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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톡톡]“모든 아이들에게 따뜻했던 선생님, 내 교직생활의 롤모델”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50514/71232958/1
“삶과 문학 눈뜨게 해준 은인… 지금도 그 수업시간 못 잊어”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내일은 스승의 날. 스승은 ‘나를 가르쳐 올바르게 이끌어 준 분’입니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 인생의 등불을 밝혀주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멘토가 스승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 삶에 대해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다가도 문득 스승의 얼굴이 떠오르면 숙연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누구나 가슴 먹먹할 정도로 고마운 스승 한두 분쯤은 있을 겁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그분들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시민들을 만나 가장 그리운 스승에 대해 물었습니다. 추억에 잠긴 시민들의 눈빛이 따스해 보였습니다. 》
“스승님. 당신에게 인생을 배웠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첫 발령 때 교장선생님을 꼽고 싶어요. 작은 학교였는데 애들 이름 하나하나도 다 아시고 말 걸어주시고 저한테도 친손녀처럼 대해 주셨어요. 제 결혼식에 직접 오지 못하셨다면서 전근 간 학교까지 찾아오셔서 축의금까지 주셨지요. 2010년 그분이 정년퇴직하시던 날에는 동료 교사 언니들이랑 울고 난리가 났었어요. 정말 따뜻하시고 배울 점이 많은 분이죠. 저도 저의 제자들에게 그런 선생님이고 싶고, 그러고자 노력하고 있어요.(29·여·교사)
―1968년도는 쌀이 부족해서 분식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입니다. 전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음식을 절대 남기지 못하게 했어요. 점심시간이 끝나면 선생님이 도시락을 일일이 검사해 한 톨이라도 남긴 사람은 다 먹게 했지요. 음식을 남기면 농사짓는 분들의 고마움을 모르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 후로 40년.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어요. 먹기 싫은 음식을 먹을 때면 선생님 말씀이 많이 생각나요. 그 표정 하나하나, 열심히 지도하는 열정….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59·여·주부)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시인으로 문학을 담당하셨어요. 선생님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인간 대 인간으로 학생과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이 좋았어요. 물론 싫어하는 애들도 많았어요. 입시에 예민한 고3 아이들이 보기에는 진학에만 집중하는 선생님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나 저는 학문적인 것 이외의 인간적인 면을 중시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시간들을 잊지 못하며 1년에 한두 번은 찾아뵙고 있답니다. 제 인생의 참스승이시지요.(23·여·대학 휴학생)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중3 때 담임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은 평소엔 무뚝뚝하고 표정이 별로 없는 분이었죠. ‘어떻게 저분이 음악 선생님일까’ 그랬는데, 음악을 들으면 표정이 변하셨답니다.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편견을 버렸지요. 선생님이 처음 들려주신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은 잊지 못해요. 음악을 듣는 순간 너무 좋아서 흠뻑 빠져들었거든요. 몇 년 전 학교 100주년 행사 때 오랜만에 뵈었는데 역시나 멋지게 늙으셨더라고요. ‘선생님처럼 음악을 사랑하면 나도 그렇게 곱게 늙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답니다.(56·여·사업가)
“꿈을 만들어 준 은인”
―“너희 꿈이 뭐니?” 대학 1학년 때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던진 질문이에요. 외교관, 최고경영자, 뭐 이런 대답들이 나왔는데 교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틀렸다”라고 하셨어요. 교수님은 “이룰 수 없는 게 꿈”이라고 하셨어요. 굉장히 인상 깊은 순간이었어요. 그때 ‘진정한 꿈’과 ‘목표’ 간의 차이를 깨달았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확립한 인생관이 유학생활에 큰 도움이 됐어요. 과외를 하면서 학비도 벌고, 쉽지 않은 공부도 해나가야 했던 날들이 힘겨웠지만 더 큰 인생의 목표를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어요.(28·회사원)
―‘건강한 어른이란 저런 거구나’ 하는 인상을 저에게 최초로 강하게 주신 분이 대학 때 사회학과 교수님이세요. 제가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시기에 교수님께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때 교수님께 몇 차례 연락드릴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교수님은 “너도 쉽지 않은 상황이 많겠지만 잘 극복하며 살도록 해라”라며 힘을 주셨지요. 지금은 학교에 안 계시는데 마지막 수업 날 다들 울고 난리가 났어요. 저에겐 삶의 멘토 같은 분이에요.(25·회사원)
―쿠웨이트에서 살다가 5학년 때 처음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렇다 보니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왕따를 당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이 잘 챙겨주셨습니다. 사탕이나 과자 등 간식도 몰래 주시고요. 한번은 제가 친구들이랑 크게 싸운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그때도 저희를 공개적으로 혼내지 않고 저만 따로 부르셨어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을 물어보며 스스로 깨닫게 해주셨죠. 종종 잘 지내고 있는지 전화도 해주시고 엄마처럼 챙겨주셨어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더욱 고립됐을 것 같아요. 저를 잘 챙겨주셨던 선생님께 정말 감사해요.(18·학생)
