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까막골이다. 내가 알기로는 까막골의 지명 유래는
그 골짜기에 까마귀가 유독 많아서 였다고 했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바로는
동네 앞산이 까마귀 형태를 하고 있어서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까막골에서 태어나 국민학교시절까지 동네 곳곳으로 뛰어 다니고
누볐지마는 산의 형세나 바위가 까마귀 모양으로 생긴 곳은 보지 못했다.
며칠전 진주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한테 들러 매실을 따러 갔다가
예전에 내가 살았던 까막골 동네를 가 보았다.
열네살 때 고향을 떠나 육십년도 넘어서 들렀으니, 십년이면 산천도 변한다고 했는데
육십갑자가 한 순베(?) 돌안 셈이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란 가사가 뇌리에 떠올랐다.
어릴 때 뛰놀았던 마당엔 잡초가 우거지고 사립문이 있던 삽작가에 섰던 어린 대추나무만이 고목이 되어
옛 주인을 반겨 주었다. 배나무 감나무 밤나무 앵두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따라 뒤산으로 올라가 보니 내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던 장소는 숲이 우거져 몰라보게 변했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섰던 장소도 버혀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난 12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까마귀가 사람 잡네'라는 기사가 실렸다.
까치가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숫자가 줄어들자 까마귀 숫자가 늘어나 도시로 퍼지면서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한다. 매년 5~6월은 큰부리까마귀가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부화하여 새끼를 기르면서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커지는 시기라고 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로 까치는 길조라고 하고 까마귀는 모양새도 시커먼데다가 우는 소리도 음침하여 아침에 까악까악 하고 울면 재수없다고 침을 퉤퉤하고 세번 뱉곤했던 흉조였다. 또 썩은 고기를 먹는 습성이 있어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우스개 소리로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하면 건망증으로 잘 까먹었을 때 하는 말이다.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이 있다.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孝誠)'이라는 뜻으로, 자식(子息)이 자라서 부모(父母)를 봉양(奉養)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 세태는 옛날 고려장이 변해서 요양장이라고 한다. 늙은 부모를 모시기 싫다고 요양원에 강제입원시키고는 내 몰라라 한다고 한다. 까마귀는 새끼가 깨면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데, 그 까마귀가 자라나면 어미가 노쇠해서 먹이활동을 하지 못하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길러 준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한다고 한다. 미물이지만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