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외면하고 옛날, 저기 말하기
모두의 잘못이니, 모두 책임지라는 주장
진실·가짜 뒤섞기, 중립인 척 부자 편들기
가짜 뉴스가 언론에, 유튜브에, SNS에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심지어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언론도 있다. 언론인은 언론회사의 종업원에 불과하다는 말도 들린다. 소속 언론회사의 영업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는 기자들에게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라는 뜻일까.
현실 외면하고 저항의지 약화시키는 가짜 설교
언론에 가짜 뉴스가 있다면, 종교에 가짜 설교가 있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더럽힌다고 느끼는 시민은 많지만, 가짜 설교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교회성당에서 가짜 설교를 수십 년씩 들어온 사람이라면, 그 영혼과 정신은 얼마나 처참하게 일그러졌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그런 일은 평범하게 저질러지는 악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 오늘 한국의 종교에서 설교가 큰 문제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기 위해 스스로 종교를 택한다는 뜻이다. 레닌도 “종교는 인민에게 아편”이라고 말했다. 국가나 종교가 백성들로 하여금 고통스런 현실을 잊게 만들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강요한다는 뜻이다. 인민의 아편이든, 인민에게 아편이든, 둘 다 종교의 나쁜 기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인민의 아편인 종교도 있지만, 인민에게 아편인 종교도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종교로 도피하기도 하지만,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이 신도를 속이고 이용하기도 한다. 인민의 아편인 종교는 시민들에게 커다란 유혹이라면, 인민에게 아편인 종교는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에게 커다란 유혹이다.
뉴스 조작이 독자를 속이려 한다면, 설교 조작은 신도들 속이려 한다. 설교를 듣는 사람이 역사와 현실을 정직하게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악의 세력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관념의 세계나 죽음 이후로 돌리려 한다.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은 각종 선거에 직간접으로 개입할 뿐 아니라 설교를 통해 일상적으로 신도들의 정신세계에 나쁜 영향을 행사한다. 가짜 설교는 현실을 망각하라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세뇌하고 속여서, 백성들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킨다. 가짜 설교는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의 이익을 수호하고 변호하는 역할을 한다.
중요 사건 언급 않기, 모두의 책임으로 돌리기, 진실과 가짜 뒤섞기
가장 흔히 쓰이는 설교 조작 수법은 무엇일까.
첫째, 중요한 사건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설교가 있다. 말하지 않는 사건은 없는 사건이나 다름없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처럼 취급된다.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의 실상을 고발하는 목사신부는 몇이나 될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살해미수 사건을 언급한 목사신부가 있기는 한가.
둘째, 우리 모두 잘못했으니, 우리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설교도 있다. 그런 설교는 책임 소재 규명을 방해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을 보호해준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모든 국민의 안전 불감증 탓으로 설교한다면, 참사 원인을 제대로 밝힐 수 있을까.
셋째, 사소한 주제에 집중하여 심각한 주제를 숨기는 설교도 있다. 진실과 가짜를 적당히 뒤섞어 전달하기도 한다. 메시지를 묵살하기 위해 메신저를 비난하는 수법은 언론뿐 아니라 설교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다.
그런데, 중립을 지키는 설교처럼 사악한 설교가 또 있을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설교는 사실상 부자를 편드는 설교와 다름없다.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설교는 사실상 가해자를 편드는 설교에 불과하다.
외국 사례를 들어 한국 현실을 외면하거나, 옛날 사건을 꺼내어 오늘 상황을 덮는 설교 수법도 있다. 중요한 주제를 언급할 시간을 우아하게 회피하는 것이다. 모범 사례 언급하여 부패 사례 덮기, 반성을 유도하여 비판 삼가기, 사랑은 강조하고 정의 외면하기, 개인에게 집중하여 구조 문제 숨기기 수법도 있다.
억압자들에게 저항하고 싸우는 예수를 전해주는 진짜 설교
전에는 교회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나는 걱정되었다. 교회성당에 다니지 않다가 구원 못 받으면 어떡하냔 말이다. 지금은 교회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나는 주로 걱정된다. 교회성당에 다니다가 구원 못 받으면 어떡하냔 말이다. 가짜 설교에 시달릴 그들이 염려되어서 그렇다.
설교는 아편일 수 있지만 해방의 도구일 수도 있다. 태극기 집회에서만 사악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종교 속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은 인민의 아편과 다름없는 설교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 설교에서 세상 변혁의 힘을 찾는 사람들은 가짜 설교를 하는 설교자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해야 한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망친다면, 가짜 설교는 종교와 신도를 망가뜨리고 있다. 목사신부와 신도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가짜 설교를 어서 몰아내야 한다.
나는 꿈꾸어본다. 억압자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예수, 억압자들에게 저항하고 싸우는 예수를 전해주는 진짜 설교 말이다. 그런 설교는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차별로 가득한 한반도 역사와 현실을 올바로 보게 하고, 악의 세력을 낱낱이 폭로할 것이다. 민주주의에 이바지하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며, 사회 개혁에 앞장서도록 격려하는 진짜 설교가 일요일마다 전국의 교회성당에서 울려퍼지는 그날을 나는 기쁘게 소망한다.
첫댓글 진짜 설교가 일요일마다 전국의 교회에서 선포되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