“학교 밖에서 만난 수많은 스승들”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당했어요. 너무 화가 나서 친구들이랑 크게 싸웠는데, 그때의 실수로 지금 보호관찰소 생활을 하고 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주눅도 들었어요. 하지만 대학생 멘토링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훨씬 좋아졌어요. 선생님이랑 이곳저곳 놀러 다니고 얘기도 많이 나눠요. 선생님이 친엄마 같기도 하고 친언니 같기도 해요. 이제 꿈이 생겼어요. 열심히 해서 꼭 네일 아티스트가 될 거예요. 선생님에게 자랑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어요.(15·여·학생)
―프로 바둑기사 준비생입니다. 지금은 큰 도장에 다니는데, 초등학교 때 다녔던 작은 학원이 그리워요. 그때 제가 전국바둑어린이대회에서 우승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우승할 실력은 아니었는데, 모두 선생님 덕분이었어요. 선생님이 “넌 정신력이 뛰어나니까 상대방이 아무리 강해도 이길 수 있다”고 반복해 말해줬어요. 그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 바둑을 뒀는데 결국 우승을 했습니다. 부모님보다도 저를 굳게 믿어주셨던 선생님 덕분이에요.(19·학생)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얼마 전 서울에서 일산으로 전학을 왔어요. 새로운 환경이 어색했는지 아이가 과격해졌어요. 친구 소개로 심리상담소를 찾았어요. 상담소의 선생님이 아이 눈높이에 맞게 잘 놀아주고 대해줘 우리 애가 저보다도 선생님이랑 얘기를 더 잘해요. 다닌 지 6개월이 좀 안 됐는데 아주 좋아졌어요.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고…. 집에서 소리 지르는 횟수도 줄었어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정말 행운입니다.(38·주부)
―우리 아이의 첫 어린이집 선생님과 지금도 연락해요. 아이는 16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녔어요. 제가 일을 나가느라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할 때가 많았는데, 선생님 덕에 걱정을 덜 수 있었죠. 아이에게 소매가 긴 옷을 입혀 보내면 선생님은 반듯하게 소매 끝을 접어 활동하기 좋게 해주셨어요. 밥이나 간식을 먹다가 음식을 흘렸을 법도 한데, 아이 옷은 항상 깔끔했어요. 네 살 때 직장 어린이집으로 옮겼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큰 시스템보다는 세심한 보살핌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제게 준 사람이 그 선생님이에요.(33·주부)
오피니언팀 종합·김정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심리학과 졸업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초광력超光力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것이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이었으며 행복의 길이었으니까요.
어느 날인가 서울지회에서 있었던 사례발표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오늘 발표도 상당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모든 분들에게 힘과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 외 달리 사례 발표를 하실 분이 계십니까? 계시면 손을 들어주세요.”
마지막 발표자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 나는 자리를 정리하기 전에 회원들에게 물었다. 간혹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마음이 움직여 예정에 없이 사례 발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라서 그날도 마치기에 앞서 그냥 의례적으로 물어본 성격이 더 짙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제가 해볼게요.”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 목소리가 뒤쪽으로부터 들려왔다. 누굴까? 소리가 들린 쪽을 더듬어보자 머리 위로 하얀 손 하나가 보였다.
“아니, 이은하 씨가요?”
나는 내심 아주 많이 놀랐다. 고위 장성의 부인인 그녀는 평소 지독히 말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찌나 조용한 성격인지 초광력超光力을 받을 때에는 늘 혼자 뒤에 서서 조용히 받다가 소리없이 돌아가고는 했다. 그래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왔다 갔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 앞으로 나오시지요.”
나는 놀란 기분을 애써 감추며 그녀를 앞으로 청했다. 다른 사람들도 의외였던지 모두 숨을 죽이고 그녀만 주시하는 바람에 또각또각 걸어 나오는 그녀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윽고 그녀가 사람들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하라고 합니다. 평범한 가정주부이고요, 남편은 군인입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것도 그게 전부였다.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얼마나 안 하고 지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그런 회원도 참 드물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또 할 수도 없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해도 될 때가 온 것 같아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섰습니다. 혼자 간직하기엔 너무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얘기는 비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비원의 현상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도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럼 저 여인도 비원에 있었던가?’
