떡대지 마라 - 이네요. 내내 코믹한 전개에 뒤집어져 웃기도 하고 아연 실색하기도 했지만, 저 부분은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대사를 구성해 보자면, "나는 남에게 나쁜 짓 안 하고 사는데 왜 너희는 나를 막 대하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가지고 나를 대해 달라"였죠. 남자들이 자신을 한 순간 놀잇감으로 삼는 것, 무시하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던 노처녀의 절규였습니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죠 어쩌면 나 자신의 이야기 일수도 있는...
꿈을 기억하라.. 였나요? 앞부분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대사가 있었는데.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 그나저나 큰할머니의 입담은 정말 재미있더군요. "이런 개나리 같은 게 어디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 까먹는 소리하구 있어?" "에라이 십장생아~" 이게 다 절묘한 욕이라죠? ^^
꿈속에서 날아 다니는 꿈... 마지막 대사에서도 이제 다시 날수 있을것 같다 라고... 하는 대사가 나오니까요 ^^
전 이상하게 산촌역할로 나오시는 분이 도둑으로 오해받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애요 은행직원들이 거짓말까지 하며 삼촌으로 나오시는 분을 도둑으로 몰아갈때는 참 씁쓸하더군요...영화를 보기전엔 웃긴 영화일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보면서는 참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