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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오늘날 민주당이 맞은 위기가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핵심 지지 계층을 둘러싼 전략적 오판임을 증명한다. 프랭크는 민주당을 향해 한때 자신들의 핵심 정체성이었던 평등주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한 당, 그러면서 선거철마다 <공화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유권자들을 깃발 아래로 결집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 오만에 빠진 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 책은 비록 미국 민주당의 실패의 역사를 다루지만, 그 경고는 미국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정당이 자신의 핵심 가치를 버리고 지지층을 배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집권 정당이 <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준엄한 진실을 알려 준다. <민중의 당>이라는 이름과 철학으로 한 세기 넘게 표를 얻어 온 정당이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그 역사와 인물들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민주당의 배신
민주당이 <민중의 당>이라는 계급적 정체성을 확고히 다졌던 때는 1930년대 뉴딜 시기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넘쳐나고 국내적으로 계급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서 승리한 프랭크 루스벨트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시행했다. 동시에 블루칼라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과 노동친화적 정책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민주당이 루스벨트 집권 이후 20년간 행정부와 의회를 완벽히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한 세대가 흐르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1970년 즈음의 미국은 더 이상 뉴딜 정책이 필요한 궁핍한 나라가 아니었다. 1968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휴버트 험프리가 리처드 닉슨에게 패배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 인식 변화가 나타났다. 뉴딜 시대와 작별하고 미래를 준비할 때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그리고 1972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맥거번 위원회의 주도로 일단의 개혁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1968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모아 주었던(민주당의 참패를 막아 주었던) 노동 계급을 하루아침에 차버렸다. 민주당이 보기에 노동 계급이란 여전히 평등과 연대라는 철지난 구호나 외치는 뉴딜 시대의 산물이었다. 노동 계급은 선거철 필요할 때는 친한 척을 해야겠지만, 그 외에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대신 그들은 백인 중상층 출신의 <전문직 종사자들>로 그 자리를 메워 나갔다. 그들이야말로 능력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목소리이고, <최고의 인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민주당이 전통적인 지지 기반과 거리를 두고 <최고의 학벌>을 갖춘 엘리트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이 <블루칼라들은 한때 그들의 요구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 주었던 당에 다시 비집고 들어가고자 애써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 이런 흐름이 한 세대 넘게 지속되면서 월 스트리트, 실리콘 벨리와 같은 특정 도시를 기반으로 한 소수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더욱 번창한 반면, 블루칼라 노동자와 국가 전체로는 불평등의 결과를 온몸으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민중의 당>에 민중은 없었다. 민주당 지도층의 입에서는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얻는 것이 달라진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에 걸맞은 보수를 받고 있으며, 당신에게 걸맞은 보수란 당신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위의 신자유주의식의 계몽의 목소리만 넘쳐났다.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
이 책은 클린턴과 오바마 집권기의 민주당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프랭크는 이 시기 민주당이 우리 시대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뒷전으로 미뤄 뒀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통적인 진보주의의 목표, 곧 기회를 늘리고,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기회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민주당은 어쨌거나 24년 중 16년을 백악관의 주인으로 지냈기 때문이다.
물론 클린턴 정부는 이해할 만하다. 100퍼센트에 가까운 고용률에 주가 역시 고공행진하면서 노동자의 생활도 나름 윤택했기 때문이다(거품 경제가 꺼지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시장의 번영은 정치판에서 최고의 패였다. 그러나 오바마 집권기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 2008년 최악의 금융 위기로 최상위 계층에 대한 대중적 분노로 들끓던 시기였다. 차라리 70년 전 대공황 시기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상황과 흡사했다. 그러나 최고의 권력을 쥔 오바마였지만, 그 역시 8년간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바마 정부는 <파산시키기에는 너무 거대해졌다>는 이유로 은행들에 막대한 구제 금융을 제공했고, 담보 빚을 진 수백만 명의 주택 소유자를 보호하기(크램다운cramdown)보다 수수방관하며 채권자인 은행들의 손을 들어 줬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에 유리한 <노동 자유 선택법>은 방치하거나,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위협하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은 밀어붙였다. 프랭크는 <노동자와 사용자에 대한 극명한 차별 대우가 오바마 시대의 원칙이 되었다>고 비꼰다. 저자의 말마따나 <경제적 불평등>을 개혁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 없는>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역사상 최고의 패를 스스로 던져 버렸다.
