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막나요? 경찰 부를까요?” 이번 시즌 전성현의 플레이를 보고 정영삼 위원이 전한 멘트다. 농담 삼아 던진 말이지만, 이제 그들을 막을 방법은 딱 그뿐인듯하다. 진짜로 112에 전화해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의 폭발력을 9일 한국가스공사전에서도 보여줬다.
KBL 탑급 수비수인 차바위가 와도 소용없었다. 사이즈에서 우위를 지닌 이대성과 이대헌이 앞을 가로막아도 역부족이었다. 마치 두 선수는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의 커탐듀오를 보는 듯했다. 이날 이정현과 전성현이 합작해낸 3점슛만 자그마치 14개.
두 선수는 이날 51점을 합작해냈고 전성현은 역대 최초로 16경기 연속 3개 이상 3점슛 성공, 역대 최다 72경기 연속 3점슛이란 신기록, 대기록을 작성해냈다. 평소 같았으면 신기록을 수립한 전성현이 수훈 선수 인터뷰에 나서는 것이 보편적. 하지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이정현의 퍼포먼스가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오늘만큼은 우린 성현 대신 정현을 마주했다.
이날 이정현은 36분 54초 동안 31점 3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3점슛은 11개 던져 9개를 성공해냈고, 3쿼터까진 100% 3점슛 성공률을 자랑하며 한국가스공사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
10일 동안 6경기, 퐁당퐁당을 치르는 지옥의 일정 속에서 이정현이 2023년 들어 벤치에 머문 시간은 고작 11분 55초. 그럼에도 쌩쌩하다.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전성현이 코트를 떠나면 대신 공격을 진두지휘했고, 동시에 기용됐을 땐 함께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쌍포를 가동했다. 빅맨들과의 투맨 게임, 오프 더 볼 무브에 이은 골밑 득점도 원활하게 이뤄졌다.
고양을 들썩이게 하는 완벽한 활약이었음에도 이정현은 오늘도 작전 타임에 결국 또 혼났다. 도대체 안 혼나는 날이 오긴 할까. 3쿼터 중반, 미드 레인지 점퍼의 슛 셀렉션이 좋지 못한 것이 이유인 듯해 보였다. 희미하게 들린 김승기 감독의 메시지는 이정현에게 슛을 던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후, 이정현의 플레이는 잠시나마 소극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전성현이 벤치로 향하면 외국 선수 외에 득점을 책임져야 할 국내 선수 활약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이정현이 김승기 감독의 쓴소리에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거리를 개의치 않고 딥쓰리를 성공해냈고,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가스공사의 타이트한 수비를 이겨내고 터프샷을 만들어냈다. 이정현은 순수한 아이를 연상케하는 미소를 머금은 채, 해맑은 모습으로 백코트 했다. 뭔가 전성현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매 경기, 김 감독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받고 있지만 결국 그는 특급 조언 아래 더욱 독해지고 강해지고 있다.
아직 젊음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점을 감안하면 차기 성인 국가대표팀 합류도 머지않은 듯하다. 여기에 노련함까지 더해질 생각을 하니. 진정으로 무서운 선수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성현과 이정현이 외곽에서 힘을 냈다면, 골밑에서 디드릭 로슨과 함께 묵묵히 버텨준 남자가 있었다. 1라운드에 출전 시간을 어느 정도 보장받나 했으나, 다시 벤치에서도 자취를 감쳤던 애증의 선수. 오늘 8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 1블록슛 1스틸을 기록한 이종현이다.
4번 포지션 뎁스가 타 팀에 비해 너무 얇은 캐롯으로썬 반등을 위해 이종현의 부활이 필수적이다. 확실히 전성기 때만큼의 퍼포먼스를 바라는 건 놀부 심보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한발 한발 내딛고자 하는 의지는 보인다.
이날 이종현은 공수 양면에서 큰 공헌도를 남겼다. 초반부터 이대헌을 가차 없이 블록슛하며 페인트 존 경쟁력에서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팀 디펜스에서도 확실히 안정감을 찾은 모습이었다. 약속된 타이밍과 방향에서 도움 수비를 기가 막히게 전개하며 할로웨이의 공격 반경을 제어했다.
수비에서 밸런스를 끌어올린 이종현은 골밑에서도 패턴 플레이와, 유려한 움직임을 통해 득점을 적립했다. 후반전에도 동료를 살리는 A패스, 브릿지 역할, 디플렉션, 리바운드 경합, 순간적인 컷인 등 알토란같은 활약을 계속 이어갔다.
수비에서 아쉬움은 분명했지만 페인트존 득점 허용 1위인 캐롯에게 오늘 같은 이종현의 활약은 분명히 큰 힘이 될 것이다. 경영난, 빡빡한 스케줄, 선수들의 부상 등 악재란 악재는 모두 겹치고 있는 캐롯이다. 하지만 힘들수록 선수단은 더욱 이를 꽉 물고 있고, 볼 하나에 투지, 악착을 투영해 내고 있다. 그들이 KBL 팬들에게 현재, 감동 캐롯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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