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말)의 순화와 유희(遊戲)
말도 하나의 습관이다. 어릴 때 말을 배울 때 어떻게 배웠는가가 중요하다. 상대가 듣기 좋은 고운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예부터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뱉은 말을 도로 담을 수 없으니 함부로 내뱉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인사말을 바꾸면 어떨까 싶다. ‘안녕하십니까’를 ‘사랑합니다’로 주고받으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전자의 인사말은 우리가 오륙십 년대 지극히 가난할 때 쓰던 말이다. 그때는 끼니 거르기가 예사였으며 굶어 죽는 경우도 생겼으니 밤새 괜찮으냐의 안부 인사말이다.
언젠가 한 학교를 방문했다. 여학생이 다가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사랑합니다’하고 지나갔다. 나는 당황하여 가던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 학생을 쳐다보았는데 그 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만큼 가버렸다. 그제야 ‘사랑해’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날 하루 기분이 참 좋았으며, 학생들이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시골에서 대가족 제도에서 자랐다. 어른들의 오가는 말에 ‘사랑’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성인이 되었다. 결혼하고 아들딸을 기르면서도 ‘사랑’이라는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학교에 입교하여 공부했는데, 수업이 시작될 때에 앞뒤와 옆 사람에게 ‘사랑합니다’가 인사였다. 얼마나 쑥스럽던지 말이 입안에 맴돌고 잘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습관이 되어 ‘사랑’의 표현이 자연스러웠다.
언어의 유희(놀이)도 마찬가지이다. 끝말 이어가기나 말장난 놀이를 할 때에 상스러운 단어보다 부드럽고 고운 단어를 사용하면 주위 분위기가 밝아진다. 음악을 들을 때도 부르는 사람의 음악성도 있지만, 가사 내용이 좋으면 마음에 와닿으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나기도 하니 말이다.
‘언어가 사물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실험을 했다. 주둥이가 넓은 두 병의 실험군에 같은 밥을 넣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한쪽에는 듣기 좋은 고운 말을 사용하고 다른 병의 밥에는 듣기 싫은 말을 되풀이하게 했다. 며칠 뒤에 어떻게 변했는지 군집을 모야 관찰했다. 고운 말을 한 병의 밥은 모두가 보기 좋은 하얀 곰팡이가 피었지만. 싫은 말을 한 밥은 검은색으로 부패하여 있었다.
사람이 아닌 물체나 생명체에도 어떤 말이나 소리로 어떻게 자극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에게는 오죽하랴.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에게 치명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옛 성현들은 ‘삼사일언(三思一言)’하라며, 여러 번 숙고한 뒤에 말을 하라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말 한마디라도 가려서 하면 이웃이 따뜻해 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