물론 오바마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때때로 정부는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원양 정기선으로 치자면 북쪽이나 남쪽으로 2도 정도 방향을 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지금부터 10년 뒤의 우리는 현재 위치와 매우 다른 곳의 경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50도로 변침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2도 변침은 소용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 하지만 50도 변침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프랭크가 보기에 원양 정기선은 핑계일 뿐이다. 대통령의 힘만으로 타륜을 힘차게 돌릴 무수한 방법들이 있었다. 프랭크는 오바마 정부가 일반 시민의 편에 서는 데 주저했던 이유가,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당을 둘러싼 상위 계층의 이익과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때 환생한 루스벨트처럼 여겨졌던 오바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결정했다.> 물론 루스벨트의 길은 아니었다.
민주당은 혁신을 좋아해
민주당이 실리콘 밸리의 혁신가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깨끗하고 고결한 산업(지식 산업)을 주도했고, 학식 있고 창조적인 계급을 대표했다.> 물론 비슷한 최고의 학벌에 문화적 동질감도 강하고, 능력주의를 당연시한다는 점에서도 민주당과 통했다. 유수한 명문 대학과 실리콘 벨리가 위치한 혁신의 땅 메사추세츠가 개표 방송에서 유독 민주당의 파란색을 띠는 이유다.
하지만 프랭크가 보기에 실리콘 벨리의 기술 혁신은 전통적인 노동 계급과 충돌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 혁신 기업들이 하는 사업은 말이 혁신이지 <독점을 강화하는 우회로>에 불과했다. 이를테면 우버(승객과 운전기사를 연결하는 기술 플랫폼)라는 회사가 지닌 가치의 대부분은 그들이 고안해 낸 택시 잡기의 효율성보다 안전이나 보험에 관련된 지방 정부의 택시 규정을 우회할 수 있도록 만든 능력에 있다. 에어비앤비(개인의 거주 공간을 타인에게 임대해 주는 숙방 공유 플랫폼) 역시 소비자와 제공자 모두에게 전통적인 호텔이라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다양한 안전과 입지 규정을 우회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 결과 전통적인 택시 기사나 소규모 숙박업 종사자들의 생계는 물론이고, 그것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안전 역시 위협받는다. 프랭크는 기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유 경제>가 사실상 오래전부터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들여 마련한 사회적 규칙들을 손쉽게 부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연대를 통해 권리를 획득했던 전통적인 노동자들은 사라지고 <일거리를 얻으려고 동네 철물점 밖에서 서성거리는 일용직 노동자>만 남기고 있다. 민주당이 국가의 <미래>라는 이유로 매번 실리콘 밸리 혁신가들의 손을 들어 주면서, 중산층의 삶을 보호하는 전통적인 사회적 합의들은 발로 차버리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오만
빌 클린턴 집권 시기 주식 가격이 치솟을 때만 해도, 버락 오바마가 〈담대한 희망〉을 부르짖으며 백악관에 입성할 때만 해도 미국 정치사에서 민주당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 같았다. 2008년부터 언론에 등장한 <우세의 고착화>라는 말이 민주당에겐 일종의 보루였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봐도 〈젊은 세대, 소수자, 중상위 계층 백인 전문직 종사자〉가 지지하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끔찍한> 공화당에 질 리 없다고 여겨졌다. 『민중당의 착각과 오만』이 출간 당시보다 대선 이후 더 주목받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보여 줬던 민주당의 약점들은 실제로 현실이 되었다. 민주당이 <달리 갈 곳 없는 사람들>로 부르던 노동 계급은 아무리 갈 곳이 없더라도 민주당한테만은 가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의 이야기는 비슷한 양당제 구조의 한국 정당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양당제하에서 포퓰리즘을 표방한 진보 정당은 언제든 기로에 서게 된다. 어떤 국가적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계급적 이익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부자들을 비난하면서 표를 구한 정당이 거꾸로 부자들에게 보탬이 되는 정책을 펴면 대중들은 속았다는 생각밖에 들 수 없다. 특히나 자신들의 삶이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라고 분노하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19세기 초 민주당 상원의원 토머스 하트 벤턴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르는 정수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미국을 지배하는 것이 대중인가? 아니면 돈인가?> 결국 어느 편에 서서 사안을 보느냐가 문제다. 최후의 순간에 누구의 손을 드느냐가 문제다. 이것은 프랭크가 말하는 정당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책속에서
첫문장
우리 한번 냉정하게 따져 보자. 민주당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일까?
P.16
오바마 대통령 본인은 불평등을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문제〉라고 야기했다. 〈불평등〉은 지난 30년 동안 해가 거듭될수록 부자들의 삶을 명백히 아주 맛깔스럽게 만들어 준 모든 것의 약칭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삶을 지극히 비참하고 위태롭게 만든 모든 것의 약칭이기도 하다.
