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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나라 이름에 담긴 뜻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고유 문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부득이 중국의 한자를 빌려 언어․문자 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말은 교착어이고 중국어는 굴절어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빚어지는 언어 구조상의 차이 및 음운상의 차이 때문에, 우리말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적기에는 너무나 맞지 않았다.
이 같은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하여 고안한 장치로 나온 것이 이두요, 향찰이요, 구결이다. 한자의 음과 뜻을 차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려는 시도로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향찰로 기록된 신라의 향가를 정확히 해독하기란 실로 어렵다. 이를테면, 찬기파랑가에 나오는 ‘雪是’를 ‘눈이’로 읽어야 할지 ‘서리’로 읽어야 할지 얼른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세종 때의 학자 정인지는 일찍이 ‘네모 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 같이 어긋난다’란 말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우리말로 된 이름 즉 나라 이름, 땅이름, 왕명이나 인명 등은 비록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더라도 고유어 그대로 적지 않을 수 없다. ‘길동이’를 ‘바위’라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음을 빌려서 길동이를 ‘吉童’이라 적고, 뜻을 빌려서 바위를 ‘岩’이라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의 대표적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적힌 옛 나라 이름과 왕 이름, 그리고 땅 이름에 담긴 우리말 뜻을 한번 새겨보기로 하자. 그런 이름들을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한자와 우리말 그리고 음차(音借 음 빌리기), 훈차(訓借 뜻 빌리기) 등에 대하여,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한자의 고음은 현재와는 다른 것이 있다.
麗는 지금은 ‘려’로 읽히지만 고음에서는 ‘리’다. 그러니 高麗(고려)의 원래 이름은 ‘고리’다. 또 壤은 지금은 음이 ‘양’이지만 고음은 ‘ᄂᆡ’다. 평양의 옛 이름은 ‘ᄇᆞᆯᄂᆡ’로 ‘넓은 벌의 땅’이란 뜻이다.
2. 낱말의 자음과 모음은 시공간적 차이에 따라 바뀐다.
신의 뜻인 검(儉)은 ‘감, 곰, ᄀᆡᆷ, 금, 즘’ 등으로 변함에 따라, 그것을 적는 한자도 다르게 된다.
3. 한 글자를 그와 통용되는 다른 글자로도 적었다.
耶는 음이 ‘야’지만 ‘라’를 적기도 하였다. 그래서 伽耶, 迦耶, 加耶는 모두 ‘가라(加羅)’를 표기한 것이다. 良도 현재의 음은 ‘량’이지만 ‘라’를 적는 데 썼다.
4. 글자 전체의 음뿐 아니라 음의 일부분만 빌릴 수도 있다.
次(차)는 ‘차’ 뿐만 아니라 ‘ㅊ, ㅈ’을 적는 데도 사용되었다. 餘(남을 여)는 ‘남’이나 ‘ㄹ’을 적는 데 함께 쓰였다. 樂浪(낙랑)이 ‘나라’를 나타내는 것도 이와 같다. 駕洛(가락)을 ‘가라(加羅)’와 같은 뜻으로 적은 것도 또한 같다.
5. 한 음을 적는 데 여러 가지의 글자가 사용되었다.
들 즉 ‘벌’을 나타내는 데, 伐(칠 벌), 原(벌 원), 火(블 화), 夫里(부리), 夫婁(부루), 羅(벌일 라), 列(벌일 렬) 등 그와 유사한 음이나 뜻을 가진 여러 글자로 표기되었다.
6. 한 낱말의 뜻을 적는 데, 그와 비슷한 음이나 뜻을 지닌 여러 글자가 쓰였다.
밝음을 뜻하는 ‘ᄇᆞᆰ’을 나타내는데, 白, 百, 明, 渤, 夫里 등이 쓰였다. 또 동쪽을 나타내는 ‘ᄉᆡ’를 나타내는데, 東, 新, 徐, 鐵(쇠 철), 金(쇠 금) 등이 쓰였고, 신라를 나타내는 ‘ᄉᆡ벌’을 표기하는데, 斯羅(사라), 徐羅(서라), 斯盧(사로), 尸羅(시라), 徐那(서나), 徐耶(서야), 鷄林(계림), 始林(시림) 등이 쓰인 것도 그러한 예다.
7. 땅, 지방, 마을을 뜻하는 옛말 ‘ᄂᆡ/나/ᄅᆡ/리’를 나타내는 데는, 內(내), 耐(내), 那(나), 壤(양), 禮(례), 麗(려), 羅(라) 등의 글자가 쓰였고, 땅을 뜻하는 고구려 말 ‘달’은 達(달) 자를 썼다. ‘달’이 땅의 뜻임은 현대어 양달, 응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면 이러한 예비지식을 갖추고 옛 나라 이름부터 새겨보기로 하자.
