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전공휘이채지비(平康全公諱爾采之碑)
이 비(碑)는 충주(忠州) 종당전씨(宗堂全氏) 시조(始祖)로 이 곳 종당(宗堂)에 종당전씨(宗堂全氏)의 자손(子孫)을 뿌리내리게 하신 휘(諱) 이채공(爾采公)의 비(碑)이다.
공(公)은 본관(本貫)이 평강(平康)으로 그 옛날 온조왕(溫祚王)을 도와 백제(百濟)를 건국(建國)한 환성군(歡城君) 휘(諱) 섭(聶)1) 삼십칠세손(三十七世孫)이시고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時代)의 정선군(旌善君) 휘(諱) 선(愃) 삼십세손(三十世孫)이시며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과 더불어 고려(高麗)를 건국(建國)한 태사(太史) 충렬공(忠烈公) 휘(諱) 이갑(以甲)의 이십이세손(二十二世孫)이시다. 또한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이십년(二十年)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시고 조선(朝鮮) 태종조(太宗朝)에 홍문관(弘文館)2) 대제학(大提學)을 지내셨던 평강전씨(平康全氏)의 관조(貫祖)이신 평강백(平康伯) 휘(諱) 빈(賓)의 구세손(九世孫)이다. 또한 조선조(朝鮮朝) 선조(宣祖) 삼십팔년(三十八年) 문과(文科) 갑과(甲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 하시고 형조참판(刑曹參判)(추증(追贈) 이조판서(李曹判書))를 지내신 학송공(鶴松公) 휘(諱) 유형(有亨)3)의 증손(曾孫) 이시며 공(公)의 조고(祖考)4) 께서는 사산감역공(四山監役公)으로 휘(諱) 현(䥪)이시며 고위(考位)5)께서는 통덕랑(通德郞)으로서 휘(諱)는 기윤(起允)이신바 육형제중(六兄弟中)에서도 막내로 재종숙(再從叔)이신 휘(諱) 흠(欽)에게로 출계(出系)6)하시어 사형제(四兄弟)를 두시었는데 맏분은 휘(諱) 이병(爾秉)이시고 둘째분은 휘(諱) 이휘(爾彙)이시며 세째분이 휘(諱) 이채공(爾采公) 이시고 네째분이 휘(諱) 이업(爾業)이신데 무후(無後)7)하셨다.
이채공(爾采公) 선대(先代)의 세거지(世居地)는 당초(當初) 관향(貫鄕)이며 평강전씨(平康全氏)의 관조(貫祖)이신 휘(諱) 빈(賓)의 식읍지(食邑地)인 강원도(江原道) 평강(平康)이었으나 초계군수(草溪郡守) 휘(諱) 후백(厚伯)과 대호군(大護君) 절충장군(折衝將軍) 휘(諱) 수산(壽山) 시대(時代)에는 경기도(京畿道) 장단(長端)에서 사셨고 형조정랑(刑曹正郞) 휘(諱) 성로(誠老)와 학송공(鶴松公) 휘(諱) 유형(有亨) 시대(時代)에는 서울에 계시었다.
학송공(鶴松公) 서거(逝去)8) 이후(以後)는 괴산(槐山).수원(水原). 용인(龍仁) 등지(等地)로 전이(轉移)9)하시다가 숙종조(肅宗朝) 삼십년(三十年)에 이채공(爾采公)께서 동생(同生)이신 이업공(爾業公)과 더불어 이 곳 충주(忠州) 종당(宗堂)에 정착(定着)한 후(後) 누대(累代)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이채공(爾采公)의 자(字)는 화경(華卿)이시고 숙종(肅宗) 구년(九年)에 탄생(誕生)하셔서 육십팔수(六十八壽)로 기세(棄世)10)하시고 배위(配位)11)께서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내외(內外)분의 산소(山所)는 이곳 계명산(鷄鳴山) 동(東)쪽 기슭 묏골 유좌묘향원(酉座卯向原)에 합폄(合窆)12)하시었다. 공(公)께서는 슬하(膝下)에 독자(獨子) 휘(諱) 명길(命吉)을 두셨고 명길공(命吉公) 역시(亦是) 독자(獨子)를 두셨으니 휘(諱)는 후천(厚天)이시다. 후천공(厚天公)께서는 혈육(血肉)으로 삼형제(三兄弟)를 두셨는데 맏분은 휘(諱) 시선(時善)이시고 둘째분이 휘(諱) 시삼(時三)이시며 세째분이 휘(諱) 시성(時聖)이시다. 이로써 충주(忠州) 종당전씨(宗堂全氏)는 삼파(三派)(종파(宗派) .중파(中派) .계파(季派))로 오늘에 이른다.
