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혼 여행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앨범 촬영을 했답니다.
지나고 나니 역시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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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앨범 촬영을 하는 날.
3월 말이니까 따뜻한 봄 날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지 추웠다.
변변한 겨울옷도 없는 신랑과 나는 셔츠와 스웨터를 여러 장 껴입어야 했다.
정말 촌스러웠다.
한복은 직접 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보자기에 싸주셨다.
한복 보따리를 들으니 더 촌스러워졌다.
신혼 여행 때는 원래 커플 티 같은 거 이쁘게 맞춰 입고 그러는 거 아닌가?
우린 색깔도 안 맞는 옷들을 겹겹이 입고 보따리를 든 채 집을 나섰다. (-_-)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오늘 가방순이 지원자들이 나와 있다.
신랑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해 보였지만 사진 촬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신이 나 있었다.
신랑은 사진 찍는 걸 무지 좋아한다.
왕자 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배우 겸 모델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얘기는 나중에...)
머리하고 화장하고 스튜디오 촬영 하니까 벌써 점심시간이다.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야외 촬영 장소인 덕수궁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쌩쌩 분다.
내 웨딩 드레스는 팔도 없이 어깨 끈만 달려있어서 얼어죽기 십상이었다.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덕수궁으로 향하는 데 그야말로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차선은 분명 4차선인 거 같은데 때에 따라서 5차선이 되기도 하고
3차선이 될 때도 있다.
신랑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택시에서 내리자 날 얼려죽일 줄 알았던 찬바람이 오히려 반가왔다.
살아남아 보게 된 세상은 아름답기만 했다.
평일이어서 고적한 덕수궁을 상상하고 들어갔는데 우리처럼 촬영
나온 커플이 스무 쌍도 넘는 것 같다.
게다가 각 커플마다 카메라 기사, 드레스 잡아 주는 아줌마, 가방순이들,
조명, 비디오 촬영 기사까지 따라다니니 덕수궁이 아니라 시장 바닥이다.
단체 일본 관광객들은 왜이리 많은지 가는 곳마다 마주치고....
앨범 촬영하는 신랑 신부를 위해서 탈의실까지 만들어 놓았다니 덕수궁
인기가 좋긴 좋은가 보다.
풍경 좋은 곳에 가서 사진사 아저씨가 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하는데
신랑이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계속 통역을 해야 했다.
이게 생각보다 고역이다.
도대체 수줍은 새색시처럼 내숭을 떨 수가 없다.
다른 커플:
사진사: 자, 신랑이 신부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세요
신랑: 자기야, 이리 와.... (신부를 사랑스럽게 안으며 바라본다)
신부: 어머, 몰라.... (부끄....)
사진사: 좋습니다. 찰칵!!!
우리 커플:
사진사: 자, 신랑이 신부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세요
신랑: ......(멀뚱멀뚱)
신부: 날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 봐
신랑: Ok...
사진사: 이번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입맞춤을 해주세요
신랑: ...... (멀뚱멀뚱)
신부: 나한테 뽀뽀해
신랑: Ok...
정말 무드 없었다.... (-_-)
이제 한복 입고 촬영할 차례다.
신랑은 한복이 참 잘 어울린다.
아마 머리 색깔이 까맣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어디서 찰칵 찰칵 카메라 터지는
소리가 한 대도 아니고 계속해서 난다.
돌아보니 단체 일본 관광객들이 우리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있었다.
오호라~ 우리가 모델인 줄 아는 게로군.... 잠시 뿌듯했다. (^^)
하와이에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일본 사람들은 사진 못 찍어서 안달
났는지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쉴 새 없이 찍어댄다.
아마 신랑이 한복 입고 포즈를 취하니까 신기했나 보다.
궁중복 촬영도 했다.
근데 이게 또 고역이다.
신랑: 이 모자 작아
니나: 쑤셔 넣어봐
신랑: 이 가운은 팔이 짧아
사진사: 하하... 뒷짐 지고 찍어야 겠네요....
니나: 쫌만 참아봐.... 이쁘게 나올거야. 나도 이 가발 써야해. 헉!
왕비 가발 정말 무거웠다.
목을 가눌 수가 없어서 가방순이하러 온 친척 동생이 카메라에 안 보이게
뒤에 숨어 내 머리를 받치고 있어야 했다.
이걸 매일 쓰고 살다니.... 조상님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고생 고생해서 촬영을 마치니 벌써 오후 5시.....
정말 하루종일 걸렸다.
궁 밖으로 나오는데 신랑이 갑자기 소리친다.
신랑: 앗! 저기 봐! 테러리스트 들이야!
니나: 뭐!!!! 어디어디?
신랑이 가리킨 곳은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었다.
신랑: 저것 봐. 모두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겨울에 보온 겸 감기 예방을 위해서 마스크를 쓴 것을 보고 신랑은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젊은 청년들도 아니고 아줌마들을......(-_-)
니나: 저 사람들은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야. 아님 추운 사람들이거나...
신랑: ??????
니나: 저렇게 하면 감기를 옮기지도 않고 추운 바람도 안 마시니까...
신랑: 머리 스타일도 한결같이 아프리카야......
니나: 그건 아줌마들의 특권이야...... (-_-)
신랑과 나 가방순이들 (친척 동생들) 이렇게 다섯 명이서 종로
거리를 구경했다.
신랑은 엄청난 간판의 숫자에 놀라더니 이 골목이나 저 골목이나 똑같이
생겼다고 혀를 찬다.
길이름도 없이 이런 곳에서 어떻게 목적지를 찾느냐고 했다.