조선(朝鮮)
조선은 단군왕검이 평양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나라다. 양주동은 이를 ‘ᄇᆞᆯᄉᆡᆫ’ 곧 ‘밝게 샌’이라는 뜻이라 하였다. 그러나 朝를 ‘밝음’으로 풀이한 것은 거리가 먼 것 같다.
朝는 아침 즉 처음의 뜻인 ‘앗’이다. 단군이 도읍을 평양에서 옮겼던 아사달(阿斯達)도 ‘앗달’ 즉 ‘아침 땅’이란 의미다. 이 ‘앗’이 일본으로 건너가 아침을 뜻하는 ‘아사’가 되었다. ‘앗’은 처음을 뜻하는 말로 현대어 ‘아시 빨래’란 말에 아직 남아 있다.
처음은 작은 데서 시작하기 때문에 ‘앗’은 아우를 뜻하게도 되었다. 경상도 방언에는 아우를 뜻하는 ‘아시’가 지금도 쓰이고 있다. ‘아시 탄다’는 말이 있는데, 어머니가 동생을 배었기 때문에 젖이 일찍 떨어져, 먼저 난 아이가 영양 부족인 상태가 되어 몸이 여위었을 경우에 쓰는 말이다. ‘아우를 탄다’는 뜻이다. 중세어에서도 ‘앗’은 아우의 뜻으로 그대로 쓰였다. 앗>아ᇫ>아ᅀᆞ>아우로 변한 말이다.
조선의 鮮은 ‘ᄉᆡᆫ/샌’을 표기한 것이라 생각된다. 날이 샌다는 의미다. 새 날이 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앗ᄉᆡᆫ’ 곧 ‘첫샌’의 의미다. ‘처음 샌’, 즉 ‘새 아침’의 뜻이다. 새날이 열리는 희망에 찬 나라, 그것이 바로 조선이라는 것이다. 이성계가 세운 나라 조선도 역시 그러한 의미를 이어받아 국호로 삼았다.
신라(新羅)
신라를 나타낸 표기는 매우 다양하다. 이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斯羅(사라), 徐羅(서라), 尸羅(시라), 서벌(徐伐), 鷄林(계림), 始林(시림)
斯盧(사로), 徐那(서나), 徐耶(서라)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22대 지증왕 때 新羅(신라)로 확정되었다. 삼국사기 지증마립간 조에는 덕업일신(德業日新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다)의 신(新) 자와 망라사방(網羅四方 사방을 망라하다)의 라(羅) 자를 각각 따서 新羅로 지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는 김부식의 유교 중심주의적 사관에서 지어낸 견강부회로 보인다.
그러면 이들 표기는 무슨 뜻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위의 이름들은 모두 ‘ᄉᆡ벌’을 표기한 것이다.
斯(사), 徐(서), 尸(시) 자는 모두 ‘ᄉᆡ’를 표기한 것이다. 그리고 羅(벌일 라), 伐(칠 벌) 자는 들, 벌(판)을 뜻하는 ‘벌’을 적은 글자다. 그래서 이들은 합하여 新羅 곧 ‘ᄉᆡ벌’을 나타내었다. ᄉᆡ벌의 ‘ᄉᆡ’는 동쪽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샛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 흔적이다. ‘높새바람’, ‘새벽’이란 말의 ‘새’도 그러한 뜻이다. 그러니 ‘ᄉᆡ벌’은 동쪽 벌이란 뜻이다.
계림의 계는 ‘닭 계’ 자다. 닭은 곧 새(ᄉᆡ)다. 始林(시림)의 ‘시’도 ‘ᄉᆡ’를 나타낸 글자다. 그러니 이들 글자는 모두 ‘ᄉᆡ벌’의 ‘ᄉᆡ’를 표기한 글자다. 그리고 林(림)의 뜻 수풀이란 말은 원래 ‘숳벌’이었기로 여기서의 ‘벌’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니 계림, 시림도 다 ‘ᄉᆡ벌’을 표기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이 있다. 땅을 뜻하는 ‘벌, ᄂᆡ, ᄅᆡ, 재(城)’ 등은 ‘나라’와 동의어라는 사실이다. 땅(영토)이 곧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라 곧 ᄉᆡ벌은 ‘새 나라’라는 의미를 아울러 갖고 있다.
