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남자...
그녀는 1년에 두번쯤 귀걸이를 하는데, 이땐 아주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도로 우울한 날이라는 표시니까요.
그녀는 웬만해선 잘 삐지지 않지만,
삐질랑 말랑할때 옆에서 너 삐졌지? 에이, 삐졌지? 그러면 진짜로 삐지죠.
그녀는 아주 화가나는 일이 있으면 화장실에가서 오래 오래 양치질을 하거나,
소주를 사이다처럼 마신 다음 노래방에서 잠을 잡니다.
그녀는 내가 이런 사실을 안다는걸 전혀 모를만큼 의외로 둔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눈썰미 만큼은 참 좋은편이죠.
날 제대로 쳐다보는 적도 없었는데,
내게 무슨 바지가 있는지, 또 내가 이맘때면 어떤 티셔츠를 입는지 그런걸 줄줄 꿰고 있어서,
가끔씩 내 옷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니까요.
오늘 난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갔었는데 그녀가 그러더라구요.
내가 이 옷 입은거 보니깐, 여름이 된게 실감난다고.
네, 그렇게 던지듯이 말하곤 내 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도 마음으로 대답했죠.
난 니가 그렇게 말하는걸 보니깐, 여름이 된게 실감이 난다고.
작년 여름에도 그랬었거든요.
나한텐 하늘색이 잘 어울린다고 이 옷을 보면 어쩐지 여름이 느껴진다고.
여름이 가고, 또 여름이 왔는데, 이 지루한 짝사랑은 끝이 날 줄을 모르네요.
[♀] 그 여자...
사무실에 어느 선배가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왔더라구요.
그걸 보고서야 실감했죠. 헤어진지 벌써 1년이 지났구나!
하늘색 셔츠를 입으면 하늘처럼 환해 보이던 사람이 있었어요.
내가 많이 좋아했는데...
작년 이맘때 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하려던 날,
갑자기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죠.
그래서 작년 여름엔 하늘색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눈물이 나곤 했어요.
어떻게 어떻게 1년이 지났고, 그때 잘못도 없이 나를 울리던 그 선배는
이렇게 다시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왔네요.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어디선가, 여전히, 하늘처럼 환한 미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