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는 연짱 술 마시는 날이 되어 버렸다.
반성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술 마시는 법이 옛날부터 이상하긴 했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연암(燕巖) 박지원 선생이
중국에서 술로 되놈들 석 죽이는 장면을 본다.
연암이 어느 날 시내 구경을 하다가 출출해서 한 잔 하려고 주루에 들렀다.
그런데 들어 간 술집에 상당히 불량해 보이는 되놈들-요즈음 표현으로
‘달건이’들이 우글거린다.
속으로 겁은 나지만 그냥 나오자니 체면이 시체 말로 쪽이 팔리는 지라
먼저 선방을 먹여 기를 팍 죽이려고 술 실력을 과시하는 장면이다.
열하일기(熱河日記)-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 11일 정사(丁巳) (*1780년 8월의 일이다)
전략(前略)
.....맞은편 술집의 깃대가 헌함 앞에 펄럭이고,
은호(銀壺)ㆍ주병(酒甁)이 처마 밖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푸른 난간이 공중에 걸쳤고, 금빛 현판은 햇빛에 어린다.
좌우의 푸른 술기[酒旗]에는,
신선의 옥패 소리 이곳에 머물렀고 (神仙留玉佩)
공경의 금초구는 끌러서 주는구나 (公卿解金貂)
라 씌어 있다. 다락 밑에는 수레와 말이 몇이 놓여 있고,
다락 위에선 사람들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마치 벌과 모기 떼 같았다.
나는 발걸음 가는 대로 다락 위로 올라가니, 계단이 열둘이었다.
탁자를 사이에 놓고 교의에 앉아 혹은 서넛, 혹은 대여섯 사람들이
끼리끼리 둘러앉았는데, 모두 몽고나 회자(回子)들이요, 무려 수십 패였다.
몽고 사람의 머리에 쓴 것은 마치 우리나라 쟁반 같고, 모자가 없으며,
그 위에는 양털로 꾸몄는데 누렇게 물들였다.
혹은 갓을 쓴 자도 없지 않으나, 그 모양은 우리나라 전립(氊笠)과 같은데,
혹은 등(籐)으로 하고, 혹은 가죽으로 하여 안팎에 금을 칠하고,
혹은 오색 빛깔로 구름무늬 같은 것을 그렸다.
모두 누런 웃옷에 붉은 바지를 입었고, 회자는 대체로 붉은 옷을 입었으나,
또한 검은 옷도 많았다. 붉은 전(氈)으로 고깔을 만들어 썼으나,
모자가 너무 길어서 다만 앞뒤에 차양을 달았을 뿐,
그 모양이 마치 돌돌 말린 연잎이 물 속에서 갓 나온 것 같고,
또 약을 가는 쇠 연[鐵硏]과 같이 두 끝이 뾰족하여 가볍고 부박해서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내가 쓴 갓은 전립(氈笠) 이른바 갓이란 벙거지이다. 과 같은데
은으로 술을 새기고 꼭지에 공작 깃을 꽂았으며, 턱을 수정 끈으로
매었으니, 두 오랑캐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
만주족이고 한족이고 간에 중국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다락 위에 없었다.
두 오랑캐들의 생김생김이 사납고도 더러워서, 올라온 것이 후회가
되기는 하나, 이미 술을 청했는지라 그 중 한 좋은 교의를 골라서 앉았다.
술 심부름꾼이 와서,
“몇 냥(兩)어치 술을 마시렵니까?”
하고 묻는다. 여기서는 술 무게를 달아 파는 것이다.
나는,
“넉 냥만 쳐 오려무나.”
하고 가르쳐 주었다.
심부름꾼이 가서 술을 데우려 하기에, 나는,
“데워선 못 써. 찬 것 그대로 달아 와.” 했더니,
술 심부름꾼이 웃으면서 부어 와서 먼저 작은 잔 둘을 탁자 위에
벌여 놓으므로, 나는 담뱃대로 그 잔을 쓸어 엎어 버리고,
“큰 술잔을 가져 와.”
하여, 모두 부어서 대번에 다 들이켰다.
뭇 되놈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대개 내가 쾌하게 마시는 것을 장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중국의 술 마시는 법이 매우 얌전하여서,
비록 한여름에라도 반드시 데워 먹을 뿐더러,
심지어 소로(燒露 소주)라도 끓이며, 술잔은 은행 알만한데도
오히려 이빨에 대어서 조금씩 마시고, 탁자 위에 남겨 두었다가
때때로 다시 마시며, 단번에 주욱 기울이는 법이 없고,
되놈들도 이와 같아서, 세속에서 이른바 큰 종지나 사발에 따라
마시는 일은 아주 없었다.
내가 찬 술을 달래서 넉 냥쭝을 단숨에 마신 것은,
이것으로 저들을 두렵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대담한 척하려 함이니,
이는 실로 겁쟁이 짓이요, 용기가 아니었다.
내가 찬 술을 달랄 때 여러 되가 이미 3분(分)쯤 놀랐는데,
단번에 마시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서, 도리어 저쪽에서
나를 두려워하는 기색이다.
주머니에서 8푼을 꺼내어 심부름꾼에게 술값을 치러 주고 나오려는데,
여러 되가 모두 교의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한 번 앉기를
권하고는, 그 중 한 사람이 제 자리를 비워서 나를 붙들어 앉힌다.
저희는 호의로 하는 것이나, 나는 벌써 등에 땀이 배었다.
내 어릴 때 하인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술 먹는 것을 보았는데,
그 주령(酒令) 중에,
“자기 집을 지나치면서도 들어가 본 적 없이
나이 일흔에 생남하고 보니, 등이 땀에 젖었구려.”
라는 구절이 있었다.
내 성미가 본디 웃음을 참지 못하므로, 사흘 동안 허리가 시큰거렸다.
오늘 아침에 만 리 변새에서 문득 뭇 되놈과 더불어 술을 마시매,
만일 주령을 세운다면 정말,
“등에 땀이 솟는다.”
하여야 의당할 것이리라.
한 되놈이 일어나 술 석 잔을 부어 탁자를 두드리면서 마시기를 권한다.
나는 일어나 그릇에 남은 차(茶)를 난간 밖에 버리고는,
그 석 잔을 모두 부어 단숨에 쭈욱 들이켜고,
몸을 돌려 한 번 읍한 뒤 큰 걸음으로 층층대를 내려오는데,
머리끝이 으쓱하여 무엇이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나와서 길 가운데 서서 위층을 쳐다보니, 웃고 지껄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마 내 말을 하는 모양이다.
후략(後略)
사진은 연암 선생의 초상화 인데, 보기에도 호주가(豪酒家)-술 좀 하게 생기셨다.
이런 식으로 술 실력 과시하는 한국인들이 요즈음도 꽤 되는 지라
필자가 중국 가서 술 사양하면 한국에 술 못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되묻기 일쑤다.
이상
첫댓글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