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저승사자와 귀신이 존재할까?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해당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평생, 그 누구도 자신 있게 정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개개인의 생각, 가치관에 따라 실존 여부가 갈려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귀신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커다란 달이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 고요히 우리의 곁을 찾아온다. 그리고 어젯밤,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저승사자를 직접 마주했다. 연말마다 전주 KCC를 사냥하는 저승사자.
농담이고, 원주 DB 가드 정호영의 별명 중 하나가 저승사자의 아들이라 위트 있게 작성해 봤다. 가시라는 별명이 팬들에게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선수 시절 저승사자라 불렸던 정재근의 농구 DNA를 물려받았다는 뜻으로 저승사자의 아들이란 칭호도 갖고 있다.
유독 KCC만 만나면 경기력이 좋아지고, 힘이 강해진다.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나. 정호영은 12월 마지막 홈경기였던 KCC와의 경기에서도 커리어 하이를 작성해냈다. 그리고 KBL 가장 큰 이벤트 행사인 농구 영신 매치이자 허웅 더비를 본인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정호영의 올 시즌 3점슛 성공 개수는 자그마치 0개. 3점슛을 타 포지션에 비해 많이 던지는 가드, 볼 소유 시간이 많았음에도 그러했다. 심지어 벤치에서도 그에게 일정 출전 시간을 부여해 주면서 공격력에서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했는데 그는 좀처럼 충족시키지 못했다.
팬들의 기대치도 이전만 하지 못했고 날을 거듭할수록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정호영과 이준희가 코트에 들어서면 2021-2022시즌엔 설렘 혹은 기대를 가졌다면, 올 시즌 팬들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가장 먼저 갖기 시작하곤 한다.
하지만 31일의 정호영은 달랐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없었다. 100%의 2점슛과 100%의 3점슛으로 그간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내렸다. 본인의 강점인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계속해 림어택을 두드렸고, 운인지 노린 것인지 모르는 백보드 3점슛으로 체육관을 환호성으로 물들여갔다. 이후, 세리머니는 덤이었다.
턴오버 일쑤였던 이전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볼을 운반했고, 적재적소에 패스를 뿌리며 공격포인트를 만들어냈다. 핸들링, 키핑 능력, 경기 운영 등에서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느낄 수 있었다.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만점 활약을 펼치며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정호영은 김현호와 함께 3라운드 강력한 MVP 후보인 허웅을 타이트하게 막아섰고, 결국 전반을 4점으로 봉쇄했다. 넓은 활동 반경으로 KCC의 패스 길을 차단하며 트랜지션 상황과 얼리 오펜스에서 한결 수월히 점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상범 감독도 이날은 정호영을 향해 손이 얼얼할 정도로 많은 박수 세례를 건넸다. 강렬한 임팩트로 15점 5어시스트 4스틸을 해낸 정호영은 승리 후, 만원 관중 앞에서 댄스 타임까지 즐기며 평생 잊지 못할 12월 31일을 장식해냈다.
최근까지 관중석 혹은 벤치를 지켰던 정호영의 얼굴엔 보이지 않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날은 얼굴에 미소가 꽃피웠다. 웃으니 얼마나 보기 좋은가. 앞으로도 정호영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 팬들도 웃을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202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잘 이뤄냈었나 하면서 한 해를 되돌아본다. 정호영도 그랬다. 승리 후에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데뷔 시즌에 비해 더욱 높이 비상할 줄 알았는데, 입지가 줄어들었고, 결국 소포모어 증후군과 성장통이 찾아왔다.
기대가 크다는 것은 실망도 크지만, 그만큼 본인의 능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범 감독도 여전히 DB의 앞선 미래 자원을 정호영으로 꼽는 이유도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정호영은 “준비가 안됐다 생각해서, 뒤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팬들에게 안 좋은 모습만 보여서 많이 후회됐다. 하지만 제일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말했다. 이상범 감독도 정호영을 두고 준비된 선수라고 말했다.
확실한 모멘텀이 되었길 바란다. 이날을 기점으로 정호영이 2022년 안 좋았던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고 2023년도 다시 우렁차게 포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 그리고, 앞으로 원주 DB 선수들은 매 경기를 밤 10시에 해야 될 것 같다. 진정한 야행성 올빼미족이었다. 두경민이 43점을 기록했던 대구 한국가스공사 경기 이후로 올 시즌, 최고의 경기력이 아니었나 싶다. 농구 영신? 가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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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준희, 정호영 등 DB 젊은 가드들은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비시즌을 어떻게 보냈길래...
한번 반짝 한게 아니고 (준비부족으로) 이제서야 몸이 올라온것이길 바래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특히 이준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