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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사건
천안함 폭침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이 침몰한 사건이다.[3] 대한민국 정부에서 발표한 이 사건의 공식 명칭은 천안함 피격 사건(天安艦被擊事件)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병[4]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5]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에서 전문가 24여 명으로 구성된[6]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7][8] 이러한 조사 결과 발표는 미국과 유럽 연합, 일본 외에 인도 등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9]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되었으며[10] 안보리는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하였다.[11]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신들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의장성명 문안의 핵심인 '북한책임 적시'하는 부분은 빠졌다. 특히 6항 '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는 형식적으로나마 북한의 입장이 반영됐다는게 외교가의 평가다[12][1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조사 결과에 대해 "특대형 모략극"이며[14] 천안함은 좌초했다고 주장했다.[15] 천안함의 침몰에서 인양, 조사 발표까지 대한민국 사회와 주변국의 관심을 끌었으며,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 대해 언론과 각계 인사들은 다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침몰 원인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으로 갈등을 빚었다
개요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현재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17]
한편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수색과정에서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도 실신해 치료를 받았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18]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으나 [19] 조사가 진행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에 의한 피격으로 좁혀졌다. 당초 정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은 어뢰에 의한 피격설과 좌초설의 가능성을 조사했었다
일지
2010년 3월 26일 21시 12분 : 천안함 승조원이 해안 통신병에게 부상사실 통보(러시아보고서),국방부는 사적통화로 해명 [26]
2010년 3월 26일 21시 15분 : 해경이 "(배에) 물이 샌다"는 통보를 받음, 이후 천안함은 경비기동의 3.5배속도로(18노트) 이동[27]
2010년 3월 26일 21시 15분 : 2함대사가 해작사에 최초 상황보고, 2함대사령관과 해작사 작전처장의 통화[28][29][30]최고보고는 침수로 인한 좌초추정,사건당일은 어뢰보고없음[29][31]
2010년 3월 26일 21시 16분 : 백령도에 있는 방공33진지에서는 폭음을 감지 [28][29]
2010년 3월 26일 21시 16분 : 천안함 승조원이 부친과 통화를 하던 중 지금 비상이라며 전화를 끊음 [28][29]
2010년 3월 26일 21시 17분 : 천안함 내부 폐쇄회로티브이(CCTV) 영상중지(러시아보고서),국방부는 날짜오류로 해명 [26]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 대한민국 해군 제 2 함대 소속 포항급 1, 200톤 급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발생 시간)
2010년 3월 26일 21시 28분 : 2함대사, 천안함 침몰 상황 접수
2010년 3월 26일 21시 30분 : 2함대사, 대청도 고속정편대(5척) 긴급출항 지시
2010년 3월 26일 21시 31분 : 2함대사, 속초함에 사건현장으로 전속력 항해 지시
2010년 3월 26일 21시 32분 : 2함대사, 인천해경(해경 501함, 1002함), 관공선 긴급지원 요청
2010년 3월 26일 21시 34분 : 2함대사, 긴급조치반 소집
2010년 3월 26일 21시 40분 : 2함대사, 위기조치반 소집, 전 작전요소 전투배치
2010년 3월 26일 21시 47분 : 2함대사, 덕적도 LYNX 헬기 백령도 전개 지시
2010년 3월 26일 21시 56분 : 고속정편대(3척) 현장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1시 57분 : 2함대사, 대잠경계태세 발령
2010년 3월 26일 21시 59분 : 2함대사, 공군 탐색 및 구조전력 지원 요청
2010년 3월 26일 22시 07분 : 2함대사, 인천해경에 501함, 1002함 RIB 지원 요청
2010년 3월 26일 22시 10분 : 고속정편대(2척) 현장 추가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2시 28분 : 고속정편대(참수리 322호) 1명 구조(천안함 작전관 대위)
2010년 3월 26일 22시 41분 : 해경 501함, RIB 2척 현장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2시 50분 : 관공선(214, 227) 인명구조 시작
2010년 3월 26일 23시 13분 : 생존자 58명 이함 및 구조 완료
2010년 3월 26일 23시 13분 ~ 2010년 3월 27일 04시 35분 : 천안함 침몰 해역 야간 수색, 환자 후송
2010년 3월 26일 23시 30분 : 해양경찰청은 본청과 인천지청에 갑호비상령, 태안 · 속초지서,동해지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2010년 3월 26일 23시 50분 : 경찰청은 서울 · 인천 · 경기 · 강원지방경찰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32]
2010년 3월 27일 : 정운찬 국무총리는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 행정기관에 당직근무를 강화하고 모든 공직자가 유선 상으로 대기하도록 비상대비 체계를 발령했다. [33]
2010년 3월 29일 : 함미에 공기 주입 시작.