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는 비원 이야기는 98년 2월 26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비원에 가게 된 것은 대구 회원들처럼 자기들도 빛viit의 현상을 보고 싶다는 서울 회원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결성된 지 얼마 안 되는 서울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는 주문 같았다. 그래서 뭐 꼭 빛viit의 현상을 바란다기보다 그저 가볍게 바람이나 쐬고 오기로 하고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장소를 찾다보니 비원이 선택된 것이다.
약 80명의 회원이 우르를 몰려가 함께 목격한 이날의 현상은 비원 관람 막바지에서 일어났다. 끝나갈 때가 가까워 초광력超光力을 주고 있는데 갑자기 빛이 쫘악 내려오면서 백두산 우주마음 감사제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하늘을 보니 유난히 밝은 해가 바람개비 돌 듯 빙글빙글 돌면서 빨강, 노랑, 파랑의 빛 무리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마치 빨강, 노랑, 파랑 풍선이 태양 주위로 흩어져 날아가는 것 같기도 했고, 삼색의 폭죽이 터져 사방으로 회오리치는 불꽃놀이 같기도 한 광경이었다. 잠시 후 빛viit의 기둥이 쏟아지면서 태양의 분열이 끝났을 때에는 온 사방과 나무에 금분이 내려 앉아 있었다.
나는 혹시 나만의 착시가 아닐까 하여 회원들에게 확인도 했는데 그 현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어떤 사람은 서명까지 하겠노라며 흥분했다.
이은하 씨가 얘기하고 있는 비원의 현상이란 바로 이것을 말했다. 그날 예상 밖의 많은 회원이 참석해 일일이 기억을 못했는데 그녀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빛viit의 현상을 볼 때 처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화려해 그냥 넋을 놓고 구경만 했지요. 그러다가 생각했습니다. 바로 저것이 초자연적 힘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갑자기 구경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지더군요. 그래서 그 하늘을 향해 빌고 빌고 또 빌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우리 아이를 고쳐 달라고···.‘
또박또박하던 말소리가 그 부분에서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호흡을 조절하면서 차분히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다.
“궁금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떻기에 무얼 빌었다는 얘긴지···. 네, 지금부터 그걸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애라고는 그 애 하나지요. 그런데 이 아이는 백일 이후로 한 번도 침대에서 자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침대 밑에서만 자왔지요. 놀 때는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놀고 말입니다. 또 한 번도 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엎드려 입으로 먹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요? 쉽게 말씀드려 강아지같이 행동하고 생활했다는 말씀입니다. 기어다니고, 해 지면 낑낑거리고, 뭐든지 코부터 들이대고, 어두워지면 구석으로 들어가고···.“
그녀의 얘기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겉모습만 사람이지 아이가 개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빠가 들어오면 기어가 킁킁 냄새를 맡고, 잠을 자도 개가 자는 자세로 자는 등 그녀가 열거한 예는 수도 없이 많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수많은 병자나 기인들을 접해본 나도 처음 들어보는 증상이었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오죽이나 하늘이 무너질 노릇이었겠는가?
“사실 저희는 남편이 고급 군인인데다 물려받은 재산도 좀 있어서 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적어도 아이가 이러기 전까지는 남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다 부질없는 놀음이었습니다. 아이가 이런데, 내 자식이 이런데 명예가 있으면 무엇하고 억만금을 가진들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루하루가 그저 가슴을 에는 고통이었을 뿐입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온 세상을 준대도 자식과는 바꿀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기에 나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것 같았다. 그토록 말이 없던 뒤에는 이런 고통이 있었구나···.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가 퍽 의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조용하기는 했어도 그동안 다른 그늘을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눈치를 못 채기도 했겠지만 그녀의 차분한 성격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는데 아이는 더욱 개를 닮아가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무당도 찾아가고 철학관에도 가봤습니다. 처음엔 액이 끼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굿판도 숱하게 벌였습니다. 또 전생에 없이 많아 그렇다고 하는 곳도 있기에 좋은 일도 많이 해보고 자선 행사에도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지쳐 돌아와서 물이라도 한 컵 먹으려 하면 아이가 기어와 혀로 물을 핥아먹는데···.”
