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6코스는 매우 잔잔하고 소박한 길이다
애월의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며 제주 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해안길을 따라 뻗어가다 한라산 방향을 향해 제주도 안쪽으로 파고든다
바오밥나무 그늘에서 제주의 마지막 밥을 먹으며 꿈을 꾸었다.
고내포구에서부터 광령1리 사무소까지 이어져 있는 15.7km의 길이다.
애월의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바다의 바람을 가득 안을 수 있다.
고내포구
강력한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를 맞지 않고 고내포구에 섰다.
고내포구는 또 요강터로도 불린다고도 한다.
바다 바닥이 마치 요강처럼 움푹 패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코스 출발점
비교적 거리가 짧은 16코스를 마지막 날에 걷기로 하였다.
출발점 앞에 선 회장님의 얼굴에서 행복이 묻어난다.
바다를 지나온 바람이 바로 왼쪽 옆구리를 밀어대고 있다.
애월 바다
애월(涯月)은 한자어로 ‘물가의 달’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제주시가 발표한 '제주시의 숨은 비경' 31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해안 올레는 나란히 자리한 해안도로를 비웃으며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다락쉼터
‘다락’은 부엌에 물건을 넣는 다락이고, ‘빌레’는 너럭바위의 제주말이다
이곳의 다락처럼 암반이 널리 깔려 있는 곳이어서 '다락빌레'라 불리웠다.
평평한 이곳에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 놀았던 곳이라고 한다.
포세이돈
이 해안도로 절벽의 압권은 단연 포세이돈 큰바위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진짜로 닮아 보였다.
포세이돈이 제주의 아름다움에 취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놓쳐버렸다나?.....ㅎ
고내리(高內里)
'높은 곳 안쪽에 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마을이다
화산 폭발 때 용암이 흐른 흔적이 그대로 남아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절벽길을 따라 걷는 올레는 바다 색깔과 어우러져 특별한 감흥을 주었다.
망자의 꿈
망자는 죽어서도 바다를 향해 누워 있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바다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중엄새물
이 물은 중엄리 설촌 당시의 식수원이었다.
1930년 주민들이 방파제 중간 부분을 발파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마다 용천수가 풍부하게 나오는 제주는 축복받은 땅이다.
꿈의 벼랑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
혼자 마시는 술은
어쩌면 불이다.
누군가의 눈빛 속으로
꺼져가는 바다.
파도로 울먹이던 그들은 가고
그냥 바라보는 꿈이다...........................................................................서정윤 <바다에서> 부분
구엄 돌염전(소금빌레)
1950년대까지 평평한 천연 암반에서 소금을 생산해 왔다.
염전의 규모는 1,500평 정도이고, 생산되는 소금의 양은 17톤 정도였다.
한 가구당 20~30평 내외로 소유했고, 큰딸에게만 상속해주는 풍습이 있었다
내륙으로 들어가다
구엄포구를 지나면서부터 바다와 헤어져 내륙으로 들어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현무암 돌담은 정감을 자아낸다.
돌담은 제주도의 독특한 환경이 만든 인공적인 생활문화다.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최문자 <닿고싶은 곳> 전문
수산봉(물메오름) 122m
헉헉거리며 땀을 흠뻑 흘리고 수산봉 정상에 올랐다.
제주도에 가뭄이 들면 목사가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수산봉은 ‘물메 오름’이란 더 예쁜 이름이 있다.
산 정상에 자연 연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못이 메워져 있다.
곰솔( 천연기념물 제441호)
수산리 저수지 옆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 10m, 둘레 4m의 거목으로, 4개의 큰 가지가 뻗어 있다.
이 나무는 400여 년 전, 수산리 설촌 당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눈이 쌓이면 마치 백곰처럼 보인다고 해서 '곰솔'이라고 불렀다.
수운교 수산지부
수운교(水雲敎)는 이상룡이 1923년 서울에서 창교하였다.