한국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 지 일장 연설을 해줄 수 있었다. ^^
배가 고파서 오방떡을 사서 나눠 먹었다.
신랑이 기겁을 하게 좋아한다.
한 입만 맛보겠다고 그러더니 친척 동생이 양보한 것까지 다 먹어 버렸다.
(예전에 들은 바로는 캐나다에서 어떤 한국 아저씨가 오방떡과
팥빙수 장사해서 무지하게 돈 벌었다던데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도착한 지 이틀 됐는데 신랑은 벌써부터 미국 음식이
그립다고 한다.
길거리에 KFC와 맥도날드 간판이 난무하는 것을 보더니 더 그런
것 같았다.
동생들이 피자헛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메뉴판에 미국에서는 못 보던 불고기 피자를 보더니 먹고 싶다고
해서 시켰다.
정말 맛없었다.
분명 피자헛이라구 써 있어서 들어왔는데 우리가 미국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걸 피자라구....
(나중에 신랑은 Mr.피자에 가서도 먹어 보았는데 그 때는 맛있다고
한판을 혼자서 다 먹었다.
친척 동생은 그 얘기를 듣더니 한국 상표가 더 맛있다는 뜻이라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Mr. 피자에서는 안 먹었지만 송스 피자는 먹어보았는데 확실히
피자 헛보다 맛있었다.
여러분도 비싼 로열티 내지 말고 한국 상표 사 먹으세요......)
신랑은 괜히 미국 음식 먹으려다가 입맛만 버렸다고 투덜대며
피자헛을 나왔다.
피자헛에서 배부르게 먹지 못한 탓에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떡복기와 오뎅을 시켰다.
신랑이 기차게 잘 먹는다.
(도대체 못 먹는 한국 음식이 없다. 피자는 거부하고 떡복기만 먹으니, 원....)
포장 마차에서 나오니까 그새 날은 깜깜해져 있고 거리는 온통
네온사인으로 가득 차 있다.
신랑이 허걱! 하고 놀란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도시는 첨 봤다고 한다.
니나: 뉴욕에도 가봤다면서?
신랑: 뉴욕 다운타운도 이렇게까지 번화하진 않아.
니나: 리노에선 카지노 거리 가봤을 거 아냐?
신랑: 여기가 더 번쩍거려. 사람들도 넘치구.
서울이 얼마나 큰 국제 도시인지 다시 한번 일장연설을 했다.
신랑은 못 들은 척 하고 열심히 구경만 한다.
그래도 계속했다. (-_-)
신랑은 거리 구경에 정신이 없다.
후줄그레하게 껴입은 스웨터 차림으로 한 손에는 보자기에 싼
보따리를 들고 연신 우와~ 하고 감탄하며 종로를 돌아다니는 저 청년!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미국에서 신혼 여행 온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첩첩 산골에서 태어나 인삼 한 보따리 싸 가지고 생전 첨 서울에
올라온 촌놈 같았다.
친척 동생이 보더니 만약 강남에 데려갔으면 기절했겠다고 했다. (-_-)
종로 거리에 음악이 쿵쾅거리는 것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나도 10년 만에 한국에 나오니 거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귀가 왕왕거렸다.
신랑이 갑자기 멈춰 서서 넋이 빠진 듯 오락실을 들여다 본다.
오락실 안에서 미친 듯이 껑충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친척 동생이 펌프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나도 펌프랑 디디알을 그 때 처음 보았다.
한번 해볼까, 하고 구경하다가 그만 질려버렸다.
신랑은 귀신 같이 발판을 찍는 아이들을 보면서 새삼 한국인의
운동신경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임을 알리기 위해 다시 한번 일장연설을......
신랑이 째려보았다. (-_-)
그러더니 곧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수영도 못하고 달리기도 맨날 꼴찌일 뿐 아니라 툭하면 넘어져서 다치고
접시며 유리컵은 주기적으로 깨뜨리는 나......
조상의 운동신경을 물려받지 못한 열성인자라고 불쌍해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_-)
오늘은 어제보다 재미있었다며 신랑이 훨씬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지하철 안에서는 지하철 첨 타 본다며 손잡이 잡고 서 있는 장면을
찍어달라구 해서 좀 쪽팔렸지만.... 정말 갈수록 촌놈이다.
내일은 기차를 타고 경주로 2박 3일의 여행을 떠나는 날.
신랑은 기차도 처음 타보는 거라고 들떠 있다.
하여간 한국 와서 첨 해보는 게 무지 많기도 하다. (-_-)
한국의 우수한 철도 시스템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려다 참았다.
하루만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오늘은 할머니 수건으로 군말
없이 샤워도 하고 등이 배긴 다는 소리도 안하고 착하게 잠이 들었다.
자는 모습이 더 이쁜 우리 신랑, 미국 촌놈......
-니나
니나랑 폴이랑 카페 (cafe.daum.net/nina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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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랑 뿐만이 아니고 저도 한국 나가면 곧바로 미국 촌년이
됩니다. 그래도 무지 재밌더라구요....
또 가고 싶어라....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신혼 여행 일지 (3) - 앨범 촬영 (퍼옴)<==이거 한 몇주전에 올리다 만거..기억하시죠? 기억안나심 찾아 보세요..먼저건..ㅋㅋㅋ
yeon1
추천 0
조회 165
03.07.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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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부산 남포동 이재모 피자 강추.....
제목 안 보고 읽었었는데, 재혼했나 싶었어...
연님 덕분에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글 팬되어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