이채공(爾采公)께서는 재세(在世)하시는 동안 오직 선비로서의 곧은 자세(姿勢)를 간직 추호(秋毫)도 흐트러짐이 없어 세속(世俗)의 미진(微塵)을 떨쳐버리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며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삶의 신조(信條)로 일생(一生)을 마감하셨다.
우리 후손(後孫)들은 그 어른의 숭고(崇高)한 이념(理念)과 유훈(遺訓)을 가슴에 되새기고 자기성찰(自己省察)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작금(昨今)13)의 세태(世態)는 물질만능(物質萬能)과 개인이기주의(個人利己主義)의 만연(蔓延)으로 전통(傳統)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이 어찌 개탄(慨嘆)치 않으리오. 학송(鶴松) 할아버지께서는 어명(御命)으로 벼슬을 내려도 삼년상중(三年喪中)이라고 사양(辭讓)의 상소문(上疏文)까지 올렸다니 지금(只今)의 우리로서는 상상(想像)을 초월(超越)한다. 모름지기 자손(子孫)에 있어서 조상(祖上)은 새암 곧 원천(源泉)이요 나무의 뿌리라는 천륜(天倫)에서 오는 깊은 인식(認識)이 있어야 한다. 빛나는 조상(祖上)님을 모신 문중(門中)에서는 기필(期必) 영특(英特)한 예손(裔孫)14)의 배출(輩出)이 많아 영세창성(永世昌盛)함은 너무도 자명(自明)한 귀결(歸結)이다.
여기 종당(宗堂)마을 오손도손 상봉하솔(上奉下率)15)하며 꿈을 가꿔가는 평화촌(平化村)에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대변혁(大變革)이 올 줄이야! 단기(檀紀) 4318년(年) 충주다목적댐(忠州多目的)댐의 축조(築造)로 비로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된다는 고사(故事)가 허사(虛辭) 아님을 직감(直感)하였다. 일조(一朝)에 정든 터전이 수몰(水沒) 대대(代代) 선영(先瑩) 묘역(墓域)도 이리저리 옮기는 등 급기야(及期也)는 태반문족(殆半文族)16)들이 구명도생(求命圖生)17)코자 산지사방(散地四方)18)하니 그야말로 인위적(人爲的)인 이향민(離鄕民)이라 오매불망(寤寐不忘) 따스한 조상(祖上)님네 숨결을 잊을 길없이 오늘도 이렇듯 많은 후손(後孫)들이 달려오게 되었다.
이채공(爾采公)의 묘비(墓碑)는 진작 건수(建竪)19)되어 마땅하였으나 풍수학상(風水學上)의 이유(理由)도 있고하여 묘역(墓域)으로부터 백삼십여보(百三十餘步) 상거(相距)20)한 이곳에 우리들의 성념(誠念)21)을 모두어 각자입석(刻字立石)22)하니 늦게나마 평소(平素)의 면구(面灸)23)함을 다소(多小) 덜게 되었다. 이제 우리들 비록 고향(故鄕)을 멀리 떠나 있더라도 종당전문(宗堂全門)의 전통(傳統)과 긍지(矜志)를 지니고 경조돈목(敬祖敦穆)24)하는 다짐에서 위광유훈(偉光遺訓)25)을 되새겨 공(公)께 비명(碑銘)26)을 바치는 바이다.
