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연(2) : 조홍시가(早紅枾歌 : 박인로 씀)
『반중(盤中) 조홍 감이 고와도 보이 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슬퍼 하나이다.』
이 시는 우리들이 고등학교 古文시간에 배웠던 귀에 익은 고시조이다.
노계 박인로가 고향인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살면서 성리학을 배우러 仁同에 은거 하고 있던 당대 최고의 巨儒인 여헌 장현광선생을 찾아갔다.
그때 여헌이 조홍감(일찍 익은 감)을 내어주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효성의 마음으로 이 시를 짓게 된 것이다.
*우리들이 학창시절 배울 때는, 동갑내기 친구인 한음 이덕형이 도체찰사로 부임하면서 보내준 조홍감을 앞에 두고 지은 시라고 배웠으나, 최근 고증에 의하면 노계가 여헌선생을 찾아갔을 때 이 조홍시가를 지었고, 그 이후 한음을 만났을 때 이어지는 단가 3수를 추가로 지었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중장의 “유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이라는 대목에 숨겨진 뜻을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바로 지극한 효성을 이르는 고사성어인 육적회귤(陸績懷橘)에 관한 이야기 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청백리로 불리는 삼국시대 吳나라의 육적이 여섯 살 때 당대의 실력자인 원술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때 원술은 어린 육적에게 귤을 쟁반에 담아 다정히 대접하였다.
그런데 육적은 귤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원술이 눈치채지 않게 슬며시 귤 세 개를 품속에 감추었다.
돌아갈 때가 되어 육적이 원술에게 인사드리려 일어서려고 할 때 몰래 품속에 간직하였던 귤이 그만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당황한 육적에게 원술은 그 연유를 조심스레 묻자, 육적은 솔직하게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께 드리려고 그렇게 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이에 원술은 육적의 갸륵하고 지극한 효성에 감복을 하여 귤을 오히려 더 내어 주었다는 고사이다.
이 고사를 알게 되면 중장의 뜻을 금방 깨치고 시조 전체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편 저의 경우 어머니께서는 어릴적 나에게 감을 먹으라고 내어 주시면서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으신다며 전혀 드시지를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조금 지나 집안 형편이 나아져서 제가 감을 별로 먹지 않고 다른 과일을 주로 먹게 되자, 그때는 남아있는 홍시를 버리면 아깝다고 억지로 다 드시는 것을 보면서 많은 뉘우침이 있었다.
그러하니 초가을쯤 일찍 익은 감이 나올 때마다 저에게는 이 시가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돌이켜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한 감 하나에도 어머니의 자식들에 대한 가이 없는 사랑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식사때도 제일 늦게 수저를 들고 제일 먼저 수저를 내려 놓으시던 어머니!
이 모든 것이 희생과 헌신의 대명사인 어머니라는 이름의 상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끝.
(장상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