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30일, 국군수도병원에 인공호흡기를 하고 많은 약병·의료기기가 몸에 달린 젊은 병사가 들것에 실려 급하게 도착했다. 그 병사는 바로 전날 북한 고속정과 사투를 벌인 참수리-357정의 의무병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이었다. 그는 이미 과다 출혈로 쇼크 상태였고, 온몸에 100여 개의 총탄과 파편이 박혀 있었다.
박 병장을 본 한 군의관이 다급하게 “이 병사 왜 이렇게 다쳤어요?”라고 물었고, 옆 침상에 누워 있던 같은 부대 한 장교가 “우리 배의 의무병인데 부상자들 구한다고 뛰어다니다가 그랬습니다”라고 답했다.
의무병 박동혁 병장을 살리려고 군의관이 총동원됐다. 군의관들은 부상한 전우들을 살리기 위해 뛰어다니다 정작 자신이 가장 많이 다쳤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정형외과, 외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등 군의관 모두가 ‘반드시 살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 병장은 결국 84일 만에 숨을 거뒀다.
2002년 온 국민이 한일월드컵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에 열광하던 그 시간, 서해 한쪽에서 우리 젊은 용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북한 침공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제2연평해전이다. 그 한가운데에 한 명의 전우라도 더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끝내 산화한 의무병 박동혁 병장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비폭력주의자 의무병 실화
영화 ‘핵소 고지’는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75명의 부상자를 구한 의무병 이야기다. 1945년 5월 5일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다는 핵소 고지 전투에 참전해 총 한 자루 없이 전우의 목숨을 구한 실존 인물 데즈먼드 도스의 스토리다. 그는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비폭력·비무장주의를 평생 지지했고 일본군과의 백병전에서도 그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비폭력주의자인 미국 청년 도스(앤드루 가필드)는 총을 들지 않아도 되는 의무병으로 육군에 자진 입대한다. 총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총기 훈련마저 거부한 도스는 동료 병사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는 것은 물론 집단 구타까지 당한다. 결국, 군사재판까지 받게 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도스는 군 상부로부터 오키나와 전투에 총기 없이 의무병으로 참전하는 것을 허락받는다.
신념을 이유로 총기 거부하고 맨몸 참전
도스가 소속된 부대는 핵소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도 잠시, 일본군의 대규모 기습작전으로 미군은 다시 서둘러 후퇴한다. 아비규환. 전사자와 부상자가 속출한다. 하지만 의무병 도스는 방향을 바꿔 부상한 전우들이 있는 적진으로 향한다.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과 무기의 잔혹함을 얘기하면서도 한 병사의 꺾이지 않는 신념과 믿음을 강조한다. 목숨을 걸고 끝까지 전우들의 생명을 구하는 의무병의 이야기를 통해 신념과 사랑의 소중한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라이언 일병…’ 능가하는 극사실주의
영화의 절정은 일본군과 벌이는 전투 장면이다. 치열하고 참혹하고 극사실적인 영상이 전장의 실상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능가하는 디테일하고 극사실적인 전투 장면은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스파이더맨’의 앤드루 가필드 주연
감독은 ‘아포칼립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브레이브 하트’를 연출해 할리우드 유명 배우에서 아카데미와 세계 영화계가 인정하는 명감독으로 변신한 멜 깁슨. 가족을 지켜내는 전사의 무용담을 그린 ‘아포칼립토’ 이후 10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주목받고 있는 청춘스타 앤드루 가필드가 실존 인물 ‘데즈먼드 도스’ 역을 맡았다.
영화엔 명대사들이 많다. 주인공 도스가 부상한 전우를 구출하기 위해 다시 적진으로 뛰어가면서 하는 절박한 외침 “제발…한 명만 더 구하게 해주소서(Lord, I’ll get one more)”가 심금을 울린다. 또 귀대조치하려는 상관에게 도스가 하는 말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구하고 싶어요”, 도스의 훈련 담당 하사가 문제 병사인 도스에게 하는 “한 부대의 전투력은 가장 약한 병사 수준이 결정하는 것이다” 등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연평해전 박동혁 병장 생각나게 해
의무병은 총을 들지 않고 싸우는 병사다. 영화 ‘연평해전’은 의무병의 역할과 임무를 통해 숭고한 희생정신을 제대로 보여준 첫 한국영화가 아닌가 싶다. 영화 ‘연평해전’ 개봉 이후 늦게나마 의무병 박동혁 병장을 포함한 연평해전의 영웅들이 공무상 사망한 것이 아닌 전사자로 보상을 받고 ‘교전’을 ‘해전’으로 부르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우리 젊은 병사들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로 온전히 기억되고 대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