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손발 묶이고 권투”… 反李연대 공세에도 맞대응은 자제
“김빠진 사이다” 李 1위 딜레마
靑 방역회의 간 이재명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박남춘 인천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부터) 등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 지사와 오 시장은 이날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된 수도권에 백신 우선 접종을 요청했다. 청와대 제공
“제가 처한 상황은 본선을 걱정해야 할 입장인데, 다른 후보들은 오로지 경선이 중요한 입장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2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구도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는 이 지사의 시선은 내년 3월 9일을 향하고 있지만 경선 통과가 목표인 다른 주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예비경선(컷오프) 레이스에서 ‘반(反)이재명’ 진영이 예상을 뛰어넘는 화력을 집중하면서 절반 이상 득표로 경선 승리를 자신했던 이 지사 캠프도 대응 수위를 고심하는 모습이다.
○ ‘1위 딜레마’에 처한 이재명
당초 이 지사 측은 경선에서 독주 체제를 이어가 결선투표 없이 대선 본선에 나서 야권 후보와 맞붙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비경선 과정에서 ‘반이재명’ 진영은 네거티브 공세로 이 지사를 거세게 밀어붙였다. “1위 후보를 철저히 검증하자는 게 전략”이라고 한 박용진 의원 등은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이 지사의 대표 정책 브랜드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기에 이 지사 스스로도 ‘바지’ 발언과 ‘미 점령군’ ‘영남 역차별’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이 지사는 일단 TV 토론에서 다른 주자에 대한 맞대응 공세는 최대한 자제하는 기조를 이어갔다. 경선 이후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이 지사를 돕는 한 여당 의원은 “다른 주자들을 공격할 내용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경선 이후 ‘원팀’으로 뭉쳐야 할 때를 고려해 균열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도 이날 MBC 라디오에서 “‘원팀’을 살려서 손실을 최소화하고 본선에서 소위 우리 역량이 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저는 심하게 공격하면 안 된다”며 “손발 묶임 권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분들은 발로 차기도 하고 네거티브도 하고 하시지만 저는 포지티브한 공격조차도 섭섭하지 않게 해야 될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거침없는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 지사가 이번 경선에서 “김빠진 사이다”란 공격까지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 열성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발언만 이어간다면 본선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잃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사도 이날 내년 대선이 여야 박빙 승부가 될 것으로 전망하며 “문제는 우리 내부 결속이 아주 단단해야 되고 소위 중도 보수 영역으로 진출해서 50% (득표율을) 넘겨야 이기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이 지사의 상황을 두고 여권에서는 “1위 후보의 딜레마”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 지사 측은 향후 경선 기간에도 다른 주자들의 공세에 맞대응하기보다는 야권 후보에게 맞설 본선 경쟁력을 강조하겠다는 계획이다
○ 현역 도지사 신분도 제약
여기에 이 지사가 민주당 주자 6명 중 유일한 현역 도지사 신분이란 점도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권 관계자는 “다른 주자들은 평일에도 각종 일정을 자유롭게 소화하며 득표 활동에 나설 수 있지만 이 지사는 도정과 경선 선거 운동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 측은 도정 수행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공직자 사퇴 시한까지 도지사직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으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것도 부담이다. 이 지사는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 지사 캠프 관계자는 “당분간 이 지사는 코로나19 방역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며 “도지사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본경선과 대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오혁 기자
이낙연 지지율, 이재명에 한자릿수 추격
기본소득 등 이재명 논란 커지자
여권 후보적합도 29.7% vs 20.6%
“文정부 계승” 앞세운 것도 효과
청년기업인 만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가운데)가 12일 대전 중앙시장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열린 청년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청년 기업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전=원대연 기자
“1강(强) 1중(中) 구도에서 2강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캠프 관계자는 본경선에 돌입한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의 판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독주를 지켜봐야만 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자평이다. 그러나 “이 지사의 각종 논란으로 인한 반사 효과”라는 분석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야권 주자와의 격차가 여전하다는 점은 이 전 대표가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9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전 대표는 ‘범진보권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20.6%를 얻어 1위인 이 지사(29.7%)와의 격차를 한 자릿수인 9.1%포인트로 좁혔다. 일주일 전 같은 기관이 TBS 의뢰로 조사했을 때 두 후보 간 격차는 19.2%포인트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또 여야 후보를 모두 조사하는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이 전 대표는 18.1%로 윤 전 총장(29.9%), 이 지사(26.9%)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런 변동은 TV 토론 등 민주당 예비경선 과정에서 이 지사에게 다른 후보들의 공격이 집중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기본소득 논쟁부터 ‘바지’ 발언까지 이 지사를 둘러싼 논쟁과 논란이 이어진 영향이 이 전 대표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도 TV 토론에서 이 지사를 향해 “거친 표현을 쓰는 게 옳으냐” “신뢰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며 공세의 수위를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여기에 이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계승자”를 앞세운 것도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표심을 움직였다는 평가가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지지율 상승에 반색하며 본경선에서도 기세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전 대표는 12일 BBS 라디오에서 ‘컷오프 결과 발표 전에 캠프가 상당히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예비경선을 거치며 이 전 대표가 ‘반(反)이재명’ 진영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한 여당 의원은 “이 전 대표가 ‘반이재명’ 흐름에만 기댔다가는 이 지사의 행보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며 “‘이낙연만의 행보’를 보다 선명히 해 추격자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