천부(天賦)의 뛰어난 품성(稟性)으로 혁혁(赫赫)27)한 세벌(世閥)28)에 태어나라
월악(月岳)의 정기(精氣)어린 계명산(鷄鳴山) 기슭 중원(中原)의 안빈락도(安貧樂道) 평화(平化)를 일구셨네
강상(綱常)의 윤리(倫理) 몸소 실천(實踐)하시고 종당(宗堂)의 풍교(風敎)29) 바로 세우셨도다.
그 음덕(陰德)으로 자손(子孫) 번영(繁榮)하니 무궁(無窮)한 향화(香火)30) 더욱더 빛나리
단기 4326년(서기 1993년 십일월 십사일)
(檀紀 4326年 (西紀 1993年 十一月 十四日))
제십일대손 영국 근지(第十一代孫 瑩國 謹識)31)
죽산후인 죽사 박충식 근서(竹山後人 竹史 朴忠植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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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비문엔 섭(聶)으로 되어 있는데 보통 전섭(全攝)으로 쓴다.
2)비문엔 보문각(寶文閣)으로 써 있는데 고려시대 관청이다. 조선시대에는 홍문관(弘文館)이므로 고쳤다.
3)학송(鶴松) 전유형(全有亨):문집으로 학송집(鶴松集)이 있고 괴산 출신이다.
4)조고(祖考):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5)고위(考位):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6)출계(出系): 양자로 갔다는 뜻이다.
7)무후(無後): 자식이 없다는 뜻이다.
8)서거(逝去):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9)전이(轉移): 이곳저곳 옮겨 살았다는 뜻이다.
10)기세(棄世): 세상을 버렸다는 뜻이다.
11)배위(配位): 배우자란 의미로 여기서는 전주이씨 할머니를 말한다.
12)합폄(合窆):합장(合葬)하였다는 뜻이다.
13)작금(昨今):원래 어제오늘의 뜻이나 요즈음을 의미한다.
14)예손(裔孫):후손(後孫)의 뜻이다.
15)상봉하솔(上奉下率):위로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 처자식을 거느린다는 뜻이다.
16)태반문족(殆半文族):거의 대부분의 문중 사람들이란 뜻이다.
17)구명도생(求命圖生):목숨을 구하고 삶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비참한 처지를 말한다.
18)산지사방(散地四方): 뿔뿔히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뜻이다.
19)건수(建竪): 세우다의 뜻이다. 같은 말이 건립(建立)이다.
20)상거(相距):서로 사이가 떨어져의 뜻이다.
21)성념(誠念):정성스런 마음이란 뜻이다. 정성스런 염원을 담아.
22)각자입석(刻字立石): 글자를 새겨 비석을 세운다는 뜻이다.
23)면구(面灸): 낯이 뜨겁다는 뜻이다. 낯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는 의미이다.
24)경조돈목(敬祖敦穆):조상을 공경하고 후손들이 서로 돈독하고 화목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25)위광유훈(偉光遺訓): 위대하고 영광스런 선조들의 남긴 가르침이란 뜻이다.
26)비명(碑銘):비문(碑文) 즉 빗글의 뜻이다.
27)혁혁(赫赫):밝고밝은의 뜻이다.
28)세벌(世閥):인간세상의 신분과 지위를 말한다.
29)풍교(風敎):원래는 유교(儒敎)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가르침으로 새기면 된다.
30)향화(香火):항불이란 뜻으로 제사를 지낸다의 의미이다. 무궁한 향화(香火)란 무궁토록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31)근지(謹識): 삼가 기록하다는 뜻이다.
<평강전공휘이채지비가 있는 묏골입구>
첫댓글 하종마을에는 충주지씨 관향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