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실패에 체제 '염증'…
'드라마 韓流' 확산 영향도
작년 12월 북한의 화폐개혁 이후 탈북자 유형이 달라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화폐개혁 전에는 북한에서 사회적 신분이 낮고 생계가 어려운 계층이 주로 탈출했다.
북에서 굶어 죽으나 탈북하다 잡혀 죽으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에는 "중산층 이상이 탈북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같다"(안보부서 당국자)는 얘기가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3일 "화폐개혁 실패로 민심이 떠난 데다, 비디오·DVD 등을 통해 한류(韓流)가 북한에 퍼지면
서 중산층 이상의 탈북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먹고살 만하지만 김정일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탈북 행렬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책공대를 졸업한 A(28)씨는 작년 말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탈북했다.
그는 "당에서 하라는 전공(전자공학)을 공부할 때는 재미가 없었는데 여기선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생화학)를 하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화폐개혁 때문에 재산을 날린 '시장 세력'(시장에서 돈을 번 계층) 중 탈북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요즘은 감시가 심해 탈북하려면 브로커나 국경 북한 군인들에게 상당한 돈을 줘야 한다"며 "탈북 비용이 있다는 것은 중산층 이상이거나 남한에 친척이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지방 보위부 간부 자녀 등 상류층 탈북자들의 비공개 입국도 증가세라고 한다. 이들은 일반 탈북자들이 교육받는 하나원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탈북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북한이 올해 들어 탈북자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중산층 이상이 탈출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양대 공안기관인 인민보안부와 국가안전보위부는 지난 2월 첫 '연합 성명'을 내고 탈북자들을 "인간쓰레기들"이라고 표현했다. 3월에는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국내 탈북자 단체들의 실명(實名)을 일일이 거명하며 "첫째가는 처단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고, 6월부터는 중국 등에 '탈북자 체포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북으로선 후계 세습을 앞두고 체제 허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