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빙거 왕조는 어떤 왕조였나?
메로빙거 왕조는 어떤 왕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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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에서 메로빙거인들은 신성한 혈통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 고대 가족은 로마인들에게
병역을 제공해야 했던 살리안 프랑크 지배자들로 시작되었다.
바르바리아의 침략으로부터 제국의 방어를 도우면서,
또한 현존하는 로마의 권력 구조 내에서 권력을 모을 수 있었다.
대략 481년부터 751년까지 메로빙거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왕들"로
알려지기 전까지 내부 싸움과 다툼에도 불구하고 왕조의 권력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 갤러리에서 이 매력적인 가족에 대해 알아보자.
초기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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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족으로 알려진 서유럽 민족은
로마 제국과 중세 초기에 그들의 힘과 영향력을
라인강 아래 지역에서 오늘날의 프랑스와 그 주변까지 확장했다.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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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설은 메로빙거인들을 바다 짐승의 일종인
퀴노타우로스의 후손이라고 묘사한다.
게르만 신화의 이 이야기는 왕실이 초자연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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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바다 황소"를 의미하는 성을 설명한 것일 수도 있다.
유럽의 다른 군주국들이 그랬듯이 메로빙거 왕조가
신의 자손이라고 주장했다는 증거는 없다.
메로비크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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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빙거 신화의 한 인물인 메로비크는 메로빙거 왕조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의 아버지가 바다 생물인지,
아니면 프랑크족의 클로디오 왕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긴 머리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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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프랑크 족의 지도자들은 머리를 길은 반면,
전사들은 머리를 짧게 잘랐다.
메로빙거 사람들은 동시대에 "긴 머리 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긴 머리 전통을 이어갔다.
클로비스 왕 (466년경 - 511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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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는 프랑크족의 첫 번째 왕으로,
그의 통치하에 모든 프랑크 부족들을 연합했고,
5세기에는 그의 통치하에 몇 개의 작은 프랑크 왕국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종종 메로빙거의 첫 번째 왕으로 여겨진다.
톨비아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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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는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었을 때 겨우 15세였다.
그는 496년 알레만니족과 벌인 톨비아크 전투에서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 507년 툴루즈의 서고트족을 물리쳤다.
기독교로의 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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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는 성직자의 도움 없이는
갈리아를 통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니케네 기독교인 아내와 결혼하고
나중에는 스스로도 세례를 받는다.
이로써 그는 당대 서고트족과 반달족 왕들과 차별화되었다.
살릭 법의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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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 치하에서 살릭 프랑크 법은 처음으로 성문화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측면과 살릭 법적 전통과 로마 전통을 통합했다.
살릭 법의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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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새로운 법의 개념을 허용하지 않았고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보편적인 법, 즉 형평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법이 아니었다. 대신 그것은 출신에 따라 각자에게 적용되었다.
클로비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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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가 죽자 그의 왕국은 테우데릭, 클로도머,
칠데베르트, 클로타르의 네 아들에게 분할되었다.
클로비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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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통은 751년 메로빙거 왕조가 끝날 때까지
랭스 왕국, 오를레앙 왕국, 파리 왕국, 소이송 왕국의
새로운 정치 단위 사이에 분열을 초래했다.
클로타르 1세 ( 497년 - 561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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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의 아들 중 한 명인 클로타르 1세는 형제들이 죽고 난 뒤
프랑크 왕국을 재결합해 그들의 영토를 손에 넣었다.
그는 심지어 어린 시절에 조카들이 아버지의 땅을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로타르 1세가 죽자 네 명의 아들이
메로빙거 왕국을 물려받았고 다시 분열되었다.
카리베르투스 1세 (517년 - 5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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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가인 투르의 그레고리우스는
메로빙거에 대해 알려진 많은 것들을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카리베르투스 1세는 그들 중 가장 난봉꾼이었다.
