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참된 힘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다. 하느님은 높은 데가 아니라 낮은 데에 사시고, 높은 분이 아니라 낮은 분이며, 섬김을 받는 분이 아니라 섬기는 분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죽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정도로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악몽을 꿨다. 꿈 내용은 사라졌어도 그 더럽고 찝찝한 느낌은 여전하다. 어제저녁 뉴스를 볼 때 딱 그 느낌이다. 궤변과 억지, 부정과 폭력이 눈앞에 보이는 데도 어떻게 하지 못하니까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한 번에 싹 다 쓸어버리고 싶은데 말이다. 아닌 거 같아도 권력에 대한 욕구가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 남을 나무랄 입장은 아니다. 그것은 사제 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 중 하나다. 특히 유교 사회인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되고, 재벌 총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그것이다. 예수님 제자들도 그랬다. 예수님이 무슨 일로 말다툼했냐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높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껴안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지금은 큰일 날 생각이지만 그때 어린이는 여자와 함께 사람 대우를 못 받았다. 이제 그 어린이는 가장 낮은 존재, 존재감 없는 사람, 내가 은연중에 얕잡아 보는 사람, 내가 지닌 알량한 권력에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주인이 그런 모습으로 변장해서 내 앞에 나타나시고,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시는 건지 모른다. 우리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정말 정말 주의해야 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0). 그때 사람들은 몰랐지만 지금 우리는 아주 잘 안다. 그들에게 해준 것이 곧 주님께 해드린 것이다. 가장 큰 힘은 자신을 이기고, 하느님 말씀에 복종하는 능력이다. 금욕과 절제가 그 한 부분이고, 봉사와 희생이 나머지 다른 부분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집회 2,8-9).”
예수님, 저는 죽음도 빼앗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요한 16,22),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충만한 기쁨(요한 16,24)을 바랍니다. 그 기쁨은 이미 이 세상 안에 있습니다. 그 기쁨을 자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앞에서 기도할 때마다 고요 속에서 참 기쁨이 있는 곳을 찾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