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속 인삼' 낙지와 한우·전복 한 입에…탕!탕!탕! 맛 정점 쳤다
- 칼로 쳐 토막낸 '낙지탕탕이'
- 목포 등 남도 사람들 소울푸드
- 살아 꿈틀대는 쫄깃한 낙지에
- 부드러운 함평·장흥 한우육회
- 오도독 완도전복 한꺼번에 내
- 질 좋은 해남 김과 싸먹거나
- 남은 탕탕이 밥에 비벼 먹으면
- 씹을수록 고소한 가을 보양식
탕탕이. 음식이름이다. 나무도마에 칼을 내려치면 탕, 탕, 탕~ 경쾌한 나무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가 음식이름이 되었다. 낙지탕탕이. 말 그대로 낙지를 탕탕 내려쳐서 토막 낸 것을 ‘낙지탕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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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맛이 더욱 깊어지는 목포 세발낙지(가운데)와 세발낙지로 만든 낙지탕탕이(왼쪽), 전복소고기낙지탕탕이. 최원준·목포시 제공 |
원래 낙지는 산 채 먹는 것, 그것도 통째 먹는 것을 최고로 친다. 때문에 다리가 가늘고 크기가 작은 ‘세(細)발낙지’를 식감도 연해 선호한다. 그러나 한창 클 때인 어린 낙지이기에 여름 한 철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낙지는 가을로 접어들수록 맛이 깊어진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란 식담(食談)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맛이 든 대낙(1㎏에 두세 마리 정도로 큰 낙지)이나 중낙(1㎏에 대여섯 마리 정도의 중간 낙지)은 크기도 크고 식감도 질긴 느낌이기에 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제철 산낙지를 먹기 위해서는 크고 긴 다리를 먹기 쉽게 토막 내서 먹게 되는데, 이때 낙지를 도마에 놓고 칼로 탕탕 쳐서 먹는 방식의 음식조리법이 바로 ‘낙지탕탕이’다.
■ 인삼에 버금간다는 보양식, 낙지
제철음식이란 그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영양성분도 최고조에 달한다는 말인데, ‘동의보감’에는 ‘낙지 한 마리가 인삼 한 근에 버금간다’고 기록하고 있고, ‘자산어보’에는 ‘농사일을 하다 주저앉은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만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고 적혀 있다. 낙지를 비롯한 두족류들은 타우린이라는 인체 활성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그러하다. 그만큼 예부터 인정되던 스태미너 음식이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목포사람들은 공공연하게 낙지를 ‘갯벌 속의 인삼’이라고 부른다.
낙지는 갯벌이 잘 형성된 곳에서 널리 서식한다. 서해와 남해안 갯벌에서 잡히며 주로 작은 갑각류나 어류 등을 먹이로 한다. 대표적인 산지는 무안, 신안, 해남, 영암 등 남도지역과 충청권의 태안반도 등이다. 남도산이 거의 80% 이상 이다.
낙지를 잡는 방법으로 통발, 주낙, 맨손잡이 등이 있다. 수심이 있는 지역은 통발이나 주낙으로 잡고 갯벌이 넓게 드러나는 지역은 삽으로 낙지굴을 파 직접 잡는다. 통발이나 주낙어업은 낙지가 좋아하는 칠게나 뻘게 등을 통발에 넣거나 주낙에 매달아 잡는다. 서남해나 남서해의 신안, 무안, 영산강 주변 등지는 넓은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어 주로 맨손잡이다. 맨손 어업은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서 가래(삽)나 호미 혹은 맨손으로 낙지를 잡는 어업이다.
광주전남연구원 김준 박사는 “무안과 신안 지역 ‘갯벌 낙지 맨손 어업’은 2018년 국가 중요 어업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며 “이 맨손잡이 어업은 갯벌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땀이 만든 어업 유산이며 궁극에는 갯벌을 오래도록 지켜나가는 어법의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 통째 먹기 딱 좋은 목포 세발낙지
작년 여름 태안에서 맨손잡이로 잡은 ‘밀국낙지’를 먹었다. 밀이 팰 때쯤 잡는 몸통 2㎝ 내외의 새끼낙지를 한 대접 담아서 내오는데, 몸통을 나무젓가락에 꽂고 가느다란 발을 둘둘 말아 통째로 입 안에 넣고 씹는 것이다. 간물이 짭조름해 아무 것도 가미하지 않고 씹어 먹었는데도, 씹을수록 고소함과 함께 단물이 계속 배어 나왔다.
