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퍼지는데 하림 주식 가격은 왜 오를까?
공황과 닮은 조류독감...살처분 -> 공급과잉 해소 -> 생산 감소·소비회복 -> 가격 상승
좀 뜬금없는 질문부터 던져야겠다. 조류독감(AI)과 공황은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답을 하자면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경제활동은 회복-번영-불경기의 주기를 갖는다. 그런데 번영의 정점에서 불경기로 접어드는 과정이 급속하게 진행될 때 이를 '공황'이라고 한다.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즉, 과잉생산에 의해 공황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관점이다.
조류독감 여파로 소규모 양계인들 도태되고 일부 기업 독점화그렇다면, 조류독감은 도대체 공황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닭, 오리 등 가금류 산업은 공급과잉과 해소가 2~3년 주기로 반복된다. 묘하게도 조류독감 발생 주기와 일치한다. 과거 조류독감 발생시기를 보면 2003년 12월~2004년 3월, 2006년 11월~2007년 3월, 2008년 4월~5월, 2010년 12월~2011년 5월 등 모두 2~3년 주기로 발생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수백만 마리의 닭·오리가 살처분됐다. 2003년 528만5천마리, 2006년 280만마리, 2008년 1천20만4천마리, 2010년 647만3천마리가 각각 살처분됐다. 공황은 경제에 충격을 주지만 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펼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다. 조류독감 발병에 따른 살처분이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과잉생산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했다.
6일 오전 서울 종로 광화문광장에서 동물-환경 단체들이 연 'AI(조류독감) 사태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대규모 살처분 중단 및 살처분에 적용할 동물복지 기준과 장비 마련, 축산과 병역체계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공황은 쓰러지는 자에겐 위기이지만 버티는 자에겐 기회가 된다. 조류독감도 누군가에겐 위기이고 누군가에겐 기회일까? 몇 번의 조류독감을 거치면서 바뀐 가금류 생산구조를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닭 생산을 보면 2003년엔 14만4천 농가가 9천910만9천마리의 닭을 생산했다. 그후 농가수는 계속 줄었다. 2004년엔 13만1천 농가로 줄었고, 2006년엔 3천600 농가로 급격히 줄었다. 그후 이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반면 닭 생산은 꾸준히 늘어 2011년 3천300 농가가 1억4천만마리의 닭을 생산했다.
2003년에 비해 농가수는 14만 호 이상 줄었는데, 닭 생산은 5천만 마리 가까이 늘었다. 이는 조류독감 등의 여파로 소규모 양계인들은 도태되고, 닭 산업이 점점 독점화·대규모화된데 따른 것이다.
조류독감이 오면 일시적으로 닭과 오리 소비가 줄어든다. 그러나 과거 통계를 살펴보면 줄어든 소비는 대부분 조류 독감이 종식되고 2~3개월 내에 조류 독감 발생 이전 수준으로 살아났다. 살아나는 소비보다 생산이 쳐지면 가격이 오른다.
지난 1월 발생한 조류독감 예를 들어보자. 이번에 발생한 조류독감으로 종오리(새끼 오리를 낳는 오리) 약 29만 마리가 매몰처분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3~5월 오리고기 총 공급량이 전년 동기 대비 23.7%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리고기 공급 감소로 3~5월 오리 생체가격은 전년보다 상승한 3kg당 6200~6700원에 다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류독감 경제학이라고 이름을 붙여 순환 주기를 적어본다면, 조류독감 발병 -> 살처분 -> 공급과잉 해소 -> 생산 감소, 소비 회복 -> 가격 상승 -> 이윤 증가의 그림이 그려진다.
조류독감, 기업들은 머리 싸매지 않는다?
하림 마니커 등 조류독감에도 주식은 상승 추세소규모 양계인들이 도태된 닭 산업은 현재 주요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하림, 동우, 마니커 등의 업체가 시장에 유통되는 닭고기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양계협회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2000년 초반 양계산업이 꽤나 호황이었다. 닭 소비는 체육행사가 있을 때 느는 특성이 있는데,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며 (생산의) 팽창으로 2003년 불황 위기를 맞았다. 중소업체 5~6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업계 3위였던 체리부로도 부도 위기를 맞았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한 마디로 조류독감이 기회를 준 것이다."
과잉생산의 양적 팽창으로 위기를 맞은 상황이었는데, 조류독감이 닥쳐 살처분을 하면서 업계가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됐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조류독감이 사실 구조조정에 도움을 준 거지"라고 말했다.
이런 구조조정의 결과 닭 사육 농가의 90%, 오리 사육 농가의 95%는 하림, 동우, 마니커 등 기업들과 계약을 맺고 위탁 사육을 하고 있다. 개인이 영세하게 사육을 해서는 시장에서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농가들은 기업으로부터 병아리를 받아다가 마리당 사육 수수료를 받고 평균 5만 마리 가량 대규모로 사육하고 있다.
그렇다면 업계의 입장에서는 조류독감이 닥친다고 머리를 싸매고 고심할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팔리지 않아 처분하기도 곤란한 닭과 오리를 결과적으로 정부 자금으로 처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과거 발생한 조류독감에 따른 살처분 보상 비용으로만 모두 3837억원이 국고에서 나갔다.
이런 상황에 대해 지방에서 육계(먹는 닭)을 키우는 한 축산인은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닭도 그렇고 오리도 그렇고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류독감 아니어도 어차피 불황이었다. 한 번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류독감이 와서) 정부 돈으로 청소(살처분)하니 얼마나 좋냐. 내(기업) 돈도 안 들이고 말야. 그렇게 파 묻어도 어차피 기업들은 자본이 있기 때문에 생산회복을 빨리 할 수 있다."
몇 번의 조류독감을 거치며 얻은 학습효과 때문일까 시장의 반응이 흥미롭다. 하림 등의 주가는 조류독감이 발생한 직후 일시적으로 하락했다가 조류독감 국면에서도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닭·오리 등 가금류 생산 유통의 대표기업인 하림의 주식은 조류 독감 상황에서도 추세적으로 상승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1월 16일 종가가 5370원이었는데, 3월 28일 현재 6330원을 찍었다.ⓒ네이버 검색화면 캡쳐
올해 조류 독감은 지난 1월 전북 고창 하림의 종오리 농가에서 최초 발생했다. 이동 철새인 가창오리가 주범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러니 일종의 음모론인 셈이다.
오히려 자본의 집중과 집적에 따라 이뤄진 공장식 대량 생산 환경이 조류독감 발생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6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밀집 사육되는 태국의 양계농장은 집안에서 길러지는 조류에 비해서 조류독감에 걸리는 비중이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수산식품부도 지난 17일 닭·오리 산업이 농가와 기업이 연계해 대규모 사육을 하는 수직 계열화되면서 조류독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고,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닭과 오리고기 가공판매업체 등 계열화 기업에 불이익을 주기로 결정했다. 하림, 마니커, 동우 등이 대상이다.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가창오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