守柱待兎 수주대토[지킬 수/그루터기 주/기다릴 대/토끼 토]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치기를 기다린다 |
한비자(韓非子)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 가운데 법가(法家) 사상을 체계화하고 진시황(秦始皇)을 보필한 인물입니다. 특히 그의 독설적(毒說的) 주장은 법치(法治)를 강조했는데, "모순(矛盾)"이나 "수주대토(守株待兎)" 등의 이야기는 적절한 비유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說破)해서 아주 유명한 고사로 사용되는 것들입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 고사인데, 앞서 다룬 "교주고슬(膠柱鼓瑟)"의 의미와도 통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역시 고사 이야기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사상적 이해를 바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창과 방패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자가당착(自家撞着), 자승자박(自繩自縛), 이율배반(二律背反)의 의미로 사용되는 모순(矛盾)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순은 고사가 너무 유명하다 보니 실제 모(矛)와 순(盾)이 창이나 방패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드물 정도입니다.
또한 검객(劍客)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에 뱃전에서 떨어뜨린 칼을 찾으려고 배에 표시를 해놓고 배가 나루터에 정박한 뒤에 표시한 곳으로부터 물에 들어가 칼을 찾으려 했다는 고지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가 각주구검(刻舟求劍)입니다. 이렇게 지나간 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고집부리면서 새로운 상황을 대처하지 못하는 고지식함을 의미하는 각주구검과 수주대토 모두 단순하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고사의 배경을 제대로 알아 봄이 좋을 것입니다.
수주대토는 《한비자(韓非子)》〈오두(五두 [굼벰이나무(두)]〉편에 출전을 두고 있는데, 자세한 배경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밭 가운데에 나무를 베어내고 밑둥만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하루는 토끼 한 마리가 숲에서 나왔다가 농부를 보고 도망치다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게 되었습니다. 토끼를 얻은 농부는 다음날부터 밭에 나와서는 밭을 갈 생각은 없이 쟁기며 농기구를 팽개치고 또 다른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치기를 바라면서 그루터기만 지키며 보냈지만 토끼는 다시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은 송나라에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 宋人 有耕田者 田中有株 兎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耒{耕에서 井을 뺀 글자: 쟁기(뢰)}而守株 冀復得兎 兎不可復得 而身爲宋國笑 } |
한비자는 이 이야기에서 송나라 농부를 특정 인물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공맹(孔孟)과 같은 유가(儒家) 사상가들을 비유해서 비꼰 것입니다. 유가사상이 주장하는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이란 복고주의(復古主義)입니다. 이상향의 정치를 행했다는 성인(聖人)들 곧,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과 같이 성인의 선정(善政)에서 이상적인 정치의 표본을 찾아내고 그것을 본받아 혼란한 세상을 구제(救濟)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해서 한비자의 주장은 급변하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는데 선왕(先王)들의 방침만 가지고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은 모두 수주대토(守株待兎)와 같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이 있는데, 먼저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송(宋)나라입니다. 송(宋)은 고대 은(殷)나라의 유민들이 세운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양공(襄公) 때 와서 제(齊)와 초(楚)의 틈새에서 초(楚)와의 전쟁에 휘말린 송나라가 양공의 어처구니 없는 명분(名分)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어짐을 과시하다가 대패하고 말았던 고사를 '송나라 양공의 쓸데없는 어진 행동'이라는 의미로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 합니다. 또한 송나라 이야기는 맹자(孟子)에게도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바로 앞서 다루었던 "조장(助長)"의 고사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어리석은 농부 역시 송나라 사람입니다.
아울러 수주대토의 원문(原文) 내용을 가지고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문의 구절에 {.. 兎走觸株 折頸而死 .. } 내용은 정확하게 해석하지면 " 토끼가 달리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서 목을 부러뜨리고 죽었다."입니다. 바로 "折頸"의 해석이 '목이 부러진 것'이 아니고 '목을 부러뜨린 것'이라면 토끼는 운 없이 죽은 것이 아니고 자살(自殺)을 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구절 묘사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전국시대 한(韓)나라 태생인 한비자는 진(秦)의 시황(始皇)에 등용되어 법가 사상의 역설로 현실주의적 정치를 주장했지만, 그 역시 성악설(性惡說)로 유명한 순자(荀子) 밑에서 동문수학한 이사(李斯)에게 모함을 당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말년처럼 진(秦)나라가 강력한 대제국을 이루는데 사상적 밑바탕이 되었던 법가사상(法家思想) 역시 진(秦)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진 사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단순하게 보자면 법가 사상은 지나치게 과거를 단절시킨 결과 미래를 창조해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유기체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존재해야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溫故知新"을 떠올려 봅니다.
한자(漢字)의 활용(活用) |
한자 |
독음 |
한 자 어(漢字語) 예 시(例示) |
守 |
(수) |
지키다 - 守備(수비), 墨翟之守(묵적지수:묵수,고수), 守錢奴(수전노) 守節(수절) |
株 |
(주) |
1) 그루터기 - 枯株(고주), 2) 주식 - 株式(주식), 株主(주주) |
待 |
(대) |
1) 기다리다 -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2) 대접하다 - 待遇(대우), 接待(접대) |
兎 |
(토) |
1) 토끼 - 狡兎(교토), 兎盾(토순:언청이), 兎走烏飛(토주오비), 2) 달 - 兎月(토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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