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150)
< 술 한잔하며 쓴 술 이야기 >
기원전 4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 유역의 고대 수메르인들이 포도주를 처음으로 만든 이래, 술은 우리 인간들에게는 최고의 음식 중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유럽의 목축문화는 포도주, 맥주, 벌꿀주, 위스키, 브랜디 같은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술을 낳았고, 아시아의 몬순 문화는 곰팡이를 이용해 술을 만들어, 유럽과 인상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세계에서 술을 가장 잘 마시는 나라는 루마니아의 북동쪽에 위치한 집시음악으로 유명한 몰도바 공화국이며, 폭탄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1인당 술 소비량은 경제력 순위와 거의 엇비슷한 세계1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술과 관련하여 수많은 의미있는 얘기들이 있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는 "한 잔의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해준다."고 했으며,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는 "술은 음료로써 가장 가치있고 약으로써 가장 맛이 있으며 음식중에서 가장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 이라며 술의 순기능을 예찬했다.
또한 영국의 철학자 버틀런트 러셀은 “술에 취하는 것은 소극적인 행복이며, 불행의 일시적인 중지”라며 술에 관하여 우호론을 펴기도 했다.
한편 우리 선조들은 술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와 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몇몇 시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깊은 감흥이 있는 글들이 있다.
하늘이 나로 하여금 술을 마시지 않게 하려면
꽃과 버들이 피지 말도록 하여라(이규보)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소서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 옴세
백년간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김육)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翫月長醉) 하려노(이정보)
또한 술꾼들은 술을 먹기 위한 핑계거리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있었다.
월요일에는 월급을 타서 한잔
화요일에는 화가 나서 한잔
수요일에는 수금을 해서 한잔
목요일에는 목이 말라 한잔
금요일은 금주한다고 한잔
토요일은 주말이라고 한잔
일요일은 일을 못해서 한잔.
한편 서양에서도 술에 관하여 우호적인 얘기가 많이 있는데, “프랑스 남성들은 좋은 꼬냑이 한 병 생기면 6개월이 행복하고, 여성들은 좋은 향수를 한번 선물 받으면 1년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여성이 향수 한 병을 1년동안에 걸쳐 몸에 살짝살짝 뿌리듯, 프랑스 남성들은 꼬냑 한 병을 무려 여섯달 동안에 걸쳐 홀짝홀짝 입속에 털어 넣는다는 것이다.
브랜디는 곧 '입속의 향수'이며, 여성을 사귈 때 '반모금쯤 혀로 굴리며 향기를 남겨두는 술'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유와 낭만이 넘치던 예전과 달리 긴박한 현대사회에서 술은 분명 절제의 미가 필요한 것이으로 생각된다.
누군가는 "술 마시지 말자 하니, 술이 절로 잔에 따라진다. 먹는 내가 잘못인가, 따라지는 술이 잘못인가? 잔 잡고 달에 묻노니, 누가 그른가 하노라."라며 금주(禁酒)하기 어려운 심정을 절절하게 토로하기도 했지만, 술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분명 문제가 생기게 된다.
우리 속담에도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서도 "술에 취하지 마라. 거기에서 방탕이 나온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 지라."라고 하며, 술로 인한 일탈을 경고하고 있다.(에베소서 5장18절)
한편 상징주의의 거장으로 '비탄의 시인', '랭보의 연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을 어둠의 끝까지 몰고 간 것은 당시 유행했던 압셍트(absinthe)란 녹색 술이었다.
압셍트는 19세기 후반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열광하던 술이었는데, 베를렌, 랭보를 비롯한 시인들과 고흐,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과 피카소, 헤밍웨이 등도 이 술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한다.
압셍트가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은 환각을 일으켰기 때문인데,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이 술을 소재로 그의 대표작인 '압셍트'를 그렸다. 압셍트는 알코올 도수가 70~80도에 이르는 독한 술로, '악마의 술', '초록 요정'으로 불렸던 술인 것이다
그러나 이 술의 마력이 예술적 혼을 불어넣은 것만은 아니었으며, 결국 광기와 중독을 불러오게 되었던 것이다.
1900년대 중반의 청록파 시인 조지훈도 술을 사랑한 문인인데, 그는 '주법도 교양'임을 강조하며 술을 많이 마시기 보다는 '잘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조지훈은 바둑처럼 주도의 단수(段數)를 매겨서, 그 등급을 18단계로 나누었다. 반주를 즐기는 사람은 2급, 애주의 단계에 이르면 초단, 퇴근 무렵 술 친구 전화 기다리는 사람이면 2단,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은 7단, 열반주는 9단으로 술로 인해 세상을 떠난 사람을 이른다.
여하튼 술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그러하기에 술은 마시기는 하되, 깔끔하고 조화롭게 마시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