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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벗고 하나님의 뜻 접근하라!(출3:7-12)
1773년 프랑스 의회가 ‘우리 프랑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고 가결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프랑스의 도덕과 윤리가 문란해지고 가정이 곤두박질쳤습니다. 나라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두려워 다시 모여 ‘우리 프랑스는 하나님을 믿고, 영혼 불멸을 믿는다.’라고 가결했습니다.
그러자 나라가 잠잠해지고 안정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편 127:1)하나님께서는 개인도 살피시지만 나라도 살피십니다.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의 모든 학교는 아침마다 담임선생님의 지도 아래 기도를 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인인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은 자유 국가인데 왜 모든 학교에서 하나님께만 기도하게 하느냐? 그것은 위법이다.’라며 국회의원들을 부추겨 공립학교에서 기도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때가 1962년입니다. 그 법을 만들고 나서 그는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 미국의 학교에 총기와 마약, 폭력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미국의 모든 돈에는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회의원들 중에서 ‘왜 하나님 이름만 쓰느냐? 왜 대통령이 성경에만 손을 얹느냐?’라며 불평을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러니 미국의 명예가 떨어지고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모스 6장 12절에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리시면 모든 상황이 바위처럼 되는데 거기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상하다. 어째서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가?
한번 가서 봐야겠다.’ 하고 가까이 가자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어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세를 부르신 목적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모세를 부르신 목적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출3:7-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이 산’, 곧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달라며 민족 해방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분일까?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알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 단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왜 유독 하나님에 대해서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과 이성과 지성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나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시킴으로써 접근해야 한다 말입니까? 여기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으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많은 사람 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모든 진리는 과학과 자연에 의해 연구 조사한 결과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조사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검사나 탐색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욥11:7). 절대 발견할 수 없습니다!....
누가 자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고 "나는 틀림없이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거야"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 조사원 이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그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높고 훌륭하다 해도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전체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찾아오시는 하나님,
갑자기 침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그리고 선지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볼수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사자을 통해 “ 주께서 이르시기를....이라는 표현을 종종 들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어떤 것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우리가 연구 조사하는 정신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고 들어야 할 계시입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전체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찾아오시는 하나님, 갑자기 침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주어진 계시가 기이하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기이하고, 초자연적입니다.
모세가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봐야겠다.
저 가시떨기나무는 왜 타지 않는 걸까. 이건 기적이다.
이건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상당히 옳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비록 그 자신은 자기가 얼마나 옳은지 깨닫고 있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초자연적인 것과 함께 시작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인간의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으며 온 인류의 머리를 다 합쳐도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독특하며 불가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것을 "조사하고" "검사함으로써" 시작하려는 것은 괜한 시간 낭비 아닐까요?.... 누가 자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알수 있는냐.. 그리고 그는 구원 받을수 았는가? 그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높고 훌륭하다 해도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보다 더 중요한 다음 요점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유대인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나 요즈음에 힘들어.> 상대방은 말합니다.
<신발벗고 하나님께 맡겨.> 신발벗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버림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신발을 벗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민족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도망쳤습니다. 광야에서 자기 의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아. 네 생각을 포기해. 신발벗어.>
타는 가시떨기나무, 어쩌면 초자연적인 현상일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불꽃이 아닌 한 인격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발에서 신을 벗어야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그것은 영적 체험입니다.
우리가 신을 벗고 순복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할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는 무엇입니까?
첫째,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계시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하나님에 대해 첫번째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기독교 신앙의 전체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대면시키는 것,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면 거룩하여 집니다.
거룩하여 지면 하나님과 관계가 이어집니다
요17장 주님은 아버지께 유명한 기도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은 앞으로 모든 믿는자 들을 위해 대신 기도 하고 계십니다.
17절]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성화을 위한 기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주님은 자신의 사명과 우리의 사명을 동일시 하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보내 지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보내 졌습니다.
그리고 19절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즉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을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모든면 에서 성화의 모본이고 , 성화된 인간의 표준이십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이 자기와 같도록 기도 하십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이 우리도 거룩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순종의 본이 되셨다.
우리도 이와 같이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시고, 요구하고 있다.
성경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체험입니다. 감사하게도 그것은 영적 체험입니다.
행5;32절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여기서 “ 성령도 그러 하니라”의 문구-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성령도 그러하니라
즉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 하는 사람 들에게 주신“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이라고 강조 하는 것입니다.
* 그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소육“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순종 하는자 에게 주님은 “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순종 하는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다.
진실로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면 그의 사랑을 알기 원한다면 순종으로 귀결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원한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은 순종으로 표현합니다.
“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자 라야 나를 사랑하는자니 .
불순종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주신 그리스도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면서 불순종 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하는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 하는 행위 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을 주시면서 그분의 사랑을 보여지만 그의 행위가 불순종으로 겨역 한다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중생을 위해 거룩함으로 이끄신다.
성령은 우리를 꾸짖고, 견책하며 ,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한다면 그 마음에 불편과 불안을 만드신다.
그런 성령의 책망과 느낌을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계속해서 같은일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 안에 역사 하셨서 그 사람을 거룩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계시하신 후,
계속해서 자신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출3:7) 오,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대면하고 있는 그 문제는.
우리 자신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이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죄의 노예 입니다. 여러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나쁜 성질의 노예입니다.
질투심,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부정직성,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그의 기적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점에서 여러분을 넘어뜨리고
여러분과 여러분 인생을 실패자로 만드는 것들로부터 구원받는 것,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있다. 이런사실을 인식하고,
듣기만 한다면, 신을 벗고 경외심을 품고 주의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나는 너의 우고를 알고, 나는 너의 불행과 실패를 알며, 나는 너에 관한 모든 것을 안다. 나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다."
그런 다음 8절에서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내가 내려와서 건져낸다"- 얼마나 완전한 말씀입니까?
우리는 구약에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것이 신약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성삼위 하나님의 복되신 두번째 위격이십니다. 그 성자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여러분과 저의 고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비참함과 불쌍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와 수치와 실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거룩하고, 흠없고, 죄없는 자기 몸에 여러분과 저의 죄를 짋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거기에서 그 길을 행하셨습니다.
그 속전을 지불하셨습니다.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족하셨고,
율법이 충족되었으며,
지옥과 사탄이 패하고 애굽이 정복되었습니다.
홍해-하나님과 새 생명으로 가는 길-가 열렸습니다.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중생해서,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 영원이라는 무궁 무진한 세월 동안 영적인 젖과 꿀을 마시며 살 수 있다는 복된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 납니다.
마3;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은 예수님과 같은 방식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뜻과 말씀과 사랑으로 순종함으로 거룩해지기 원하십니다.
그럼 무슨 능력으로 주님은 하나님께 대한
하나님을 향한 “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순종 할수 있을까요 ?
예수님은 이 세상 에서 자기의 특권[능력] 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 나는 이 세상에 왔다 나조차도 내가 언제 재림 할찌 모른다.
“ 나는 나를 위해 찬만 천사를 부를 능력이 있으나 나는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님은 능력을 잃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능력을 보류하시고 하나님의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그럼 “ 주님은 무슨 능력 으로 이 “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순종 할수 있을까요 ?
예수님은 진실하고, 겸손하고, 깨끗하고, 믿음으로, 선행을 행하고, 빛, 지혜, 진리로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 처럼 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