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다.
양해를 받고 찍은 사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들이대고 찍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아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다른 지역을 가서도 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는 장담 못한다.
어른들은 되도록 얼굴이 안나오게 찍었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 없었다.
표정이 너무 맑고 깨끗해서 찍고 싶었다.
걸치고 있는 입성은 가난해 보였지만 얼굴은 해맑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상원에서 스님들이 식사 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는 신도들
개도 이때는 껴들어 남은 음식을 처리한다
개도 자유가 보장된다 . 순서만 지킨다면
비엔티안에서 방비엥 가는 길에 소금 염전
퍼올린 지하수를 끓여 소금을 얻는다
내륙국가인 라오에서는 귀한 곳이다
땔감용 톱밥을 차에서 부리는 사람들
소금과 추가 평형을 이룬 상태
고요하게 멈춰 서 있는 균형과는 무심하게
계산에 열중인 사람들
외물에 끄달리지 않고 고요하게 멈춰 서 있는 소금의
마음을 느낀다.
방비엥 불루라곤 가는 길
하교길에 아이들은 해맑고 무심한 구름이 산을 타고 넘는다.
오토바이와 소가 함께 돌아가는 길
황톳길을 포장한 아스팔트
블루라곤과 방비엥 시내를 잇는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시 황톳길
조금씩 문명은 자기의 영역을 넓히고
그만큼 편안한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손은 자유롭다.
다음날 아침 어제 지난 길이 좋아
새벽 일찍 블루라곤을 향해 길을 나서
걸어서 돌아 나오는 길
목초지로 출근하는 소떼와 목동
하늘은 희부욤하게 밝아 온다.
학교 가는 딸의 머리를 손질하는 어머니
걸어오는 내내 만나는 풍경이다.
아침 운무가 산을 타고 피어 올라
하늘과 땅의 경계를 흐리고
길을 나선 사람들은 풍경속으로 사라진다.
소를 몰고 가는 목동
방비엔에서 루앙푸라방으로 가는 길에 들른 몽족 마을의 어린이
몽족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사람 하나 없는 몽족마을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야만 몽족의상을 입고 있는 원주민을 만날 수 있으려나.
나이 든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땔감을 위해 도끼질을 하는데
멀쩡해 보이는 젊은아는 집안에서 무심히 밖을 내다본다.
이 여인의 복장으로 보면 라오족 같은데 몽족 마을이라니
이 또한 이상타.
억새로 이은 지붕은 현대화라는 미명으로 양철지붕으로 다 바뀌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연상케 하는 풍경은 길을 따라 가는 내내 산간마을에서 계속되었다.
억새지붕을 갖춘 집이 없지는 않았지만 가물에 콩나듯 드물었다.
이 마을에 머문 이유가 이 학교 때문이다.
가져간 학용품을 전달했는데 번지수를 잘못 짚어
필기구 위주로 가져갔다.
그걸 사용할 종이가 없는데
반이상의 아이가 책없이 선생이 판서한 칠판을 볼 뿐이다.
그러니 공책은 말할 것도 없다.
손님이 왔다고 사바이디 인사하는 법을 시범보이고 있다.
여자는 무릅을 굽히면서
남자는 고개를 숙이면서
선생이 남자가 하는 인사를 선보이고 있다.
아이들은 해맑은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귀여운 놈들
브이질
학교에서 나오다 만난 몽족마을의 아이들
학교갈 시간을 기다리는 중
학교에서 본 아이들 보다는 크다
오누이
눈매가 날카롭다
또 다른 몽족 마을에서 콩을 말리고 있는 여인
지붕이 양철지붕으로 바뀐 전통가옥 앞에서 고추 말리는 여인
어딜 가나 빨간 고추를 말리고 빻고 있다
청양고추의 10배 정도 맵단다
전통가옥 앞에 서 계신 할머니
대나무가 가장 유용한 자재
천정에 매달려 있는 콩과식물의 씨가 장대하다
태국에서 넘어온 오토바이 여행자들과
산간지역 몽족 아이들
점방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
어딜가나 모여 있는 아이들
심심할 새가 없다
막 샤워를 그치고 옷을 입는 형과
차례를 기다려 목욕을 하는 동생
엄마는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날이 서늘한 고산지대 보고만 있어도 등골이 서늘하다
흙이 가장 좋은 놀이터
흙에 금을 그어 땅따먹기 구슬치기
오징어 등등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라오 여행이 주는 추억여행에서 만나는
내 유년의 기억들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 가는 길에 들렀던 몽족 마을의 학교
그 안에서는 월드비전 1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학교 건물에서 술을 마시고 노는 것도 좋았고
그 학교 여선생님이 일일이 술병을 들고
우리를 맞이하여 라오카오(50도짜리 쌀 위스키)와 라외비어를
따라줘서 더 좋았다.
