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시편 50:22-23)24.07.07.맥추감사주일
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 를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오브리가도’가 무슨 뜻입니까? 감사합니다. 입니다.
일상에서 틈만 나면 ‘오브리가도’를 외친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 역시 가장 많이 사용하는 50개 단어를 선별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땡큐’ 라는 말이 제일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또 그들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 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공로도, 그리고 수고와 노력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고 그 피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3대 명절을 말씀하십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일 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감사드리는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맥추절은 밀과 보리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맥추절을 지키게 된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부터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의 여정을 마치고,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정착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맥추절을 지킵니다.
맥추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과 광야 40년 동안의 고난의 세월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시고, 힘들고 고통스런 광야생활 동안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8:11-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들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먹거리가 풍성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재물이 풍부하고 넘칠 때 감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6개월 동안을 조용히 돌이켜 보시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50편 윗 부분에 보면 ‘아삽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아삽은 역대상 16장 4절에서 5절에 보면 그는 레위지파에서 음악가의 우두머리로 나옵니다. 성경에는 ‘두목’이라고 되어 있는데 레위지파에서 음악의 아주 권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삽은 하나님께 늘 찬양하며 감사하며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찬양과 ‘감사’입니다.
1. 우리는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자가 없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감사할 것이 참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실은 감사할 것 투성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
나로 하여금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 하게 하신 것,
나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 것...
감사를 잃어버리면 불평과 원망이 찾아옵니다.
이것은 마치 공식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살려 내신 놀라운 은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옷과 신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셔서 굶기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생수를 주셨고.. 하여튼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곧 잊어버리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의 광야의 여정은 불평과 원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들은 감사를 회복하지 못했고 드디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규태 씨의 글을 보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병은 감사 결핍증”이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가게 주인이 “Thank you,” 하지 아니하고,
“또 오세요.” 라고 하는데, 상당히 이기적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고맙습니다.” 라는 말 대신에
“신난다.”라는 말이 앞선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의 특징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면 하나님은 찢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불평대신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1. 우리는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2.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합니다.
2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자손은 성전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사의 종류는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 위임제가 있었는데, 곡물을 바치는 소제를 제외하고는 제단 위에서 짐승 제물을 불에 사르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때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렇지 않고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이사야서 1장을 보면, 유다 백성은 율법의 규례를 따라서 안식일마다,
절기마다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너희의 제물을 기뻐하지 않으니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종교행위로서 제물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는 헛되고 가증한 것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엽게 합니다.
우리는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보혈로써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으므로 더 이상의 속죄 제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주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예배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들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이 다만 시간을 때우는 식의 예배는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므로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십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특징 가운데 ‘감사치 아니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21).
그리고 디모데후서 3장을 보면, 말세 사람들의 악덕 19가지를 열거한 가운데 ‘감사하지 아니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2).
감사치 않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의 특징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치유함을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9명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지 않았지만 사마리아인은 은혜를 알고 감사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병을 치유 받은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다시 와서 감사함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당연히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를 작사한 버틀러(C. F. Butler)는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는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계속 감사가 나옵니다. 계속 풍성해집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 부족합니다. 계속 어렵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감사할 조건이 있었습니까?
한끼 먹고 죽을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끼 먹을 양식을 주님께 드림으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며 살 때 주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찬양하라는 말씀이 300여 번,
감사하라는 말씀이 똑같이 300여 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감사하라, 찬양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반 년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를 하나님은 높여 주십니다.
그 인생을 형통케 하십니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