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주)
정환웅
낙화가 두려워
꽃 피우지 말 것인가?
조락 (凋落)이 두려워
태어나지 말 것인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절정이 있으면
나락 (奈落)도 있으리...
시들어 떨어지는
꽃을 보고,
오솔길 위에 흩어진
낙화유수의
사연을 줍는다.
영광의 잔해
폐허를 수습한다.
너무 가벼워서 섧다.
시인은
바람에 흩날리는
시어 (詩語) 를 줍는다.
(주) ‘낙화유수’는 원래는 가는 봄의 풍경을 묘사한 말이었는데,
후에 뜻이 확대되어 힘이나 세력이 쇠해 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2019.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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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가는 길
정환웅
꽃은 화사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제각기 하늘을 향해 미소를 쏘아 올리고 있었다.
여기요! 저 여기 있어요!
재잘대는 웃음소리
나는 꽃 방석 위에 살포시 걸터앉았다.
꽃은 쉬지 않고 꽃대를 피워 올리지만
영원한 꽃이란 애당초 없는 법...
시들어 고개 꺾인 꽃대
땅바닥에 떨어져 누추로 썩어가는 꽃송이
폐허와 허무 그리고 아쉬움의 시간이
뭇사람에게 서럽게 밟히고 있다.
꽃은 산들바람에도 마음을 베었다.
상처에서 배어나는 마지막 검붉은 꽃
혼신의 힘으로 타올랐다.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누군가의 손길은 필요하다.
화사한 웃음으로
눈부신 추억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화사함의 그늘 속에 감춰진
빛바랜 누추를
누군가의 손길로 감추어줄 필요가 있다.
싱싱한 생이 끝나기 전에
선명한 생의 기억이 잊혀지기 전에
생의 몸뚱어리를 잘라라.
몸의 생채기는 남았더라도
마지막 누추한 삶이 사라졌어도
아쉬움 속에 정갈함은 남았다.
꽃이 아름다움으로 남기 위해서는
누군가 마지막 손길을 주어야 한다.
삶은 난해한 빛깔
無爲로 돌아갈 뿐이로다.
넘어진 꽃대에서는 서글픔이
여전히 묻어나온다.
부질없는 생의 집착이여...
끄느름한 삶의 빛깔이여...
200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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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落花)
정환웅 詩
피었다가 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잊지 못할 화사한 기억
아직 내 안에 있으니
지는 것이 어찌 슬픔이라 하겠는가?
지고 난 자리의 상처만 볼 것인가?
사랑하는 그대,
꽃을 그리워만 할 것인가?
안타까운 그대,
피고 지고
지고 피는 것은
강물과도 같은 것....
그리움에 묻어야 할 것이
어디 꽃뿐이겠는가?
만장(輓章/挽章)을 앞세운 아비만 볼 것인가?
아빠의 부재를 모르는
어린 새끼들의 응석이 있는 것을....
어루만지기에도 아까운
보드라운 어린싹
지면 피는 것도 있는 것을.....
가면 오는 것도 있는 것을.....
2009.04.30
[詩作 노트]
인생을 비롯한 우주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언제나 시작과 끝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의 시작이 있어야 존재가 있고,
시작이 있는 만큼 그 끝도 있는 것이지요.
시작과 끝, 피고 지는 것은 면면히 흘러가는 과정일 뿐인데....
인간은 그것을 시작이라 부르고,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넓게 보면 우리가 시작이라고 부르는 것도,
끝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두 우주 생성과 소멸의 억겁 속에서
하나의 작은 과정인 찰라에 불과한 것이지요.....
'떨어질 꽃이라면 피지를 마라' 라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며,
끝이 없는 삶이 어디에 있으랴.
꽃이 지지 않고는 열매가 열릴 수 없는 것,
죽지 않고는 살 수 없으리라.
아! 덧없어라.
그리움에 묻어야 할 것이 어디 꽃뿐이겠습니까?
비에 젖은 나래,
가녀린 몸짓.....
서러움에 흐느끼는 것이 어디 나비 뿐이겠습니까?
∼∼∼∼∼
목련꽃 이울다
차목련
지는 꽃그늘이 눈에 밟혀
피는 꽃
눈망울을 보지 못한다
그대가 나에게로 오실 때에는
더디게 더디게 오시는 이여
삭풍의 골짜기 돌고 돌아
땅에서 하늘까지
빛으로, 빛으로 손 내밀다
흔적만 스치듯 떨궈 놓고
오는 듯 가버린 이여
찰나에 목메어 놓친 사람이듯
시든 꽃잎을 주어든다
피는 꽃 향내보다
지는 꽃 살내음이 깊다는 것
너 이울기 전에는 아주 몰랐다
―『달섬문학』제14집(달섬문학회, 2019)
∼∼∼∼∼
지는 꽃
정순영
지는 꽃의 이름을 묻지 말라.
봄물에 연두 붉은 생기를 머금고 볼 시린 꽃봉오릴 터뜨린
울음의 사연을 묻지 말라.
그 삶이
화사하였든
수수하였든
고독하였든
노을빛 추억을 품고 지는 꽃의 이름을 묻지 말라.
바람에 흩날리는 꽃의 영혼은
별이 되리라.
누군가의 가슴에 아리는 아리따운 그리움으로
영원히 지지 않는 별이 되리라.
―『한국시학』(2019년 가을호)
∼∼∼∼∼
라벤더꽃이 필 때
이형권
보랏빛은 슬픈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꽃밭에 가면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지만
보랏빛 라벤더밭에 가면
발길이 멈춰지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아련한 기억 속의 바람 한 줄기가 살아나
가슴 한 곳을 스치고 간다
나의 생은 어느 길목을 지나가는 것일까
아침에 또 한 사람의 부고가 날아왔다
그의 향기는 라벤더꽃처럼 깊고 슬펐지만
소멸은 무정하고 냉정한 법
잠시 피었다 지는 꽃처럼 잊힐 것이다
2천 미터의 고봉이 펼쳐지는 설산에 가면
한 철을 짧게 살다 가는 꽃들의 나라가 있다
시린 눈송이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홍적기의 밤처럼 무거운 침묵이 흐를 때
그 시간의 파문을 견디며 살아난 꽃들이
축일을 열고 어여쁜 노래를 부른다
생은 눈부시게 피었다가 소멸하는 꽃들과 같으리라
- 시집 『다시 청풍에 간다면』 (천년의 시작, 2021년 4월)
眺覽盈月軒 (보름달을 멀리 바라보는 집) 에서
첫댓글 꿈은 꾸어도 꿈이요 께어도 꿈이듯 그립움과 아쉬움도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