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기다렸다는듯이 날씨가 초여름으로 치닫는다. 내륙지방은 벌써 30도가 예보되었다. 주변의
신록이 싱싱하다. 생기가 돋는 아침이다. 작년까지는 큰노꼬메를 찾았었는데 하도 유명세를 타서 관광객들이 몰리고 등
반로를 정비하는 바람에 신선한 매력을 잃어 올해는 이웃해있는 족은오름을 찾기로 했다.
평화로와 어승생 가는 산록도로가 만나는 납읍목장 입구에 우선 모였다. 족은오름 진입로는 여기서 어승생쪽으로 약
4km 떨어진 장전목장 표지석 부근에 있다. 오늘 반가운 친구가 보무도 당당히 걸어온다. 우리의 앞장이다. 서귀포 문화
원장에 피선되는 바람에 한 달여 오름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었다. 반갑다 친구야.
10시가 되어 장전목장 입구에서 기다리는 친구들과 만났다. 이 표지석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농로가 있으며 시멘트 포
장이 되어있다. 족은오름은 여기서 남쪽으로 약 1.5km 의 거리에 있다. 맞은편 목장 철문을 열고 자동차가 시멘트 포장
이 끝나는 중간지점까지 들어 갈 수는 있으나 우리는 길 북쪽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햇볕이 가득히 내리쬐는 들판에 철 늦은 고사리를 꺾으며 오름으로 향했다. 오늘 특별한 친구들이 많다. 작년에 두어번
나오다가 통 보이지 않던 영언이를 비롯하여 은하수부인, 운공부인, 완산부인 등이 어려운 걸음을 했다. 고사리는 지난주
로 끝난 걸로 아는데 아직도 고사리가 있는지 덤불 속을 뒤지며 걸음이 느리다.
시멘트 포장 목장길이 끝나고 아트막한 언덕길에 소나무과 삼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나무 밑으로 쏟아지는
산소와 피톤치트로 온몸이 상쾌하다. 한참 걸려 오름 기슭에 있는 제법 너른 공터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오름을 오
르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족은오름 자체가 가운데 깊은 굼부리를 끼고 양쪽에 엇비슷한 두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어느 봉우리를 먼저 오르느냐가 결정된다.
아무 길을 택해도 결국 같은 코스를 서로 방향만 다르게 돌게 되어있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왼쪽 길을 택해서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나무와 삼나무 숲을 지나자 때죽나무와 서어나무 등이 울창한 자연림이 이어진다. 신록이 하
늘을 가려 시원하다. 나무 아래로는 오름 위까지 조릿대가 자라고 있고 상산 등도 이따금 보인다.
드디어 동남쪽 봉우리에 닿았다. 정상부근에 마침 제법 너르닥한 잔디밭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나무가 없어 확 트인
시야가 시원하다. 한라산을 비롯한 주변의 오름들이 제법 선명하다. 영실의 오백라한까지 확인될 정도다. 인상적인 것은
오름 밑으로 펼쳐진 광활한 곶자왈 지대다. 여기는 어쩐 일인지 아직까지 골프장이 들어서지 않아 더욱 장관이다.
이런 좋은 날에 결코 작지 않은 족은오름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외친다. 이 행복 "희수까지 굿짝!!"을. 오랫만에 나온
영언이가 선창을 했는데 "희수까지만"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었다. 우리의 산행은 결코 희수까지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즐거운 노래시간이다. 지금까지 가사를 보고 부르는 방식에서 오늘은 60년대 노래를 중심으로 외어부르기를 했다.
1960년대 우리가 20대인 시절 친구들과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목청껏 부르던 그 때 그 노래들 말이다. 노래방 기계 의존
증으로 잊었던 가사가 흥에 겨워 절로 나온다.
노래면 노래, 걸판진 육담이면 육담 오늘의 장원은 역시 은하수 부인이다. "삼보내칠합십"를 비롯하여 우리를 많이도
웃겼다. 바쁘시지만 종종 오름에 와서 우리를 웃겨주세요.
동쪽 봉우리를 돌아 내려 서쪽 봉우리로 향하다가 발견한 붓꽃이다. 잎이 가는 거로 보아선 각시붓꽃이 맞는 것도 같은
데 확실하지는 않다. 꽃이 참 곱다. 이런 종류의 들꽃은 서울에서도 인기를 얻는다고 한다.
서쪽 봉우리로 올라가자 바로 옆에 형님이신 큰노꼬메가 떡 버티고 있다. 형의 비고가 234m로 워낙 높아서 그렇지 족
은오름도 124m로 다른 오름에 비해서 결코 낮은 편이 아니며 두 봉우리 사이에 깊이 패인 굼부리와 그 규모가 만만한
오름이 아니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깊은 굼부리를 끼고 숲이 울창한 두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맛이 다른 오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독특한 멋이 있다. 앞장이 말처럼 한여름에 한번 더 오고싶은 오름이다.
오늘 14명이 참석했다. 오랫만에 나온 영언이를 비롯하여 무릎통증을 이겨내며 씩씩하게 완주에 성공한 철웅이 엄마
와 나리 엄마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른 저녁 시간에 맞추어 도치돌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오늘은 전에 자주 찾던 도치돌가든이 아니고 바로 그 옆에 새
로 지은 식당에서 회덮밥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오늘 좋은 날씨에 족은노꼬메에서 이외의 좋은 오름을 발견한 기
쁨에 가슴 벅찬 즐거움을 안고 이렇게 오늘 하루도 기울어간다. 다음주 체오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2008.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