2010년 3월 30일 : 용트림 바위 앞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잠수요원 한주호 준위 사망[34][35]
2010년 3월 31일 : 기상 악화로, 구조작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구조팀은 선내진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36]
2010년 4월 2일 22시 30분 : 수색작업을 나서던 저인망어선 금양 98호가 조난신호를 보내고 실종됐다.[37]
2010년 4월 3일 18시 10분 : 남기훈 상사의 시신 식당 안에서 발견 [38]
2010년 4월 7일 16시경 :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 발견.[39]
2010년 4월 8일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의 만남[40]
2010년 4월 11일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할 민간, 군인 합동 조사단 구성[41]
2010년 4월 12일 끌어올린 함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냄[42]
2010년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침몰 20일 만에 인양되었다.
2010년 4월 15일 오전 11시 이후 방일민 하사, 서대호 하사, 이상준 하사 등을 포함한 36구의 시신 수습[43]
2010년 4월 22일 오후 9시 20분 박보람 하사, 연돌(굴뚝) 안에서 발견.[44]
2010년 4월 24일 천안함의 함수가 침몰 29일 만에 인양되었다.
2010년 4월 24일 오전 10시 54분 박성균 하사, 함수 자이로실에서 발견.[45]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침몰로 사망한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엄수됨.[46]
2010년 5월 19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해상에서 수거한 어뢰 파편에 '한자'가 표기된 사실을 근거로 이 어뢰가 중국제 '漁-3G' 음향어뢰로 사실상 결론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발표[47]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한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다.[48]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 사건 관련 담화문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 도발시 엄중 대처하고 남북간의 교역 단절
2010년 6월 1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러시아 전문가팀이 방한하여 조사에 착수했다.[49]
2010년 7월 8일 러시아 조사팀의 조사결과가 일부언론에 보도되었으나 러시아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2010년 7월 9일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이 발표되었다.
2010년 9월 13일 국방부의 천안함 최종 보고서 발간
실종자 수색 및 천안함 인양
대한민국 해군은 27일 오전 수상함 10여 척과 해난구조함 평택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을 사건 지점에 배치했다. 사건 지점에 배치된 100여 명의 해난구조대(SSU) 잠수 요원들은 선체의 구멍을 조사했다. [51] 28일에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피격 위치에 광양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52] 수색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남방 16마일 부근에서 구명복 상의 22개와 안전모 15개를 발견했다. [53]
29일 밤,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독도함을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및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 해역에 긴급 투입했다.[54] 31일 함수쪽을 수색한 잠수사는, 격실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증언했다.[55]
4월 2일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22시 30분쯤 조난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이 배는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해 탑승 선원 전원이 숨졌다.[56]
4월 3일 천안함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중 한 명은 남기훈 상사로 확인됐다.[57] 4월 3일 실종자 가족 측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해군은 실종자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58][59]
그리고 4월 7일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가 발견되었다
기타 수색작업
30일,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 부표에서 목적이 알려지지 않은 수색 작업을 하던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작업 도중 실신해 후송 치료 중 사망, 순직했다
사망자 및 실종자, 생존자 명단
사망자와 실종자는 모두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아래 목록은 모두 특진 후의 계급이다.
사망자 명단
원사 : 김태석(기관 조정실), 남기훈(원사, 상사 식당), 문규석(중사 휴게실)
상사 : 박석원(기관부 침실), 신선준(72포 하부 탄약고), 김종헌(후타실), 민평기(승조원 화장실), 강준(기관부 침실), 최정환(승조원 화장실), 정종율(기관부 침실), 안경환(기관부 침실), 김경수(승조원 화장실)
중사(진) : 임재엽(72포 하부 탄약고)
중사 : 방일민(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서대호(승조원 식당-기 관부 침실 통로), 이상준(승조원 식당), 차균석(유도 행정실), 서승원(디젤 기관실), 조진영(기관부 침실), 손수민(승조원 화장실), 문영욱(제독소), 심영빈(승조원 화장실), 조정규(기관 창고), 김동진(후타실), 박보람(배 밖 연돌), 박성균(자이로실)
하사 : 이상민(1988년생, 승조원 식당), 강현구(기관부 침실), 이용상(후타실), 이상희(기관부 침실), 이상민(1989년생, 기관부 침실), 이재민(기관부 침실)
병장 : 안동엽(기관부 침실), 박정훈(기관부 침실), 김선명(기관부 침실), 김선호(후타실), 정범구(전기 창고)
상병 : 조지훈(승조원 화장실), 나현민(기관부 침실)
일병 : 장철희(기관부 침실)
최초 실종자 명단
준위 : 이창기
원사 : 최한권, 남기훈, 김태석, 문규석
상사 : 박경수, 강준, 김경수, 박석원, 안경환, 신선준, 김종헌, 최정환, 민평기, 정종율
중사 : 임재엽, 문영욱, 이상준, 손수민, 심영빈, 장진선, 조정규, 서승원, 방일민, 박성균, 조진영, 서대호, 차균석, 김동진, 박보람
하사 : 이상희, 이용상, 이재민, 강현구, 이상민(1988년생), 이상민(1989년생)
병장 : 정범구, 김선명, 박정훈, 안동엽, 김선호
상병 : 강태민, 조지훈, 나현민
일병 : 정태준, 장철희
생존자 명단
중령 : 최원일
소령 : 김덕원
대위 : 이채권, 박연수
중위 : 김광보, 정다운, 박세준
상사 : 김병남, 김덕수, 오성탁, 김수길, 허순행, 김정운, 강봉철, 오동환, 정종욱
중사 : 이광희, 김현래, 조영연, 손윤식, 송민수, 김현용, 김광규,
