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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금같이 나오리라† 원문보기 글쓴이: 켈로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
금년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한 최대의 충격뉴스는 아마도 스물아홉 살 난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자기의 후견인이고 북한의 실세이며 제2인자라고 여겨지던 자기 자신의 고모부를 전격적으로 처형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최근 무슨 관현악단이라 하는 한 연예단체의 단원 아홉 명을 한꺼번에 총살시켜 버렸는가 하면 자기 고모부의 최측근 고위인사들도 전격적으로 공개처형하더니 급기야는 그 고모부 자신을 처단해버렸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피바람이 불어 닥쳤는지 우리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처형과정에서 인권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이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처사에 전 세계가 경악한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나 하며 모두가 충격을 받았고 극도의 공포상태에 빠진 북한주민들은 자기들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모두가 미친 듯이 박수치며 그 어린 수령을 향해 낯 뜨거운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는 사람들의 집단인지 의문이 갈 정도입니다. 이들이 왜 어쩌다 이렇게 된 것입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일도 다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롬1:18),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며 섬기는 자들"(롬1:25)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8-31) 이 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런 자들을 가리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으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라고 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천인공노할 만행이라 할 수 있을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자가 그 대신 수많은 어린아이를 학살한 일입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셨을 때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기 위해 왔노라 하며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묻는 바람에 온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헤롯 왕은 두말 할 것 없었습니다. 헤롯 왕이 누구입니까?
헤롯은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선조에 관해서는 에돔 사람이었다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헤롯 가문은 일찍이 갈릴리와 유대 등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헤롯, 즉 헤롯 1세 또는 대 헤롯이라 불리는 자는 밖으로는 로마의 실권자들이 바뀔 때마다 아부와 충성다짐과 탁월한 설득력으로, 안으로는 무자비한 숙청과 효과적인 반란진압으로 로마의 신임을 얻어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그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확대하며 철권통치를 통해 그의 지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병들어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가족 안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나 그의 통치권이 흔들릴 마당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 묻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2:2) 했던 것입니다. 굴종과 흥정과 계략 등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해 다져놓은 그의 왕권에 도전하는 새 왕이 태어났다는 말은 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평생의 대업이 일시에 위협받고 수십 년 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헤롯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극도의 불안과 위협감에 사로잡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로마를 상대로 거래하며 자신의 왕국을 세워온 관록의 헤롯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습니다. 절반은 유대인이었던 그는 유대교에 관해서 더러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문제해결의 첫 조치가 메시야가 어디서 나올 것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마2:4).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것이 유대 베들레헴일 것이라고 헤롯에게 알려주었습니다(마2:5-6). 그러나 헤롯은 베들레헴의 어디일지를 더 정확하게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는(마2:7) 그들에게 말하기를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2:8) 하며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습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해하려는 속임수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갓 태어난 아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어처구니없고 불가능한 일을 획책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 그를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참살당하도록 그냥 계실 리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셨고, 그들은 헤롯에게 들리지 않고 다른 길로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마2:1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사자를 통하여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꿈에 말씀하시기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셨습니다(본문 13절). 요셉은 즉시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나갔습니다(본문 14절). 이렇게 해서 헤롯의 계략은 허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능란한 처세술과 계략으로 수십 년간 난공불락의 왕국을 구축해온 헤롯이 겪은 가장 큰 실패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실패는 그로 하여금 천인공노할 흉악한 범죄를 자행하기에 이르게 했습니다. 즉 동방박사들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길로 이미 돌아가 버린 사실을 알게 된 헤롯은 자기가 그들에게 속은 데 대해 격노해서 수하의 군사들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 중 두 살부터 그 아래인 아이들을 다 죽이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희생을 양산해내고서도 헤롯은 화가 풀리지 않았을 것이고 유대의 왕이 나셨다는 첫 소식의 충격과 함께 그의 왕권에 대한 미래의 도전자를 확실하게 찾아내 제거하지 못한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두 해쯤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이로서 하나님께서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하신 메시야였습니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오심을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탄생은 그 기다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고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서 모든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뜻을 따를 줄도 몰랐으며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림이 없이 오직 세상의 탐욕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헤롯의 폭거는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어디까지인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헤롯 자신의 파멸은 역사의 주인이시고 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원대하고 영원한 구원사역에 반기를 드는 모든 악한 세력을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징하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헤롯의 잔인한 살인의 광기는 우리로 하여금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형제였던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가인과 아벨이 컸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창4:1-5).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 누구의 제물을 받으시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가인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제물을 드리기는 했지만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고(히11:4) 그의 행위는 악했습니다(요일3:12). 그가 선을 행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지적과 그를 노리고 있는 죄를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일 뜻이 그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가인은 아우 아벨에게 "우리가 들로 나가자." 말하고는 함께 들에 나가 있을 때 아우를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창4:8). 인류 최초의 살인자, 그것도 근친살인을 한 가인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물음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며 하나님께 거짓말과 볼멘 대답을 했습니다(창4:9). 형이라면 당연히 아우에 대하여 가져야 할 사랑의 관심과 책임감을 부인하며 하나님께 반항한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두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그러는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0-12) 그때 가인은 두려움에 가득 차서 하나님께 말하기를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3-14) 한 것입니다. 자기가 사람을 죽인 대로 자기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인과 아벨 형제 사이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그들의 부모에게서 일어난 일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질 때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깨질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 사건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한 사탄의 말보다 귀중하게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나무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깨뜨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그들의 아들들 가운데 형이 아우를 쳐 죽이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관계의 파탄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과 북한 전역에서 철저하게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광분하며 교회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김일성 동상들을 세운 그 땅에서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이 차지한 땅에서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일이, 아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조차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는 얼마나 오래 보아왔습니까? 그러나 그 세상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 종말이 가까웠음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서 절대 수령이 된 스물아홉 살의 젊은이가 자기 아버지 2주기 추도식장에서 보여준 얼굴표정을 신문과 TV방송을 통해서 본 사람들은 다 의아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그가 전날 너무 많이 마신 술이 덜 깬 모양이라고 본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가 꿈에 자기가 죽인 고모부가 나타난 것을 봐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전날만 해도 환하게 웃으며 나다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뭔가 못마땅해 하고 불안하며 초조한 모습이었습니다. 아우를 죽인 후 자기도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두려워 떨었던 가인과 수많은 어린 아기들을 일시에 죽이고도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헤롯의 얼굴표정이 꼭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불안과 고통과 절망과 공포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임마누엘이십니다. 곧 그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마1:23).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면 곧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참되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살육의 공포와 포악의 광기가 무겁게 뒤덮인 북한 땅에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북한 동포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북한해방과 남북통일의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