P.18
중산층을 보호하는 일은 민주당의 역사적인 사명이었고 예전의 민주당원들은 기꺼이 그들의 사명을 받아들였다. 요컨대 공동의 번영은 한때 민주당의 지고한 목표였다. 오늘날 최저 임금과 부유세를 인상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다.
P.22
워싱턴에 입성한 민주당원들은 인구 통계학적인 변화 덕분에 앞으로도 계속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2008년부터 언론은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 준 거침없이 늘어나고 있는 민주당 옹호 집단을 묘사하면서 〈우세의 고착화〉라는 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 소수자, 중상위 계층 백인 전문직 종사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P.32
민주당은 민중을 대변한다. 즉 농민을 위해 일하기로 맹세했다. 노동자를 위해 일하기로 맹세했으며 소규모 기업인과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위해 일하기로 맹세했다. 민주당은 인권과 복지를 우선한다. 하지만 특권층을 대변하는 공화당의 태도는 매우 다르다. 부유한 공화당원들은 농업과 노동을 사업적인 투자에 따른 단순한 비용 항목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정부를 이 같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여긴다. ― 해리 트루먼, 1948년에 아이오와 주에서 열린 쟁기질 대회에서
P.36
전문직 종사자들은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집단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 재력이 아니라 학력이라는 점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을 규정하는 훌륭한 사회학적 정의 중 하나는 〈공인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제2의 계급〉이다.
P.44
오늘날 민주당의 관점은 사실상 모든 세부적인 분야에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갖춘 관리자 계급의 이념적 개성을 반영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P.49
오바마 자신이 전후 미국의 강력한 능력주의 사회 체제를 통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자신이 타고 올라온 신분의 사다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을 보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P.50
전문직 종사자들은 다른 민주당 지지자들, 즉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노동자들을 딱히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가지 이유는 노동조합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가 아닌 낮은 지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전문직이 상징하는 개인의 우수함이라는 원칙이 노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연대 의식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P.72
민주당의 거물 프레더릭 더턴은 민주당에 그동안 권력을 쥐어 준 윤리 노선을 전환하고자 계획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역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주장했다. 〈1930년대에는 블루칼라 집단이 최전선에 있었다. 이제는 화이트칼라 특히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미래를 바꿀 1971년의 오늘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P.211
때때로 정부는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원양 정기선으로 치자면 북쪽이나 남쪽으로 2도 정도 방향을 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지금부터 10년 뒤의 우리는 현재 위치와 매우 다른 곳의 경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50도로 변침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2도 변침은 소용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 하지만 50도 변침은 〈불가능〉한 일이다. ― 오바마 대통령, 2015년 코미디언 마크 마론과의 대화 중에서
P.287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중산층의 전통적인 경제적 합의를 우회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찬사를 받았던 혁신적인 사업들을 생각해 보라. 우버라는 회사가 지닌 가치의 대부분은 그들이 고안해 낸 택시 잡기의 효율성보다 안전이나 때로는 보험에 관련된 주나 지방 정부의 택시 규정을 우회할 수 있도록 만든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P.311
전문가 계급의 진보주의는 보다 큰 정의가 존재하는 어떤 장소로 나아가기 위해서 끝없이 탐사를 이어가는 듯하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압도적인 선(善)이라는 주제를 찾아다니느라 늘 바쁘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주제는 그들이 추구하는 진보주의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좋은 일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P.327~328
세계적인 규모의 연민 무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선의를 모으거나 실행한 인물들이 포함된 선(善)의 국제적인 순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시장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접촉하게 되는데, 그들은 바로 세계를 누비는 도덕적인 슈퍼스타들의 눈부신 선행으로 자신의 몸을 녹이는 정치가들과 억만장자들과 은행가들이다.
P.347
〈실패〉는 확실히 귀에 거슬리는 표현이지만 고작 기업가 정신이나 혁신을 들먹이면서 대규모 경제 붕괴에 맞서고자 한 좌파 정당을 보면서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은행 규제 철폐나 〈창조적인 계급〉, 은행 대출을 통한 역량 강화 같은 형편없고 이기적인 아이디어에 거듭해서 속아 넘어간 전문직 종사자들의 당을 보면서는? 귀족 정치로 회귀하도록 그냥 내버려 둔 민중의 당에 대해서는?
P.348
민주당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게 전문직 계급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찬양하는 데 헌신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민중의 당>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2년마다 공화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유권자들을 자신들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킬 수 있을 거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대로 마냥 이렇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