너무 맑고 고운 여선생님의 수줍은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손님이 왔다고 누군가가 악기를 가져다 주고
그를 받아 연주한다
라오 전통악기 이름은 까먹었다
개와 함께 하는 탁발 행렬
보시를 하고 남은 밥과 반찬들을 개나 고양이에게 나눠준다.
짐승이 누리는 자유가 부러웠던 라오.
루앙프라방 첫째날 아침의 탁발 풍경
길게 늘어선 스님의 행렬에서
이곳이 불교국가임을 안다.
목화를 틀어 솜을 만들고 이를 가지고 다시 실을 만들어 직조기로 짜서 스카프를 만드는 라오여인
관광객이 반인 딱밧행렬
바로 옆에는 스님들이 받은 음식을 나누기 위해 놓아둔 통이 있다.
보시 중 일부를 덜어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다시 나누는 풍경에서
사람사는 동네의 멋과 정취가 묻어난다.
탁발을 끝내고 돌아가는 스님을 뒤로하고 보시를 베푼 여인들이 밥그릇을 들어 예배를 들인다.
루앙프라방 사원에서 만난 학승
물의 축제가 이사원에서 부터 시작하는데
대웅전 벽화와 부처가 멋진 곳이다.
루앙프라방 메일스트리트에 위치한 사원
니하오로 인사를 건넨 스님에게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니
안녕하세요 하고 바로 인사를 건넨다.
학승으로 자신이 한국어학당을 매주 토요일 한시 부터 5시까지
연다면서 한국어선생이 없어서 아쉽다며 나를 잡고 토로한다.
한국어를 너무 잘 해서 물었더니 스마트폰에 한글로 써서 외워서
말한다고 한다.
한달 배웠다고도 하고
7개월간 배웠다고 하는데
어쨋든
어학에 소질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새벽에만 열리는 시장이 점점 더 상설시장화하고 있다.
저녁마다 열리는 야시장에서는 공산품과 공예품이
아침 시장에서는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 팔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아침에는 먹고
저녁에서야 치장을 돌아보는 풍경에
식의주 생활이 묻어난다.
아침일찍 열리는 루앙프라방의 새벽시장
두꺼비에서 부터 전갈 뱀 등 몬도가네 같은 식자재부터 과일 채소까지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이 거래된다.
루앙프라방 새벽시장의 과일 채소전
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앞에서의 딱밧(탁발)하는 주민과 스님들
술 만드는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라오스에는 라오비어가 유명하지만
쌀농사를 짓는 마을 어디에나 그렇듯 찹쌀로 빚은 술이 있다.
라오카오라고 하는데 15도 짜리에서는 한산소곡주와 같은 맛이 났고
50도짜리에서는 안동소주 같은 곡주 특유의 향이 있었다.
마을 어느 곳이나 그렇듯 이 마을에도 사원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보름 행사를 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공물을 가지고 오고
인근 사찰에서도 스님들이 와 계셨다.
사찰 마당에서 만난 아이들이 수줍움을 타면서도 낯선이에 대한 호기심에 한동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자신들이 나온 사진에 환호작약하였다.
버킷에 담은 선물을 들고 오는 아이
부모대신 아이들이 이런 선물을 가져오는 모습이 많았다.
수줍게 스님 앞에 놓고 도망치듯 돌아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순박하다.
사찰은 바로 마을과 연결되어 있어 문을 나서면 바로 마을이다.
골목을 들어서며 그 끝이 사찰인 경우도 많다.
이 마을은 사찰이 중심에 위치에 자연스레 사찰을 지나게 한다.
어깨에 띠를 두르면 존경을 나타낸다.
정장이 아니더라도 이 띠를 두르면 예의를 갖춘 게 된다
공물을 가지고 오는 아이들
학승들
법당내부
베틀짜는 여인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하나하나 무늬를 만드는 신기에 가까운 모습
아무리 들여다 봐도 그 원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위대해 보일뿐
첫댓글 이느낌을 뭐라해야하나...그리움같기도한 너무나 아름다워 슬픈. 정겹고도 미안한...
정겹게 다가온 것이 많았습니다.
때에 쩔은 옷을 보면 안타깝다가도 눈망울에 담긴 선의를 보면 모든 것이 싹 잊혀지지요
아련함이 묻어나는 사진들. 무늬넣어 짠 대나무 벽이 아름다운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대나무벽은 오래 갈 것 같아
양철지붕을 했으니 그에 대한 문제를 알겠지
삶이 편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을 하는데 양철지붕은 영 아니야
우리도 한복입은 사람을 못 보는데 라오라고 전통의상입기를 바라면 안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