고통스럽던 기억이 한순간에 살아오는지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몇 모금에 걸쳐 천천히 물을 나눠 마셨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소개를 받고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실망을 거듭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곳은 달랐습니다. 처음 초광력超光力을 받는데 그렇게 마음이 평온해질 수 없었지요. 지난 몇 년 동안 눈만 뜨면 무너져 내리던 가슴이었는데···. 그래서 그런 마음의 평화라도 지속하기 위해 계속 나오게 됐습니다. 이제 두어 달 되는 것 같군요. 솔직히 아이가 그동안 좋아졌다는 점은 별로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더없이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나오다보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겠나 하는 희망으로 지금껏 초광력超光力을 받아왔습니다.”
왜 그동안 나한테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알았다면 그에 맞는 특별한 마음으로 초광력超光力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 부끄럽기도 하고 또 그 동안 번번히 경험한 실망의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비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그 광경을 보고 정말 열심히 빌었지요. 빌고 빌고 또 빌고···.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냥 믿음이 생기면서 빌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빛viit의 현상이 모두 끝나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마치 중요한 손님과의 약속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 주머니 안에까지 금분이 수북하더군요. 하지만 신기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면서 마음만 급했으니까요. 정신없이 집에까지 가니···, 글쎄 아이가 자고 있었어요···, 침대에서요···. 아이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겁니다. 정말 내 눈을 의심했어요.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던 모습이라···. 그리고··· 놀라는 기척에 잠을 깬 아이가 ‘엄마’ 하면서 내게로 걸어오더니···, 품에 안겨 다시 잠이 드는 겁니다. 평소 같으면 기어와서 내 냄새를 맡고, 침대 밑이나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을 아이가 말입니다. 그렇게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던 겁니다.”
순간 박수와 함께 사람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나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주었다. 처음 듣지만 참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었다. 그 순간의 경이와 기쁨이 어떠했을까? 그날 비원에 왔던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병이나 소원을 풀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듣기는 했어도 그녀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내려갈게요. 아이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지금 한 가지 느끼는 게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무척 수동적인 자세였던 것 같아요. 초광력超光力만 받으면 모든 게 저절로 다가와 이뤄질 줄 알았지요. 아마 이런 제 모습 때문에 초광력超光力을 받고도 처음 두어 달 동안은 아이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게 기적이 온 것은 절실하게 믿고 애원한 때였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요. 그러면서 알았습니다. 그냥 서서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기적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랬어요. 기적은 믿고 애원하고 절실하게 매달릴 때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예전처럼 초광력超光力을 받지 않을 거예요.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초광력超光力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것이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이었으며 행복의 길이었으니까요. 저는 오늘 바로 이 점을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날 신경통을 고치고 위장병이 나았다는 등등의 수많은 사례가 발표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그녀의 이야기가 단연 압권이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그녀가 결론으로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깨달음조차 우주마음이 내려주신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날따라 하늘이 더욱 높아만 보였다.
출처 행복을 주는 남자 P.200~207
작은 성모상과 카드 한 장
일과를 마무리 하려고 가방을 챙기려는데 누군가 노크를 했다. 보기 드물게 아리따운, 한 여성이 찾아왔다. 평소 같으면 마감 후에 방문객이 찾아오면 다소 짜증이 났을 테지만, 이 방문객은 우선 다소곳하게 수줍어하는 모습이 왠지 싫진 않았다.
타지에서 오느라 길이 서툴러, 물어 오느라 늦었다는 가벼운 사과의 표현도 잊지 않았다. 사연인즉, 그녀는 26세의 미혼인데, 사람들이 자기 앞을 지나가면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것 같이 불안하고 두렵다고 했다. 잠자다가도 꿈에서 잘 놀라며, 때로는 잠이 오지 않아 하얗게 밤을 새우기도 했다고 했다. 또 죽고 싶은 마음에 약을 사 모으기도 했다. 큰 병원에도 여러 차례 다녀 보았고, 각종 치료 방법도 거쳐 보았지만 뚜렷한 증세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냥 주는 약 먹고 안정을 취하라고만 했다고 한다.
ㅇ교에 나가면 좋아진다고 이웃이 권하여 나갔을 때는 심장이 더욱 뛰고 눈앞이 캄캄하여 뛰쳐나왔다. 끝내는 용하다는 철학관이나 무속 등에 의뢰 했으나, 한결같이 조상혼, 묏자리, 산바람 등을 들먹이며, 혼이 영의 세계로 못 들어가고 구천에서 헤매니 위령제나 천도제를 지내야 한다고 해서 부적, 굿, 비방 등 별별 짓을 다 해보았다고 한다.