고구려(高句麗)/고려(高麗)
고구려의 국명을 중국 문헌에서는 高麗, 句麗, 句驪로 적었다. 삼국사기 본기에서는 고구려라 하고 지리지에는 구려라 적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본래 이름은 고려, 구려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고려와 구려를 합쳐 고구려라 적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이념을 나타낸 왕건이 세운 나라 이름이 고려라는 것을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신대왕조(新大王條)에 왕의 휘를 伯固(백고) 또는 伯句(백구)로 적고 있는데, 이는 ‘고’와 ‘구’가 서로 통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좌다. 그러므로 고려나 구려는 서로 전용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麗는 본래 고음이 ‘리’다.
그러면 구려 곧 구리는 무슨 의미일까? ‘리’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 나, 라’ 등과 같이 땅(국토, 나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 高/句는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해서는 그 밑에 깔려 있는 배경적 설명이 좀 필요하다.
고대 국어에서 신을 나타내는 어휘는 두 계열이 있다. 그것은 ‘검’과 ‘굿’이다. 검은 알타이어의 Kam에서 온 것이고, 굿은 스키타이족을 통하여 들어온 인도유럽어 Guth(Goth)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어의 God도 여기서 분화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무당이 벌이는 의례를 ‘굿’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 연원한다.
이 검과 굿은 시공간의 흐름과 확대에 의하여 그와 비슷한 소리의 말로 갈라지게 된바. 그것을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알타이어 Kam → 검 … 감, ᄀᆡᆷ, 곰, 금, 거미, 즘, 일본어 가미
인도유럽어 Guth → 굿 … 구, 가, 갓, 가시, 구시
구려의 ‘구’는 Guth에서 온 신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고구려’ 곧 ‘고리/구리’는 ‘신의 나라’란 뜻이다. 일본이 백제를 구다라(くだら)라고 하는데 이는 ‘구달(神達)’ 즉 신의 땅(나라)이란 뜻이다. 일본이 백제를 ‘신의 나라’라고 지칭한 데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다. 백제가 자기들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는 백제를 본국(本國)이라는 뜻으로 쓴 대목도 있고, 백제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이란 내용도 적혀 있다. 660년 백제가 패망하자 그 후예들이 일본에 망명했는데, 이를 일본서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백제가 곤궁하여 우리에게 돌아왔네. 본국[本邦]이 망하여 없어지게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어디에 의지하고 어디에 호소한단 말인가.”
그리고 3년 후, 백제 부흥 운동까지 실패로 끝나고 주류성이 함락되자,
“주류성이 함락되고 말았구나, 어찌할꼬 어찌할꼬,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어졌으니, 조상의 무덤을 모신 곳 이제 어찌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
라고 슬퍼하는 기사가 나온다. 백제는 자신들 조상의 무덤을 모신 곳이고 본국으로 섬기는 나라였다. 그래서 그들은 백제를 극존칭하여 ‘구다라’ 즉 ‘신의 나라’라고 부른 것이다.
백제(百濟)
百은 밝다의 어근 ‘ᄇᆞᆰ’을 표기한 것이고, 濟는 재[城]의 뜻인 ‘잣’을 표기한 것이다. 그러니 백제는 ‘잣’을 적은 것이다. ‘’은 밝다의 어근으로 광명을 뜻한다. 고대부터 우리 민족은 광명()을 지향하였다. 태백산은 한산이요, 박달은 밝은 땅이며, 혁거세는 뉘(밝은 누리), 동명왕은 새임금, 원효는 새(새벽)이다.
그리고 ‘잣’은 ‘재’ 곧 성(城)이다. 성은 도성으로 나라를 의미한다. 지금도 ‘성내에 갔다 왔다’나 ‘성내 사람’이라 하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때의 ‘성’은 도시(도성 도읍)를 뜻한다. 그래서 백제는 밝은 성 곧 ‘밝은 나라’라는 뜻이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백제의 딴 이름 백잔(百殘)은 ‘잣 나라’를 발음할 때 자음동화를 일으켜 ‘잣’이 ‘잔’으로 소리 나므로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또 백제의 초기 국호인 십제(十濟)는 ‘열[開]잣’을 기록한 것인바, ‘열린 나라’라는 의미다.
가야(加耶)
가야는 伽耶, 伽倻, 加羅, 駕洛, 伽落, 加良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가라’를 표기한 것이다. 또 구야(狗邪)로 표기한 것도 있는데 이 또한 같다. 邪 자는 耶 자와 같이 쓰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가’나 ‘구’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의 뜻이다. 그리고 뒷글자 ‘라(耶)’는 ‘나(那), 라(羅), ᄂᆡ(壤)’ 계열의 땅(국토)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야는 ‘신의 땅(나라)’이란 뜻이다.