목포, 해남 등지에서는 ‘밀국낙지’ 크기를 ‘꽃낙지’라 불렀다. 현재 목포에서는 다리가 가늘다고 ‘세발낙지’로 통용해 부르고 있다. 이놈들은 그 크기가 15㎝ 아래의 새끼 낙지로 비록 몸집은 작으나 힘이 좋고 활동성이 강하다. 때문에 한 마리 통째 먹기에 적합하다.
목포 세발낙지는 30년도 훨씬 전에 목포 연안부두의 허름한 식당에서 처음 접했다. 세발낙지를 주문하니 내장을 제거하고 몸통만 뒤집어 깐 낙지를 통째 내주는 것이다. 황망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온몸으로 꿈틀거리던 낙지가 종국에는 접시에서 탈출하여 식탁을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주인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처음 먹었던 세발낙지는 이제껏 먹었던 낙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맹렬한 맛이었다. 입 안에서조차 낙지는 끊임없이 꿈틀거렸고 채 들어가지 않은 다리는 입술, 뺨을 가리지 않고 들러붙어 애를 먹였다.
이렇듯 낙지 먹방의 고수들은 맨손으로 산낙지를 훑어서 통째로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이렇게 먹기가 저어되는 사람들은 ‘기절낙지’를 먹는데, 낙지를 민물에 빨듯이 다리를 훑으면 기절한 것처럼 꿈틀거림이 잦아든다. 이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참기름소금장이나 초고추장 등에 찍어먹는다. 이도 힘들면 바로 ‘낙지탕탕이’다. 먹기 좋게 칼로 토막을 내어 먹는 것이다. 탕탕이 또한 별다른 양념이 필요가 없다. 낙지를 도마에서 토막을 낸 후 접시에 담고 그 위에 소금, 참기름, 마늘, 매운 고추 정도만 올려서 먹는다.
■ 목포 사람들 ‘낙지탕탕이’ 사랑
이처럼 목포사람들은 철 따라 세발낙지 탕탕이나 제철낙지 탕탕이를 즐겨먹는다. 일 때문에 목포엘 들르면 그곳 지인들이 늘 대접하는 음식 또한 낙지탕탕이다. 그들에게는 보양식이면서 접대음식이고, 그들만의 소울푸드인 것이다. 목포사람들의 ‘탕탕이 탐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탕탕이를 치면 낙지의 꿈틀대면서 저항하는 맹렬한 맛이 떨어지기에 조금 허전하다. 이를 보완할 그 무엇이 필요하다. 이즈음에 목포사람들은 낙지와 함께 함평, 장흥의 한우 소고기를 함께 올려 탕탕이를 친다. 식감 대신 농후한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여기에 급기야 완도전복까지 썰어 함께 올림으로써 탕탕이 음식에 마침표를 찍는다.
'갯벌 속 인삼'이라는 낙지에, 양질의 한우 소고기 육회, 보양 식재료의 대표 격인 전복까지, 한꺼번에 이 모든 것을 먹으니 가히 보양음식의 백미요, 풍성한 미식요리의 최정점이라 할 만하다. 목포에서 꽤 이름난 탕탕이집에 자리를 잡는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전복소고기낙지탕탕이’를 주문한다. 탕탕이와 함께 묵은지, 감태지, 조기구이 등 남도의 곁들이 음식들이 줄줄이 밥상에 오른다.
큰 접시에 낙지가 꿈틀댄다. 그 사이로 한우 생고기가 붉디붉다. 주인장 말에 따르면 “낙지와 소고기는 거의 1:1 비율로 탕탕이 쳐 낸다”며 “그러면 쫄깃한 낙지 식감과 부드러운 소고기의 감칠맛이 더해져 그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설명한다. 그 위에 고명처럼 완도전복이 척 올라가 영양성분을 더해주는 것이다.
낙지, 한우생고기, 전복을 함께 먹는다. 낙지의 쫄깃함을 시작으로, 소고기의 농밀한 육즙이 터져 오르고, 얇게 썬 전복의 갯냄새가 산들바람처럼 뒤이어 따른다. 사람의 모든 미각과 오감을 기껍고 흥겹게 하는 맛이다. 질 좋은 ‘해남 김’에다 올려먹으니 감칠맛은 더욱 극대화 된다. 갯내음 또한 심화된다. 남은 탕탕이로 밥을 비벼 감태지, 묵은지와 함께 먹으니 이 또한 먹는 내내 즐겁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남도의 맛이다.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가을에는 제철음식으로, 남도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낙지탕탕이. 가을이 깊었다. 탕, 탕, 탕~ 경쾌한 탕탕이 소리에, 이즈음 남도사람들은 한창 건강한 입맛을 다시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