이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마저도 싫어졌다고 한다. 고교시절 ㄱ선생님으로부터 이곳 학회를 소개 받았을 때, 그동안 하도 많이 속고 당하여 건성으로 듣고 잊어버렸는데, 하루는 꿈인지, 환상인지 문득 ㄱ선생님의 그때 그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큰 불덩어리 같은 수레바퀴가 빙글빙글 공중에서 내려오다가 눈앞에 와서는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우울했던 마음이 순간이나마 고요함을 느꼈고, 그날 밤은 꿈도 꾸지 않고 개운하게 잤으며, 몇 년 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고 했다. 그날,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나를 살려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어 설날 아침을 기다리는 어린이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 왔다고 했다.
그녀는 대화 도중 여러 번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그때마다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을 보내면서 탁한 기운을 씻어 주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그녀의 두근거리던 가슴에는 고요와 평온이 깃들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오전 그녀는 꽃을 한 아름 가져왔다. 전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것에 대한 수줍음이 그녀의 눈 속에서 간간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나는 오히려 무관심한 듯 대했다.
고교 1학년 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던 후로 가슴이 두근거리며 동료 얼굴 보기가 무섭고 두려워 중퇴해 버렸던, 비운의 아리따운 여학생은, 약 10년이 지나 이제 미모의 여성으로서 밝고 명랑한 원래의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나의 머리에서 그 여성이 잊혀져 갈 무렵, 그녀는 세번째 방문을 했다.
“선생님, 올 겨울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온 집안이 예전처럼 웃음과 기쁨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답니다.
선생님, 축의금을 주시겠어요?, 초광력超光力을 주시겠어요?”
지난 날 애틋했던 모습은 간 곳이 없이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선생님이 줄 수 있는 것이 뭘까?” 하고 되물으니, 얼른 두 눈을 가만히 감고 두 손을 쏙 내밀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 두 손에서는 금빛이 솟아나고 있었고, 은은한 장미향이 하얀 새털구름에 실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떠난 후 내 책상 위에는 조그마한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작은 성모상과 함께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카드에 담긴 세 줄의 이야기.
선생님! 살아가면서 더욱 잊지 않을래요.
첫 아이 낳아 그이와 함께 다시 뵙겠습니다.
아 참! 선생님이 총각이었다면 두 번째 줄은 쓰지 않았을 거예요.
이마에 손을 얹고 싱긋이 웃음 지어 본다. 울고 왔다가 웃고 가는 그 모습에서 하늘 위의 하늘나라, 기쁨이 넘치는 그분의 나라를 바라본다.
출처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 P. 105~107
첫댓글 스승의 날에 올려 주신 여러 사례들 감사합니다. 96년 2월 26일 비원의 빛현상에서 아들의 변화 체험을 한 이은하 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은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한점 의혹없이 초광력을 받아야 한다는 귀한 말씀 감사히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너무도 감동적인 체험담 잘 읽었습니다. 이은하님의 체험담을 읽으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초광력을 수동적으로 알고 행동한것같아요 . 앞으로는적극적인 행동으로 변하겠습니다. 이은하님의 자녀분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스승의날을 축하하며 학회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
스승의 날을 맞이하는 기념글과, 학회장님께 빛을 받고 기적이 일어난 두가지 사례는 정말 가슴이 뭉클합니다, 인류의 스승 이신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스승의날을 맞아 너무도 감동적인 사례들이 많이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이은하님의 체험사례를 읽다보니 능동적이고 간절함한 마음으로 한정 의혹없이 초광력을 받아야 된다고학회장님께서 말씀하시던게 생각납니다. 꼭 명심하겠습니다.학회장님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참다운 스승의 모습이신 학회장님이 먼저 떠오릅니다. 학회장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분명 큰 축복받은 부자들입니다. 서유종님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학회장님의 은혜에 감사와 고마움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이런 빛을 알게 해 주시고 나누어 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각가지 지나날의 행적을다시 살펴보는계기가 되도록 올려주신글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빛과 함께 하는 마음을 돌아봅니다. 마음에 잘 담겠습니다. 귀한 빛의 말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빛을알고 빛명상을할수있어 가족이 편안하고 건강하니 항상 감사함이 끝이없읍니다 스승의날을 맞이하여 귀한글 감사합니다 ^^
서유종 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진정한 스승이신 학회장님 감사드립니다.^^
서유종님 감사합니다.
우주마음 학회장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서유종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한 체험사례들과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내요들 올랴주시어 감사함니다
감동적인 내용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