부여(夫餘 扶餘)
부여의 夫/扶는 음 그대로 ‘부’를 나타내고, 餘는 ‘ㄹ’을 나타낸다. 여의 훈인 ‘남을’의 끝소리 ‘ㄹ’을 취한 것이다. 그러니 부여는 ‘불’을 표기한 것이다. 붉다, 밝다 등의 말은 모두 ‘불’에서 나온 것이다. 불이 곧 밝음이고 붉은 것이 불이다. 그러므로 부여 역시 ‘불 나라’요 ‘ᄇᆞᆰ은 나라’다.
부여를 세운 사람은 해부루(解夫婁)다. 解는 해(태양)를 나타낸 글자이고, 夫婁는 ‘부’와 ‘루’ 의 ‘ㄹ’을 합친 ‘불’이다. 그러니 해부루는 ‘해불’ 곧 ‘해ᄇᆞᆰ’이다. 밝은 해라는 의미다. 이처럼 해부루는 부여와 관계있는 이름이다.
진한(辰韓) 마한(馬韓) 변한(弁韓)
삼한의 이름에 담긴 뜻을 알려면 먼저 ‘한(韓)’에 대한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 ‘한’은 Khan에서 유래한 말이다. Khan은 원래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터키 지방의 원수(元帥)나 고관을 일컫는 칭호인데, 이것이 몽고, 달단(韃靼)을 거쳐 우리에게 들어왔다. 우리가 잘 아는 징기스칸의 ‘칸’도 바로 이것이다.
이 Khan을 한자로는 干[간 Kan], 汗[Han], 韓(한) 등으로 적었다. 이렇게 ‘간/한’으로 적은 것은 [Kh]의 음가가 ㄱ과 ㅎ의 중간음으로 ㅋ이 섞인 소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발음기호로는 [X]로 나타내는 소리다. 이것을 훈민정음에서는 [ㆅ]으로 썼다. 사실 우리말의 크다[大]나 많다[多]의 뜻인 ‘하다’도 여기서 갈라져 나온 말이다.
ㆅ … ① 하다[h] (많다의 뜻)
② 크다[k]
그러므로 干[간 Kan], 汗[Han], 韓(한)은 다 크다, 높다, 우두머리(왕)의 뜻을 머금고 있는 말이다. 삼한(三韓)의 ‘한(韓)’도 바로 이런 뜻이다.
馬韓(마한)의 ‘마’는 남쪽이라는 뜻이다. 마파람은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다. 그러니 마한은 ‘남쪽의 한’이다. 辰韓(진한)의 ‘진’은 음이 ‘신, 진’이지만 여기서는 ‘신’과 통하는 ‘ᄉᆡᆫ’ 곧 동쪽을 나타낸다. 동쪽의 옛말은 ‘ᄉᆡ’다. 날이 ‘새다’나 ‘새벽’, 동풍을 ‘샛바람’이라 하는 말들의 ‘새’는 동쪽을 뜻하는 ‘ᄉᆡ’에 뿌리를 둔 말임은 위에서 말했다. 그러니 진한은 곧 ‘동쪽의 한’이다.
弁韓(변한)은 ‘가ᄅᆞ한’ 곧 ‘갈한’이다. 弁(변)은 지금의 뜻은 고깔이지만 옛말은 ‘갈, 곳갈’인바, 이때의 ‘갈’을 취한 것이다. ‘가ᄅᆞ’는 ‘가ᄅᆞ다’ 곧 ‘가르다[分]’의 고어다. 변한은 진한과 마한을 ‘가르는’ 지역에 위치하므로 이런 뜻을 품은 것이다.
임나(任那)
임나라는 말은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에 보이는 임나가라(任那加羅)가 가장 최초로 보이는 기록이다. 삼국사기 강수전(强首傳)에는 “신은 본래 임나가라 사람입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924년(경명왕 8)에 신라 경명왕의 명으로 세워진 「진경대사탑비(眞鏡大師塔碑)」에 ‘임나’라는 말이 쓰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한 하나의 가야(금관가야)를 임나라고 부른 데 대해서, 일본서기에서는 여러 가야를 총칭해 임나라고 하였다. 임나를 일본서기에서는 彌麻奈(mima-na)라 적고 있다. 이는 고대의 우리말에 있어 n과 m음이 서로 넘나드는 음운법칙에 따른 것이다.
‘님나(임나)’의 ‘님’은 주(主), 왕(王)의 뜻이고, 나(那)는 위에서 누차 말한 바와 같이 ‘ᄂᆡ, 나, 라’의 한자표기로서 평야, 나라 등의 뜻을 지닌다. ‘님’은 원래 ‘앞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사람의 이마(니마)나 배의 앞머리를 가리키는 ‘이물’, 앞쪽을 가리키는 ‘임배(곰배)’라는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임나는 ‘님의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여러 가야의 맹주국인 대가야를 ‘님나라’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본서기에 있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말로, 일본인들에 의해 임나에 일본의 통치기관이 있었던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