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전멸이다. 끝까지 버티고 버티던 이선 알바노마저 추운 날씨와 체력 부담이 복합적으로 겹쳤는지 독감에 걸려 전력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농구영신 때부터 폼을 끌어올린 정호영도 허리 부상으로 일시적 아웃이다.
지난 4일, SK와의 경기를 앞둔 이상범 감독은 팀 상황을 보더니 12인 로스터 꾸리는 것조차 힘겹다고 밝혔다. 당장 김선형을 필두로 한 SK의 5G급 백코트 라인에 대적할 선수도 턱없이 부족했다.
DB 선수단 내로 범위를 넓혀봐도 코트 위에서 볼을 운반해 줄 선수가 김현호, 원종훈, 이준희, 끝이었다. 심지어 김현호는 인저리 프론이다. 매 경기 출전 시간을 조절해 줘야 하는 아슬아슬 외줄타기 상황이다.
모든 감독들은 말한다. 특히 이상범 감독이 최근 들어 가장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식스맨 선수들이 좀 해줘야 된다. 벤치 자원이 올라와줘야 주축 선수들이 부담을 덜 수 있다”
물론, 팀 입장에서는 주축 선수가 이탈하면 골치 아프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공백이 생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출전 기회를 부여받는다. 죽는 자가 있으면 반대로 사는 자가 있는 것이다.
SK와의 경기에서 DB 팬들을 울컥하게 한 선수가 등장했는데, 바로 원종훈이었다. 이번 시즌 원종훈은 이날 경기 전까지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심지어 그 당시에도 좋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파울 관리가 되지 않았던 탓에 단 3분 50초밖에 뛰지 못했다.
DB가 2022-2023시즌 D리그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원종훈과 같은 식스맨들의 설자리는 더욱 비좁아졌다. 기회가 너무나 고팠던 그에게는 어쩌면 SK와의 경기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원종훈은 단 1분 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온몸을 코트에 내던지며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쳐야 했다. 또 그렇게 해 보였다.
NBA 전설 중 한 명인, 앨런 아이버슨은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신장이 작은 사람들 포함, 선수들에게까지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감을 심어줬고 수많은 농구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내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농구는 신장이 커야 유리한 스포츠다. 그래서 174cm 단신 가드인 원종훈은 타 선수들에 비해 약점을 안고 경기에 나서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 원종훈의 최종 기록은 16분 22초 출전해 2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였다.
기록 자체만 놓고 보면 사실, 대단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이 있지 않나. 코트에 발을 들이면 경기 분위기가 달라지는 선수. 이날 원종훈이 딱 그런 선수였다.
원종훈이 코트에 들어서자 DB의 코트 밸런스, 에너지 레벨, 볼 흐름이 이전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투입과 동시에 베이스라인에 이은 돌파, 이후 패스로 에르난데스의 덩크를 도왔다. 속공 전개와 찬스 메이킹도 완벽했다. 원종훈의 불타는 투지는 코트 에너지 레벨을 급상승시켰다. 이규섭 위원 역시 거듭 원종훈의 플레이를 칭찬했다.
코트 위 가장 작은 선수가 골밑까지 적극 침투해 리바운드도 곧잘 걷어냈다. 원종훈의 공격 리바운드는 결국 DB의 세컨 득점까지 이어졌다. 여태 경기를 많이 뛰지 않았음에도 어느 정도 여유까지 장착한 모습이었다. 슛 페이크로 수비를 띄운 후, 침착하게 미드 레인지 점퍼를 성공해냈다. 뒤에서 많은 연습을 했나 보다.
스네이크 드리블과 챔버 동작을 가미한 핸드오프 플레이는 거듭 DB의 좋은 찬스로 연결됐다. 원종훈의 최대 강점은 수비와 허슬 플레이. 그는 꾸준한 디플렉션과 탭아웃으로 SK의 공격권을 차단해냈고 코트 밖으로 기꺼이 몸을 내던지며 1점이라도 쫓고자 애썼다. 이날 원종훈의 노력은 아쉽게 패배에 빛바래고 말았다.
필자는 아직도 18-19시즌에 공 하나 잡겠다고 하프라인에 몸을 던진 원종훈의 플레이가 머리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그때, 원종훈은 결국 치아가 전부 갈려서 출혈이 발생했었다. 대단한 투지였다.
약점을 커버할 만한 폭발적인 공격력을 갖춘 선수가 아니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단신 가드로 수비 시에 치명적인 약점을 보일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원종훈이 지금까지 프로의 세계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이날처럼 팬들에게 박수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 절실함 그리고 간절함이다. 원종훈이 매 경기 보이는 투지, 어쩌면 DB 선수단 모두가 현재, 본받아야 할 정신이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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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디비팬은 경기를 보는게 고통이라 어제 경기도 1쿼터 보다가 껐는데... 원종훈 선수 잘 되길 바랍니다.
감독바뀜
디비는 굿이라도 해야할 듯
부상 맛집
경기는 안봤지만 원종훈 선수 투지는 대단하죠. 하지만 슛이 문제인 선수였는데 개선이 좀 됬나 궁금하네요.
시즌 앞두고 결혼까지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잘 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