그는 네 명의 아내를 맞았고, 그것은 파문으로 이어졌다.
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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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561년부터 서기 567년 사이에 가문 내부의 분투로
토지가 분할되면서 새로운 정치 구도가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라인, 모젤, 뫼즈 지역은 이전에 랭스 왕국이었다.
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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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빙거 왕국은 서기 511년부터 거의 지속적인 전쟁 상태, 보통은 내전 상태에 있었다.
서유럽에서 프랑크 왕국을 가장 안정적이고 중요한 국가로 확립했던 메로빙거 통치의
1세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유효한 통치권은 감소했다.
차일데베르트 II세 (570년 - 595/6 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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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데베르트 2세는 오스트라시아
(그 당시 메로빙거의 통치하에 있었던 프로방스를 포함)를 통치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겨우 5살이었을 때 암살당했고,
그는 파리의 칠페릭 1세와 부르고뉴의 왕 군트룸 모두에게 입양되었다.
차일데베르트와 그의 아내는 서기 596년에 독살되었다.
클로타르 II세 (584년 -629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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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페리크 1세와 그의 세 번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클로타르 2세였다.
그는 불화라는 가문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클로타르 II세 (584년 -629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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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제를 시행한 몇 안 되는 메로빙거들 중 한 명인 클로타르 2세는
프랑크 왕국을 다시 통일하고 프랑크 왕국의 왕들과 롬바르드 왕국의 왕들
(오늘날의 이탈리아 북부) 사이의 우호 조약을 갱신했다.
다고베르트 I세 ( 605년 - 639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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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베르트 1세는 후에 메로빙거의 권력을 휘두른
마지막 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겨우 36세로 죽었을 때,
그는 가장 위대한 메로빙거 왕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레본로이 다고베르트 ('다고베르트, 좋은 왕')라는
동요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클로비스 II세 (633년 - 657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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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 2세는 다고베르트 1세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어 최초의 '게으른 왕'이 되었다.
클로비스 II세 (633년 - 657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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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동안, 왕들은 세속적인 궁전의 시장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왕은 그 지위, 긴 머리와 긴 수염에 만족하고
그의 왕좌에 앉아 통치자를 연기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고 한다.
테르트리 전투 (6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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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년 오스트리아의 궁전 시장, 헤르스탈의 페핀으로 알려진
페핀 2세는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에 착수했다.
페핀은 메로빙거 왕권을 감소시켰기 때문에 주목할 만했고,
전투에서의 그의 승리로 논쟁의 여지 없이 그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했다.
테르트리 전투 (6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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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트리 포워드 전투에서의 승리로
페핀 가문은 프랑크 왕국의 원로들이 되었다.
그렇게 페핀의 후계자들은 카롤링거 왕조의 길을 열었다.
프랑크 왕국의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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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카롤링거 왕조는 메로빙거족을 대신해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프랑크 왕국은 동서로 나뉘었다.
칠데릭 3세 ( 717년 - 75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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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빙거 왕들 중 마지막 왕은 751년에 폐위된 칠데릭 3세였다.
헤르스탈의 페핀의 손자인 짧은 페핀이 카롤링거의 첫 왕이 되었다.
메로빙거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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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빙거 왕조의 유산을 바탕으로 카롤링거 왕조는
서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왕조가 되었다.
샤를마뉴의 대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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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의 베르트라다, 샤를마뉴와 함께 있는 작은 피핀의 장남은
카롤링거 왕조의 확장을 이끌게 된다.
서기 800년, 샤를마뉴는 로마인들의 몰락 이후 서유럽 지배로
인정받은 최초의 황제인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황제로 즉위했다.
에클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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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룩수이-레-뱅의 에클레시아는 필리프 칸 갤러리와
생-마르틴 고고학 유적지가 있는 건축 전시회로
메로빙거 무덤들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 (Britannica) (World History Encyclopedia)
(New World Encyclopedia) (World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