이상룡은 자신이 최제우의 후신이라 선전하며 포교 활동을 전개했다.
동학 계열 종교로 현재 본부는 대전 유성구 추목동에 있다.
예원동 포제단
포제단은 제주도에서 유교식 마을 제의가 베풀어지던 장소다
포제단들은 거의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새로 복원된 포제단이 정겨웠다.
바오밥식당(1)
드디어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 바오밥식당이 나타났다.
바오밥나무가 우뚝 서 있는 안내판이 이국적이다.
바오밥식당(2)
입구에서부터 주인장의 멋진 센스가 느껴졌다.
16코스에 적당한 식당이 없어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이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올레꾼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바오밥식당(3)
화장실의 남녀 표시가 무척 재미있다.
이런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 노랫소리가 절로 나올것 같다.
바오밥식당(4)
메뉴는 바오밥정식, 가자미정식, 떡갈비정식, 조기정식 4가지다.
순수한 식재료 맛을 살린 자연식탁이다.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지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참 좋았다.
우리가 먹은 바오밥정식은 1인당 1만원이다.(가성비 최고)
바오밥식당(5)
소품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세련되었다.
갑자기 몰려든 올레꾼들 때문에 사장님은 정신이 없었다.
제주에서 먹은 점심밥 중에서 최고였다고 인정한다.
강행준 기사님
비너스관광의 강행준 기사님은 우리와 2년째 인연을 맺었다.
인자하고 친절하셔서 내년에도 이미 예약해 놓았다.
신부님께서 '라파엘'이라는 세례명까지 지어주셨으니 기대가 된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국가사적 제 396호)
273년(고려 원종 14년) 삼별초 대원들이 여몽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운 곳이다.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다.
순의비, 항몽유적기록화 7폭, 관리사무소를 두고 역사교육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삼별초는 고려군의 정예 별동부대였다.
고려 조정이 몽골군과 강화를 맺자 이에 반대하여 반몽항쟁을 하였다.
제주도로 건너와 항파두성을 쌓고 몽골군과 대결하였다.
마침내 원종 14년(1273) 4월 몽골 세력에 의해 전원이 순의했다
삼별초군의 최후를 지켜보았을 폭낭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앞서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는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이 아니다
낯설고 절박 한 길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도종환 <처음 가는 길> 전문
삼별초길
이 길은 삼별초가 최후까지 항전한 유서 깊은 곳이다.
아직도 당시에 쌓은 토성의 일부가 남아있다.
토성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져 있어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듯 하다.
휴식
민가 앞에 놓은 의자에 앉아 쉬어간다.
휴식은 뒤에 떨어진 후미를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다.
청화마을
몇 가구가 오순도순 정겹게 살고 있을 작은 동네다.
밀밭이 펼쳐지고 펜션과 별장 같은 예쁜 집들이 보인다.
밀밭과 빨간 지붕과 나무가 꼭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 풍경을 이루었다.
향림사(香林寺)
향림사는 정겨운 시골 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곳에 자리해 있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고요히 수행 정진하기에 안성맞춤인 도량이다.
'숲과 나무의 향기로움이 좋아 사명도 향림사(香林寺)로 지었다'고 한다
드디어 끝이다
드디어 16코스의 출발점인 광령1리에 도착하였다.
3박 4일 동안 73km를 걸어온 동지들이 자랑스럽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선두 그룹
먼저 도착한 선두 그룹(?)이 여유롭게 쉬고 있다.
제주항에서 오후 4시 45분에 출항하는 배에 올랐다.
선상에서 푸짐한 안주를 시켜놓고 그윽하게 마시며 귀향하였다.
첫댓글 2017년 8월 한더위에 이 길을 걸을 때가 생각납니다. 구엄 염전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혼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올레길을 걸을 때가 있을까 하는 생각를 해보기도 했는데 글쎄요 그럴 때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