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가위
장은선
가위의 속성은 자르는 것이다
아이들의 색종이나 봉제공장의 원단이나
희망이나 열정이나 무조건 자른다
우리 부장도 그랬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자주 가위를 꺼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뛰고
괄약근이 조여드는 것이다
아내는 고기가 잘 잘라지지 않는다고 중얼댄다
가위가 녹슬었다
뽀얗던 얼굴이 기름기가 사라졌다
은하수선집 가위는 밤늦도록 바쁘게 돌아간다
경기가 안좋은지 수선주문이 늘었다고 한다
몇 번 말을 걸었으나 라디오 볼륨만 높였다
손해를 보면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다
아내가 인형에 단추 다는 부업이라도
해야겠다고 한다
밤에 가위에 눌려 잠이 깼다
진땀이 등줄기에 혼곤히 배였다
베란다에 가까이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갈고리 같은 별이 나를 잡아당겼다
어릴적 그 별이 살아있었다
[장은선 시인 프로필]
- 속초 출생
- 제 3회 설록차 문학상 입상
- 제 8회 서울시 공모전 시부문 특선
-충남대 문학상 수상
- 농어촌 문학상 대상 수상 외
- 2024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 강원고성문학회원. 갈뫼동인. 속초문인협회 회원
【심사평】
응모한 상당수의 작품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정도로 창작 열정이 높아 해동공자 최충 선생을 선양하는 문학상의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
장은선의 「 가위 」 는 개인의 형편을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연결하는 시인 의식이 돋보입니다 . 가위의 속성은 자르는 것으로 그것을 쥐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아이들은 색종이를 잘라 미술품을 만들고 , 수선집 주인은 주문한 제품들을 잘라 이득을 보는데 , 그에 비해 “ 우리 부장 ” 은 “ 험상궂은 얼굴로 자주 가위를 꺼내들 ” 어 직원들은 불안감에 떱니다 . 「 가위 」 의 주제 의식도 눈길을 끕니다 . “ 아내가 인형에 단추 다는 부업이라도 ” 해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화자는 “ 가위에 눌려 잠 ” 을 깨는데 , 그 순간 “ 별 ” 을 찾아내는 모습은 깊은 여운을 전해줍니다 .
김회권의 「 해주최씨대종회 시제 - 나무들은 숲으로 , 물결은 바다로 , 삶은 영원으로 」 는 제재를 풀고 엮어내는 묘사력이 뛰어납니다 . 대상을 1 편만 선정하는 문학상의 규정을 지켜야 하기에 아쉽습니다 .
배종영의 「 벽을 문이라고 불러보는 」 역시 닭장 안에서 놀란 닭들을 통해 역설의 상황을 그린 수작입니다 . 마지막 연을 앞의 연들과 좀 더 연결해 주제를 심화하기를 기대합니다 .
이외의 수상자는 물론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응원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2024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