하사 : 홍승현, 육현진, 공창표, 이연규, 허향기, 진경섭, 배성모, 전승석, 함은혁, 박현민, 강은강, 정재환, 김효형, 김기택, 서보성, 정주현, 유지욱, 정용호, 라정수, 신은총, 김정원
병장 : 전준영, 최광수, 김용현, 강태양, 최성진
상병 : 안재근, 김윤일, 정현구
일병 : 김수철, 오예석, 황보상준
이병 : 이태훈, 전환수, 이은수
침몰 원인
대한민국 합동 조사단의 조사 결과[편집]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문
천안함의 절단 부위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조사단 운영 2010년 3월 31일 ~ 2010년 5월 20일), 인양한 함수, 함미 선체의 변형형태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조사한 결과,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고 최종 발표하였다. [74] 민군 합동조사단은 한국측 10개 전문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과학수사·폭발유형분석·선체구조관리·정보분석의 4개 분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근거
선체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고 분석해 보았을 때,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破斷)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인 것도 수중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함정 내외부의 표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가스터빈실 선체에 나타난 구형압력흔적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생존자와 백령도 해안 초병의 진술내용을 분석한 결과,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불빛을 관측했다는 진술 등은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현상과 일치하였다.
부상자 상태와 시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어 충격파 및 버블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과 일치하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 폭발원은 동일하였으며,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1차 미국 측의 선체 변형 형상 분석 결과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총 폭약량 TNT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고, 2차 한국 측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동일 지점에서 총 폭약량 TNT 250~36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영국 측도 함께 참여하였다.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강한 조류로 인해 기뢰부설은 제한되는 반면, 어뢰 발사에는 영향이 미약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폭약성분 분석 결과 HMX는 연돌·함수절단면 등 28개소에서, RDX는 연돌·해저 토양 등 6개소에서, TNT는 함안정기 등 2개소에서 각각 검출됨으로써 HMX, RDX, TNT가 혼합된 폭약성분임을 확인하였다.
증거물
침몰해역에서 프로펠러, 추진모터, 조종장치 등이 수거되었고, 이는 어뢰의 추진동력부로서 결정적인 증거물이다.
북한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 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 이라는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도 일치한다.
“1번이란 글씨는 제조과정에서 기술자들이 써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완성품은 알루미늄 외피로 싸여 있어 이를 사용하는 북한군은 내부에 글씨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75]2010년 6월 29일, 1번이라는 글자는 청색 유성 매직이며, 솔벤트 블루5 색소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 프로펠러와 침몰한 천안함의 금속 부분의 부식 정도가 거의 비슷한 상태인 점도 어뢰 추진체가 함수와 비슷한 기간 동안 바다 속에 잠겨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76]
2010년 6월 29일 합동조사단은 증거물로 제시한 CHT-02D 어뢰의 설계도는 CHT-02D의 설계도가 아니라 실제론 이와 다른 별개의 북한 중어뢰인 PT-97W 어뢰의 설계도였다고 밝혔다. [77]5월20일 공식 발표때 총 3종의 CHT-02D 도면이 발표 되었으며, 그중 실물크기의 수미터 도면이 잘못발표되어 추후 실물크기의 CHT-02D 도면을 다시 발표하게된다.
6월 22일 국방부는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와 동일 기종으로 지목한 북한제 어뢰를 홍보하는 카탈로그에 북한의 국가명이 표기됐다"며,“북한제 어뢰를 홍보하는 카탈로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보증한다’는 문구가 명기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로 미뤄볼 때 카탈로그가 북한 정부가 제작한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다국적 연합정보분석
다국적 연합정보분석TF의 확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황해의 북한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전에 황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되었다. 주변국의 잠수정들은 자국의 모기지 주변에서 활동
5월 15일 폭발 지역 인근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각 5개의 순회전 및 역회전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장치)은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고 잉크로 쓰여진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또 다른 북한산 어뢰의 표기방법(4호)과도 일치한다.
러시아산 어뢰나 중화인민공화국산 어뢰는 각기 그들 나라의 언어로 표기한다. 북한산 CHT-02D 어뢰는 음향항적 및 음향 수동추적방식을 사용하며 직경이 21인치이고 무게가 1.7톤으로 폭발장약이 250Kg에 달하는 중어뢰이다.
북한의 소형잠수정 및 음향/항적추적 어뢰 수출사실 및 시험발사 확인
결론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부상자 상태 및 시체검안,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백령도 근해 조류분석, 폭약성분 분석, 수거된 어뢰부품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대한민국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했다.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정도이다.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B2%9C%EC%95%88%ED%95%A8_%EC%B9%A8%EB%AA%B0_%EC%82%AC%EA%B1%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