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치페이가 나쁜 건가요?
저는 친구 사이에도 돈 문제는 확실히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빌려주지도 빌리지도 않아요. 물론 술자리에서도 나누어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제가 살 경우엔 ‘이번에는 내가 한턱낼게’라고 확실히 계산할 것임을 밝혀두죠.
친구들도 제 방식을 이해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대학 동기를 업무관계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번 식사도 같이하고 술자리도 가졌는데 그는 돈 계산에 있어 정확하지 않더군요.
어떤 날은 계산할 때 먼저 나가버리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아무렇지 않게 계산을 하고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이런 사람도 있겠지 하고 맞춰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 술 마시자고 한 뒤 매번 제게 술값을 떠넘기는 거예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너한테 나도 한번 얻어먹어 보자’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그는 살아오면서
이런 소리는 처음 들었다며 기분 나빠했어요. 그가 화를 내며 계산을 하고 나가니까 더 미안한 상황이 되어버렸죠.
그가 ‘남자들 사이에 더치페이에 집착하는 놈은 처음 본다’고 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요.
제가 돈에 대해 유별나게 소심하게 구는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황정수(가명, 27세, 직장인)
당신이 한국적 기준에서 조금 유별나게 더치페이를 선호할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친구 반응은 당신의 그 유별남을 변명 삼을 수 없을 정도로 치졸한 수준이다. 여러 번 술값 낸 후 한 번 내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그런 반응을 했다는 건 사실은 자기가 쪽팔려 그러는 건데, 물론 그 친구가 담에 크게 한 번 내겠다고 맘에 담고 있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그렇게 화낼 일은 결코 아니지. 더치페이를 좀스럽게 여기는 한국 남성사회의 수컷 허세는 당장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냐. 더치페이를 합리적이라 여기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으니 지금은 대세에 굴복해 눈치 보는 수밖에. 당신 잘못 없어. 하지만 이런 건 있어. 살다 보면 칼같이 반으로 나눌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예를 들어 그렇게 딱 반으로 나눈다는 생각으로 동업하면 반드시 실패하지. 딱 반으로 나누면 아무 문제없을 것 같지만, 실제 동업을 해보면 반으로 나눠지는 경우보단 이번엔 내가 손해를 봐야겠단 마음을 먹어야 해결되는 경우가 더 많지. 그렇게 서로 당장의 손해를 나누고 장기적으로 퉁쳐 균형을 맞춰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사실 인간관계 자체가 기본적으로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지. 하여간 더치페이가 결코 나쁜 게 아니지만 이걸 기억해둘 필요는 있어. 딱 반이 항상 가장 공평한 건 아니라는 거.
◆ 좋아하는 후배가 남자친구와 깨졌다는데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후배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녀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어요.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라 그들의 애정사는 잘 알고 있어요. 한 번도 그녀에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그녀는 저를 편하게 친오빠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남자친구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솔직히 위로하고 싶다거나 다시 둘이 만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거든요. 그녀는 많이 힘들어했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았고 저에게도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며칠 전 그녀가 어렵게 말을 꺼내더군요.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말한 뒤 잠시 여행을 떠났는데 그를 찾으러 가봐야 될 것 같다고요. 그곳에서 그와 만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부모님과 친구들 모두 반대를 하지만 자신은 꼭 가야겠다며 저에게 항공권을 예약할 돈을 빌려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습니다. 돈의 여유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렸지만 그녀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좋은 선배라면 돈을 빌려주어야 하는 건지….
-강민성(가명, 27세, 대학원생)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우선 사실대로 말하고 남자친구가 안 받아주면 내게 오라며 돈을 빌려주는 것. 심적, 금전적으로 그녀에게 이중의 부담을 안기는 거지만 대신 당신의 의사를 밝히는 데에 아주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을 수 있어. 물론 그만큼 리스크도 커서 다신 못 볼 수도 있지. 이미 오래된 감정이라면 그렇게 지르는 게 필요할 수 있어. 지른다고 다 얻을 순 없지만 지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두 번째, 돈은 빌려주되 남자친구가 거절하길 정화수 떠놓고 비는 방법. 그리고 기다렸다 실패하면 말하는 거야. 첫 번째에 비해 당신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이긴 하지만 위로받고 싶은 마음, 허전함, 복수심으로 당신을 만날 가능성이 첫 번째보다 높아지지. 만약 그럴 경우 끝이 아주 지랄 같을 수 있어. 물론 돈 빌려주고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킬 리스크를 안기 싫으면 안 빌려줘도 돼.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 지금은 돈 없다고 하고 나중에 실패해 돌아올 경우에만 고백하는 다소 ‘얍삽한’ 초이스. 하지만 명심하자고. 세상에 공짜는 없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나라면? 당근, 첫 번째. 언제나 직진이 최단 거리야. 방향만 맞는다면….
◆ 여자친구의 취업, 내가 더 고민입니다.
여자친구가 이번에 졸업을 했는데 취업하지 못했어요. 취업하기가 어려운 때라서 그녀의 취업 실패가 남다르게 생각되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많이 실망하고 있지만 저는 계속 시도하다 보면 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를 했죠. 그런데 그녀는 저의 태도에 불만이 많은 눈치입니다. 얼마 전에 제대한 제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실정을 어떻게 알겠냐며 속 편한 소리만 한다고 하더군요.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녀에게 다음에는 꼭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녀는 무언가 다른 조언이나 위로를 해주길 원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부러 취업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제를 돌리면, 그녀는 자기 일이 아니니까 천하태평이라며 서운하다고 화를 내요.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제가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취업이 늦어지는 동안 저한테 내내 이렇게 대하면 어쩔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박병순(25세, 학생)
당신이 여자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태평할 개연성은 충분한 것 같구만. 제대한 지 얼마 안된다니 아직 여유가 있어 그 절박성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거 아냐. 당신에겐 짐작이고 그녀에겐 실제란 말이지. 취업 안되는 사람 많다거나 다음에는 꼭 될 거라는 따위의 말은 위로나 도움이 전혀 안되지. 이미 취업된 사람들이 기준일 테고 다음엔 꼭 된단 말도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긴 줄 누가 모르겠나. 게다가 군대에서 갓 제대한 당신이 무슨 실용적인 조언을 할 수 있겠어. 발등에 불 떨어진 그녀가 조금이라도 알면 더 알겠지. 어떻게 하느냐. 자 이제부터, 말로 때울 생각 말고 그녀와 함께 열심히 취업정보를 뒤져. 열과 성을 다해.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해. 아는 선배들한테 여기저기 전화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 정도면 구박받는 건 해결될 거라고 봐. 하지만 이건 사실 그 이상의 문제야. 왜냐하면 이게 결국 단순히 애정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로 확장, 인식되거든. 그래서 먼저 졸업한 애인에게 많이들 버림받지. 학교에 남은 남자가 아이로 보이거든. 실제 그렇기도 하고. 당신,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he adviced…
김어준 씨는 인터넷 패러디 신문 <딴지 일보>의 발행인이다. 1998년 <딴지일보> 설립 후 화려한 언변과 직관력으로 사회 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시각을 던져 왔다. CBS 라디오에서 월~토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에게 상담을 원한다면 talktocosmo@ hanmir.com으로 사연을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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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주 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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